목록으로

성경과 신학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한 문장

by Ed Welch2022-12-15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서로 주고받은 대화에 달려있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신학교 첫해에 나는 하나님, 가장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상담할 사람들과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끼칠 한 문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내 눈에 성경은 단지 잘게 부서진 일련의 조각처럼만 느껴졌다. 물론 하나하나가 다 좋은 조각이었지만, 서로를 잇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였고, 그 사실은 때때로 내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성경 속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보다는 성경 전체를 하나로 묶어 핵심 메시지를 보여주는 책을 읽으려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만난 그레셤 메이첸(J. Gresham Machen)의 The Christian View of Man을 읽는 중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글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이 인격(personal)이시기에 인간도 인격이다’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이건 분명히 메이첸에게 있어서 대통합의 원칙이 되는 중요한 관점인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내게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더 꼼꼼하게 읽었다. 무엇보다 메이첸이 ‘인격’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찾을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만 따로 정리하고 책을 덮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가 쓴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을 읽었다. 그는 성경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아주 잘 썼고, 그의 통찰은 내가 현재까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지향하도록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그 책을 읽은 결과, 나는 보스의 모든 글(캐서린 보스(Catherine Vos)의 아동 도서까지 포함)을 추적하게 되었고, 그러는 중에 내 인생을 바꾼 문장을 발견했다. 보스는 내게 인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만족스러움을 가져다주는 인격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또 단지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의식적이며 호혜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생각과 목적과 일에서 그분과 나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영적 능력이라는 면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함으로 그분에게서 받고 또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Redemptive History and Biblical Interpretation, 186쪽)


주거니 받거니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이 그날 내게 준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보스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담긴 핵심이 무엇인지를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보스가 이단에 빠졌고,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건가? “하나님과 의식적이며 호혜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영적 능력이라는 면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함으로 그분에게서 받고 또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이첸이 말한 인격의 의미였다. 굳게 잠겨있던 뭔가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말은 내가 “주거니 받거니”(back and forth)라고 짧게 말하거나 쓸 때마다 그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서로 주고받은 대화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그분으로부터 또는 나로부터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하나님은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시 62:8)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나는 그분께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고, 그분은 내 말을 들으신다. 하나님은 공감(compassion)으로 반응하시거나, 또는 단지 자녀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겁게 들으신다. 그리고 그는 행동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씀을 통해 그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신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 변화된다. 


주거니 받거니. 호혜적 교제. 영적 존재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모세가 떠오른다.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졌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출 32:7) 백성에 대해 말씀하신다. 모세가 항의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가 실제로 백성들에게 어떻게 임할지를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그제야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대답할 여지를 주고 계심을 깨닫고 그 초대를 받아들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셨던 과거의 약속, 열방 앞에서 드러날 하나님의 명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종…자손”이라는 사실에 호소한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은 “마음을 돌이키셨다”(출 32:14).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가 이어진다. 주님은 “나의 천사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출 32:34)라고 말씀하신다. 응답하라는 하나님의 다른 초대를 모세가 놓쳤을 때도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출 33:3). 아마도 이전 대화로 인해 담대해진 모세가 대답한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출 33:15).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출 33:17). 그렇게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한다.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일련의 대화는 주님께서 그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이 이제 죄의 용서로 표현될 것이라고 계시하실 때 절정에 이른다(출 34:6-7).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서가 떠오른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 하늘과 땅을 나누는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오시며, 그분의 얼굴은 가장 친밀한 방법으로 그분의 모든 백성을 향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새롭게 빚어진다. 그런 다음 그분은 우리에게 말하라고 권유하신다. 하나님 자신이신 그분이 우리가 하는 말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이루신 역사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벧전 3:18).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친구라고 불리며(요 15:15),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인 풍성함


하나님은 이제 나를 그의 백성 가운데 두셨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나를 그 자신에게 더 가까이 두셨고, 내게 말하라고 초대하신다는 것이다. 더 많이 말할수록 내게는 더 좋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나를 하나님께 더 드러낸다. 하나님은 정말로 이런 식의 개인적인 친밀함을 원하신다. 누가 감히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이 사실이 내 마음에 점점 더 뿌리를 내려감에 따라서 나는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다. 좋은 것과 어려운 것에 대해서, 종종 나는 하나님께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그냥 털어놓기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더 자주 고백한다. 이런 기도가 내 삶에서 일으킨 변화는 내 안에 주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나는 기도 속에 형식으로 포장된, 마치 친구들 사이에서나 일어나는 형식적인 대화를 담지 않는다 


이런 영적 풍성함은 아내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격으로서의 하나님이 내 속에 자리 잡기 전까지 나는 아내에게 다 털어놓으라고 종종 말하기는 했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부끄럽거나 아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주된 관심사가 내 말을 하는 것보다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매일 준비한다. 오늘 내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지? 그런 다음, 나는 언제나 나를 돌보시는 주님께 나아가려고 준비한다(벧전 5:7).


이런 깨달음은 매주 내가 하는 상담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언제나 내담자가 마음을 열고 얘기를 하도록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그것을 주님께 말씀드립시다.” 염려에 쌓인 사람에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빌립보서 4:5-6은 그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이 바로 곁에 계신다. 그러니까 당신을 괴롭히는 세상과 혼자 싸우려고 애쓰지 말라. 하나님께 나아가서 털어놓아라. 당신의 생각을 하나씩 정리해 보라. 불안함을 일으키는 요인을 생각해 보라. 당신을 괴롭히는 걱정이 말하는 사실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거기에는 한 가지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가르치다 보면 나는 자주 시편을 인용한다. 시편은 결국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이다. 각각의 시편을 각기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해하라고 나는 제시하곤 한다. “나에게 말해라”라고 주님이 손을 내미신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게 무엇이냐?” 나는 이 점을 최근에 쓴 책에서도 설명했다. 그 책 제목이 ‘더 가까이 가도록 창조된’(Created to Draw Near)’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수십 년 전에 이런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보스를 인용했다. 


끝나지 않는 대화


내 주변의 세상을 관찰할수록, ‘주거니 받거니’야말로 온 세상에 넘쳐흐르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운영되는 방식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원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좋은 친구는 서로 마음을 나눈다. 배우자도 서로 마음을 나눈다. 그게 바로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마음을 나누지 않을 때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내 마음에 감동을 준 이 네덜란드 신학자의 긴 문장이 말하는 바가 바로 이런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순종하기 위해서, 의지하기 위해서, 아니면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렇다. 그 모두를 다 포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신의 대답이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해 재구성되도록 하라. 그래서 이 세상 그 어떤 다른 피조물도 할 수 없는, 사랑의 말로 끝없이 속삭이는 ‘주거니 받거니’의 관계가 주는 기쁨에 당신이 동참할 수 있기를 간구한다. 



원제: Back and Forth with God: A Sentence That Reshaped My Relationship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하나님은 이제 나를 그의 백성 가운데 두셨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나를 그 자신에게 더 가까이 두셨고, 내게 말하라고 초대하신다는 것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Ed Welch

에드 웰치. The 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 Foundation의 교수, Created to Draw Near: Our Life as God's Royal Priests의 저자. 40년 이상 상담사로 활동하며 우울증, 두려움, 중독을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