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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를 잘못 이해했는가?③

개혁자들과 함께 아우구스티누스 읽기

by Zach Howard2022-10-16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의 여정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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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장 칼뱅 같은 개혁자들이 성경을 빼고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들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다른 주장보다도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라는 진리를 이 교부가 어떻게 옹호했는지에 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참고했다. 그렇지만 개혁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에 관해서만은 이 위대한 교부에게서 원하는 만큼의 명료성을 찾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그의 저작을 주의 깊게 읽으면 그가 이 교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 모호함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의에 관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안점을 두는 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declaring)는 점이 아니라, 의롭게 만드신다(making)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료성을 중시하는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아무리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의롭다 하심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부정하지는 않았더라도, 이런 식의 교리 표현 방식을 모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목회자, 지도자, 교사를 위한 특집 기사 시리즈를 위해서 우리는 베들레헴 신학교에서 신학 및 인문학 조교수로 일하는 잭 하워드에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칭의 교리를 탐구하도록 요청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_이해

  1. 인간의 본성에 대한 치유로서의 칭의

  2. 경건하지 않은 자를 경건케 만드는 칭의 

  3. 사건과 과정으로서의 칭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_평가

  1. 칼뱅의 아우구스티누스 칭의론 평가

  2. 믿음과 사랑의 관계

  3. 은혜의 면류관을 씌우시는 하나님

3. 사건과 과정으로서의 칭의 


비록 아우구스티누스가 칭의 속에 선언적 의미까지 들어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만, 그가 가진 칭의에 대한 일차적 이해는 하나님이 인간의 본성을 치유하심으로써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의롭게 만드신다는 데에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만일 칭의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가 “의롭게 되는 것”이고, “의롭게 되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하는 내적 변화를 요구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형상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의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칭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사건이자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15] 아우구스티누스가 믿음의 시작과 믿음의 진보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사건 언어와 과정 언어를 모두 쓰고 있음을 본다.[16]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주 그런 구분을 한다.[17] 예를 들어, 시편 67편을 설명하면서 그는 “행위보다 믿음이 우선”임을 상기시킨다. “공로가 없어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바울 사도가 말했듯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이 말씀은 후에 믿음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18] 아우구스티누스는 의롭게 되는 근거로서의 행위를 의롭다 함을 받는 행위와 분명하게 구분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지나가는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체 단락을 정의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다름 아니라 믿음에서 시작한다”[19]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의 여정으로 묘사한다.


두 번째 예는 로마서 8:30-31에 대한 설교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의롭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받은 의로움(justice)은 더 커질 수 있다.”[20] 의롭게 되었다는 바울의 말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이미 칭의의 상태에 도달했다”를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그러한 상태는 “중생의 씻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날로 진보함으로”(딛 3:5 참조) 발생한다. 칭의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날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우리는 의로움을 가질 수도 있고 동시에 의로움 속에서 자랄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라는 용어를 선언적 사건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칭의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결코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완전한 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여정은 죄 사함을 받고 계속해서 죄와 싸우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의지를 치유하시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행이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초기의 신앙과 과정의 신앙 사이에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물론 둘 다 같은 믿음이다. 의롭게 하는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갈 5:6) 말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의미하는 바는 죄 사함을 받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더불어 날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커가는 믿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즉 성령이라는 인격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 순간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15. 나는 칭의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사건이자 과정으로 설명하는 다른 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만(Alister McGrath, David Wright, Robert Dodaro, Peter Dubbelman), 아우구스티누스가 칭의를 사건으로만 본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Gerald Hiestand and Dongsun Cho)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도다로(Dodaro)는 Augustine Through the Ages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칭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다고 보시는,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합당한 관계로 회복시키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그는 계속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구속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이 인간의 영혼을 훈련시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합당한 사랑으로 이끌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개개인의 영혼은 거룩함에 있어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482). 


16. 데이비드 라이트(David Wright)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칭의에 대해 완료 시제와 종종 수동태로 말하는” 몇 가지 예를 지적한다(66). 다음을 보라. “Justification in Augustine,” in Justification in Perspective: Historical Developments and Contemporary Challenges, ed. Bruce McCormack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55-72.


17. 또 다른 명쾌한 예로는 다음을 보라. The Spirit & the Letter 29.50 (WSA 1.23:175?76). 


18. Augustine, Expositions of the Psalms 67.41 (WSA 3.17:360). 


19. Augustine, Expositions of the Psalms 67.41 (WSA 3.17:360). 


20. Sermon 158.5 (WSA 3.5:117). 



원제: Did Augustine Get Justification Wrong?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의롭게 하는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갈 5:6) 말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의미하는 바는 죄 사함을 받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더불어 날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커가는 믿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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