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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by Ryan Griffith2022-11-18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attempt great things).


바로 이 여섯 글자가 글로벌 선교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내 삶의 비전과 방향을 바꾸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 3학년 이후 그가 내 인생에서 떠난 적 없는 건 확실하다. 여느 대학생처럼 나도 영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한 지역 교회의 교인으로 등록했다. 마침내 내가 집이라고 부르는 교회를 찾았을 때, 하나님은 은혜의 강을 여셨고,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변혁적인 영적 성장의 시기를 맞게 하셨다. 하나님이 여신 은혜의 강에서 만난 지류 중 하나가 4학년 때 있었던, 캐리가 쓴 소책자, ‘이방인의 개종을 위해 사용할 수단과 관련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한 질문’(An Inquiry Concerning the Obligation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 1792)에서 발췌한 이 문장과의 섭리적 만남이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수요일 밤에 주최한 기독교 선교에 관한 전국 대회에서 캐리의 책에서 발췌한 이 문장을 읽었다. 다른 많은 18세기 저작물과 마찬가지로, 캐리의 책 제목도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제목 뒤에 숨은 내용은 매혹적이었다.


제안에서 사명으로


사도들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세계 선교에 대한 검토에 더하여, 캐리는 (그는 거의 전적으로 독학했고, 이중 직업을 가진 목회자였다) 대륙별 세계 복음화 상태에 대한 통계를 수집했다.


더 놀라운 점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마 28:18-20)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각종 변명을 다루기 전에, 캐리는 먼저 복음의 아름다움을 간결하게 포착했다는 점이다. 캐리는 이렇게 의아해했다. “지금도 무지와 우상 숭배에 빠진 실로 엄청난 불신자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편안히 앉아서 쉬는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 건가요?”[1] 글로벌 차원에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의무와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할 의무를 부여한다고 캐리는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확실히 그리스도의 대의와 하나님 왕국을 증진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2]


캐리의 말이 내 마음에 깊이 와서 닿았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주변 일 외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았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음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캐리는 내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비전이 글로벌 차원에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성경의 비전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만민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가? 그렇다. 그가 지적했듯, 예수님이 주신 대 사명(great Commission)은 결코 대단한 제안(great suggestion)으로 그치지 않는다.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였고, 거기에 맞게 내 인생의 사명도 바뀌어야만 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나의 소명과 상관없이 그분이 온 세상으로부터 영광 받는 것을 나의 가장 큰 목표로 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빠진 부분이 있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정치적, 기술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의 대의와 왕국을 증진하는 데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바치는” 어려운 일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할까? 어떻게 그런 수고가 완전한 탈진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능성과 의무


이런 질문은 캐리에게도 중요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 중북부의 침례교 목회자들은 거의 교회의 연합을 마비시킨 사고방식, 즉 오순절과 같은 추가적인 성령 강림(사도행전 2장)이 있어야만 열방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명백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움직이시기 전까지는 교회에게 행동할 의무도 또 행동해도 성공할 희망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791년 6월에 노샘프턴셔 목회자 모임에서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와 존 서트클리프(John Sutcliff) 목사는 당시에 성행하던 “미루는 데 급급한 사고”와 복음의 좋은 소식에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불타는 전도의 열심을 주제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3]


회의가 끝날 무렵 캐리는 이미 성경에 답이 있는 질문에 대해 서면으로 답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미전도 국가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인가요? 그리고 그게 과연 가능합니까?”[4] 그래서 그의 소책자 ‘질문’(An Enquiry)이 그해 후반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 읽었던 발췌 부분은 의무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다. 논쟁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했던 부분, 즉 그러한 의무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빠져있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은, 그러나 가장 시의적절한 본문


‘질문’이 출판된 지 몇 달 후, 노샘프턴셔 연합회 목사들은 캐리의 답변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1791년 5월 31일 모임은 이사야 54:2-3을 본문으로 한 캐리의 설교와 함께 시작했다. 


너의 장막 터를 넓혀라. 

장막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라. 

너의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나가고, 

너의 자손이 이방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며,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가 선택한 본문은 기이한 선택 같았다. 복음전도와 제자양육에 관한 한 명료하기 이를 데 없는 신약성경 본문이 한두 개가 아닌데, 굳이 대사명의 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서에서 본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을 속속들이 꿰고 있던 캐리는 이사야서가 가진 구속사적인 비전의 탁월함과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고난받는 종의 승리(사 53:10-12)는 기쁨(사 54:1a)뿐만 아니라, 축복(사 54:1b)을 가져올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승리가 하나님의 적들을 영원히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더 이상 이방 신들의 현혹이 열방이 하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좌우로 퍼져나가고, 이방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며,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사 54:2-3).


캐리는 이사야가 그리는 미래의 비전이 주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서 이미 실현되었음을 알았다.


기대와 시도


메시지의 절정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결코 잊지 못한, 다음 여섯 단어에서 드러났다.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5]


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대체 불가의 유일무이한 대속물이라는 사실은 부활에서 입증되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보좌와 권세에 대한 메시아의 궁극적인 승리의 신호였다. 예수님이 단지 열방에 대한 복음의 사명을 시작만 한 게 아니다. 영광스러운 승천을 통해서 예수님은 복음의 절대적인 승리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이미 제거하셨다(막 3:24-27; 계 20:1-2).


따라서 캐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지 기대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한 시작이라도,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서 우리는 대 사명의 성공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대 사명을 교회에 주시며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그리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말씀은 오순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약속이 지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순절은 열방으로 나아가서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가능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다


내가 가진 ‘질문’ 발췌문 사본에 누락된 내용 중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다. 기대와 시도 사이의 연결에 관한 부분이다 


모든 민족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사도들에게만 적용된다면, 이 사명과 관련해서만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이 매우 제한적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아예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명령을 내린 경우에 굳이 그 명령을 구속력 있는 뭔가로 만들려는 추가 시도는 필요 없겠지만, 명령의 이행에 필요한 과정, 그러니까 순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보십시오. 그런 장애물은 이미 제거되었습니다.[6]


부활의 승리로 인해 복음의 좋은 소식은 이제 그 무엇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캐리는 알았다. 이제 만물이 예수께 복종하게 되었으니, 그가 그의 영과 그의 교회를 힘입어 강한 자의 집을 강탈하리라(막 3:24-27).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의 물결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 깨달음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예수님과 동행한 초기에 나는 행여나 복음 속에서 극복하지 못할 지적 장애물을 만날까 두려웠다. 마찬가지로 개인전도에서 복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타문화 전도라는 도전 앞에서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과 부활 권세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을 완전하게 물리쳤다.


그리스도의 관심사를 중심에 두기 위해, 나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했다. 그뿐 아니라 그가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의 제자로 살기에 만날 모든 위험도 감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여섯 글자


여섯 글자 속에 담긴 비전은 또한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캐리의 설교가 끝날 무렵 노샘프턴셔 연합회 목사들은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협회” 창립을 결단했다. 4개월 후인 1792년 10월 2일, 그들은 그 계획을 정식으로 채택하여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구성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지금은 무려 수천 명의 선교사를 보유한 BMS는 첫 선교사로 윌리엄 캐리와 그의 가족 및 몇몇 조력자를 인도로 파송했다.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침례교 선교회의 모토가 되었고,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이들을 향한 복음 선포에 대한 성경적 비전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되었다.[7]


성경 속 문화를 초월하는 비전(cross-cultural vision)의 회복은 떠오르는 복음주의 운동 전반에 걸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캐리의 친구이자 동료 목사인 존 라일랜드(John Ryland Jr.)는 나아가서 런던 회중교회(London Congregationalists)가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를, 그리고 성공회 교회가 교회 선교회(Church Missionary Society, 1799)를 창립하도록 힘을 보탰다. 


1806년,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윌리엄스 대학의 2학년생 다섯 명이 캐리의 ‘질문’을 읽고 미국 선교단체의 출범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헌신했다. 그로부터 사 년이 흐른 후, 그들은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1810)의 설립뿐 아니라, 그들 중 두 명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과 그의 아내 앤 하셀틴(Anne Hasseltine)을 버마로 파송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윌리엄스 칼리지(Williams College) 다섯 동기생 중 또 다른 한 사람인 루터 라이스(Luther Rice)는 해외 선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침례교도들을 연합시켰고, 사 년 후에는 침례 교단 선교 모임(General Missionary Convention of the Baptist Denomination)을 창립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사 파송 조직인 남침례회 국제 선교부(International Missions Board of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전신이다. 


우리는 과연 오늘날에도 여전히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확신하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또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위대한 일이 오늘날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만들까? 



1. William Carey, 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s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 (Leicester: Ann Ireland, 1792), 8. 


2. Carey, Enquiry, 87. 


3. 다음을 보라. Andrew Fuller and John Sutcliff, “Jealousy for the Lord of Hosts” and the “Pernicious Influence of the Delay in Religious Concerns”: Two Discourses Delivered at a Meeting of Ministers at Clipstone in Northamptonshire, April 27, 1791 (London: Vernor, 1791). 


4. J.W. Morris, “Narrative of the First Establishment of This Society,” in Periodical Accounts Relative to the Baptist Missionary Society, vol. 1 (London: J.W. Morris, 1800), 2?3. ?


5. Morris, “Narrative of the First Establishment,” 3.


6. Carey, Enquiry, 10-11.


7. Eustace Carey and William Yates, Vindication of the Calcutta Baptist Missionaries: In Answer to “A Statement Relative to Serampore, by J. Marshman, D.D. with Introductory Observations by John Foster” (London: Wightman & Co., n.d.), 35. 



원제: Expect Great Things, Attempt Great Thing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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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yan Griffith

라이언 그리피스(PhD,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는 Strategic Initiatives 부대표, Southwest Baptist University(Bolivar, Missouri)의 교회사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