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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by 고상섭2022-10-20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다양한 설교의 분야 중의 하나가 아니다. 설교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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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 1917-2005)는 Preaching Christ in All of Scripture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다양한 설교의 분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설교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왜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성경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을 성경의 의도대로 읽는다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9-10)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륜, ‘오이코노미아’는 하나님의 경영이라고 번역해도 괜찮은 단어이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우주가 통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계획이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귀결된다는 것이다. 


1. 나 중심이 아닌 예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라.


엠마오 마을로 가던 제자들은 절망에 빠졌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믿었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이 죽은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25-27)


예수님은 제자들의 절망이 구약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구약 성경 안에 이미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세와 선지자의 글은 구약의 율법서와 선지서를 말한다. 즉 모든 구약 성경은 메시아가 와서 고난을 받고 부활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도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까지도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44)


구약의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로 목표된 책이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 적용이 먼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포스트모던은 메타 네러티브를 거부한다. 그러나 큰 이야기에서 떨어져 나온 개인의 이야기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궁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야기는 내 인생의 이야기보다 더 크고 넓다.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내 인생은 더 큰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안에 속해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이 성경이 근본 나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나의 이야기로 읽을 때 성경을 단순히 개인적으로 적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로 읽을 때, 내가 그리스도의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고 더 큰 이야기 속에서 내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2. 신약의 빛으로 구약을 해석하라. 


구약학자 트램퍼 롱맨은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해 마치 영화 ‘식스 센스’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식스 센스’는 앤딩이 놀라운데, 결말을 알고 나면 영화의 시작과 중간의 스토리를 모두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결말이 앞서 지나간 모든 장면에 빛을 비추어서 바르게 이해하게 해주는 것처럼, 성경도 그리스도라는 신약의 결말을 보고 나서 구약을 비추면 구약에서 희미하던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신약의 빛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이제, 당신은 무조건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본문이 딱히 메시아 예언이나 그리스도를 전조하는 주요 인물 혹은 통정경적인 주제, 핵심적인 성경 이미지나 비유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제 당신은 그분을 볼 수밖에 없다.”[1]


신약의 빛으로 구약을 바라보게 되면, 율법의 요구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는 죄인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산상수훈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은 우리를 산상수훈을 통해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왜 우리가 왕처럼 부요할 수 있을까? 그분이 영적으로 철저히 가난해지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오직 그분이 애통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슬픔을 가누지 못 할 만큼 우시고 결국 어둠 가운데 죽으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땅을 상속하게 될까? 그분이 온유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온전히 발가벗김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채움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까? 그분이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


구약에서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실 때 무조건적인 은혜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율법을 지켜야 하는 조건적인 약속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선지서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도 양갈래로 나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겠다고 선언하시다가 곧 인간의 죄악 때문에 심판을 선포하시기도 한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신적 정서’(Divine Pathos)라고 표현한다. 이 두 가지 딜레마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실 수 있는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결하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울부짖으실 때, 우리는 그 답을 발견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언약은 조건적인가 아니면 무조건적인가? 정답은 ‘둘 다’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조건을 성취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을 신약의 빛으로 이해할 때만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출애굽기를 신약의 빛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1-4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건을 홍해에서 ‘세례를 받은’ 사건으로 묘사한다. 어린양의 죽음을 통한 출애굽은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만나라는 신령한 음식과 반석에서 물을 마신 사건을 가리켜, 그리스도로 인해 먹고 마신 사건이라 설명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셨다. 또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을 통해 물을 마셨다고 설명한다. 구약의 출애굽은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과 오늘날의 성찬식과 연결된다. 


이처럼 신약은 구약을 비추는 빛으로 작용하며, 희미했던 그리스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모든 성경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지 않으면 우리의 설교는 아마도 유대교 랍비의 설교와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모든 본문은 그리스도에게 까지 연결되어 있다. 찰스 스펄전은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은 젊은 설교자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젊은이, 영국의 모든 자그마한 동네에도 그게 어디 있든 런던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예, 그럼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성경의 모든 본문도 마찬가지로 성경의 수도로 통하는 길이 있다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일세. … 나는 아직 그리스도로 통하는 길을 품고 있지 않은 본문을 만난 적이 없네. 만에 하나 그리스도로 통하는 길을 품고 있지 않은 본문을 발견한다면, 나는 어떡하든 길 하나를 만들 것이네. 담벼락을 넘고 도랑물을 건너서라도 나의 주님께로 나아갈 것이네, 설교란 그 안에 그리스도의 향취가 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지.”[3]


모든 성경의 출발은 언제나 그리스도라는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읽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결론이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께로 이어진다. 설교자는 그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1. 팀 켈러, 채경락 옮김, 설교(두란노), 119쪽.

2. 같은 책, 122쪽.

3. 같은 책, 94쪽.


모든 성경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지 않으면 우리의 설교는 아마도 유대교 랍비의 설교와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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