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우기 위한 ‘해체’

신앙 재건: 새 시대에 걸맞은 기독교 만들기③

by Tim Keller2022-10-29

건물을 리모델링하다 보면 부분적으로는 해체하거나 부숴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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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재건: 새 시대에 걸맞은 기독교 만들기


1. ‘신앙 해체’ 현상

2. 걸어 다니는 나무 같은 사람

3. 해체: 무너뜨림

4. 해체: 세움

5. 신앙의 재건이 일어나는 때

6. 신앙의 재건, 그리고 오늘의 문화

7. 두 번째 만지심

4. 해체: 세움 


해체를 생각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철학적 뿌리 대신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이다. 건물을 리모델링하다 보면 부분적으로는 해체하거나 부숴야 할 때가 있다. 


건물의 일부 특히 기초 자체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더 나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 철거해야 할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는 해체해야 할 데가 너무 광범위해서 아무도 그 건물에서 일하거나 거주할 수 없을 정도일 때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아예 재건축하는 게 최선이다. 이 은유에서 해체가 의미하는 것은 재건이다. 한마디로 보강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허물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재건 말이다. 


최근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새 창문을 설치했다. 당연히 오래된 창문과 벽을 말 그대로 잘라내야만 했다. 가구와 사진, 소지품을 옮기고 또 보호 천막으로 덮어야 했다. 인부들이 일하는 동안 우리는 다소 ‘파괴된’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이제 이전 창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새 창이 생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때때로 “해체”의 기간을 겪으면서 오히려 더 강해지는 그리스도인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존 생각의 일부를 버리거나 변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가진 헌신과 믿음을 더 강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 연구는 20세기 복음주의 지도자인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삶에서 볼 수 있다. 젊었을 때 쉐퍼는 불같은 근본주의 지도자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와 관계를 가졌다. 쉐퍼는 매킨타이어의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 미국기독교회협의회(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국제기독교회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s)의 일원이었다. 이 그룹이 주창하는 핵심 사명은 자유주의 신학과 미국 주류 교회에서 분리되기를 꺼리는 신자 모두를 매우 전투적인 방식으로 비난하는 것이었다. 쉐퍼와 아내 이디스(Edith Schaeffer)는 이 운동의 충성스러운 일꾼이었다. 1947-48년에 그들은 전도와 훈련과 저술을 위해 유럽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3년 동안 사역한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 삶에서 영적 위기에 직면했다. … 정직하기 위해서 나는 불가지론으로 돌아가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 내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에 관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6]


이 일이 생긴 건 1951-52년이었고, 그 기간은 쉐퍼의 아내 에디쓰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그녀는 ‘태피스트리’(The Tapestry)에서 남편이 찾고, 고군분투하고, 또 다시 생각하는 과정 내내 “무서웠다”라고 고백했다.[7] “순례자의 여정”(Pilgrim’s Progress)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그녀는 지금 남편이 절망의 구렁텅이와 의심의 성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쉐퍼가 발버둥 친 한 달 기간에 관한 그녀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에디쓰는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긴 시간을 기도에 쏟았다.[8]


쉐퍼에게 이런 위기를 촉발한 것은 무엇일까? 쉐퍼가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대륙의 영적 필요에 대해 이런저런 기독교 지도자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영국 설교자 로이드 존스와도 종종 만났다. 로이드 존스는 신학적 보수주의자이자 더 큰 자유주의 종파로부터의 분리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쉐퍼가 속한 미국 근본주의 운동 속에는 온유함과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로이드 존스의 눈에 그들은 단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의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오로지 상대를 가혹하게 비난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9] 쉐퍼의 전기 작가들이 지적했듯, 쉐퍼도 자신의 멘토 중 일부로부터 사랑의 결핍을 경험하기 시작했다.[10] 게다가 자신이 강조하는 근본주의가 유럽의 젊은 회의론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술을 마실지, 춤을 출지, 아니면 영화를 봐야 할지가 관심사이지, 종말론적 신학 문제는 20세기 유럽인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11] 쉐퍼는 두 가지 큰 문제를 보게 되었다.


첫째로 … 많은 정통 기독교 신앙을 견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되면 반드시 그 삶에 드러나야 한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한 실재(reality)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막 그리스도인이 된 초창기에 비해서 지금 내 삶에서 드러나는 실재가 훨씬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2]


여기서 쉐퍼가 말하는 ‘실재’는 성경이 말하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양선, 겸손, 절제(갈 5:19-26) 같은 삶의 변화이다. 이런 변화가,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가 다른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도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정통 기독교 신앙이 아예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universe)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도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기독교 신앙 중 일부는 사실이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쉐퍼는 이 두 번째 이유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목격하는 ‘실재(열매)의 결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쉐퍼는 자신이 어떻게 더 강해졌는지 설명한다. 그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진리를 정직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무한한 인격이신 하나님이 존재하고, 기독교가 참됨을 알 수 있는 완전히 충분한 이유가 있다.”[13]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왜 기독교의 진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삶에, 또 쉐퍼 자신의 삶에 적절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까?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받은 모든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지금 삶에까지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의미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나는 강조하지 않았다. 점차 해가 떠오르더니 노래가 들렸다. … 기쁨과 노래의 시간에 내 속에서 시가 흘러나왔다. 확신의 시, 삶의 긍정, 감사와 찬양. 물론 시로서는 수준이 별로지만, 그것은 당시 내 마음을 채운 멋진 노래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14]


쉐퍼는 ‘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의 나머지 부분에서 ‘지금 삶에까지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신학적으로 말해서, 그는 칭의와 성화의 참된 관계,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암묵적인 율법주의를 본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완성된 사역보다 교리적, 도덕적 올바름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다. 그런 경향은 역설적으로 영적 성취에 대한 독선과 자만심으로 이어진다. 또한 우리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엄청난 불완전성을 깊이를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심각한 불안과 초조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결국 성화 또는 성결의 성장은 주로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지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이런 깨달음을 계기로 쉐퍼는 이제 회개와 믿음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함으로 영혼이 재정비될 뿐 아니라 변화되는 마음에서 진정한 영적 실재가 나온다고 가르쳤던 존 오웬(John Owen)과 같이 더 오래된 개혁주의 신학자의 발자취를 따르기 시작했다.[15] 영적 성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더불어 쉐퍼는 그의 전기를 쓴 배리 핸킨스(Barry Hankins)가 말했듯 “근본주의와 아예 결별”했다. 그는 회의론자와 신앙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와서 얼마든지 마음을 열고 토론할 수 있는,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라브리(L'Abri)를 설립했다. 라브리에서는 또한 예술과 문학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쉐퍼와 라브리 운동이 비판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쉐퍼의 초기 근본주의적 전투성은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말년에 다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진정한 ‘해체’가 신앙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 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제시한다. 



[6] Francis Schaeffer, “Preface” in True Spirituality, Tyndale House Publishers, 1971. (No pagination)


[7] Edith Schaeffer, The Tapestry: The Life and Times of Francis and Edith Schaeffer, Special Memorial Edition, Word, 1984, 355.


[8] Ibid, 355-356.


[9] William Edgar, Schaeffer on the Christian Life: Countercultural Spirituality, Crossway, 2013, 49.


[10] Edgar, 53-55; Barry Hankins, Francis Schaeffer and the Shaping of Evangelical America, Eerdmans, 2008, 26, 28-50.


[11] Hankins, 44.


[12] Schaeffer, “Preface” True Spirituality.


[13] Ibid


[14] Ibid


[15] 오웬의 ‘죄죽이기’(Mortification of Sin)와 자매 편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과 강론’(Meditations and Discourses on the Glory of Christ)을 참조하라. 첫 번째 책에서 오웬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래야 단지 이기적으로 죄의 결과를 미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죄 자체를 미워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근본적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책에서 오웬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진리만이 아니라 그분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볼 때만 단지 의무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으로 그분 닮기를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제: Reconstructing Faith: Christianity in a New World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진정한 ‘해체’는 신앙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 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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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