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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자연법과 몸의 신학을 회복하자

이상한 신세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by Carl Trueman2022-10-14

우리 몸은 심오하고 중대한 방식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자신에게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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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상이 변했다. 자아성(selfhood)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도전한다는 것이 위험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도덕적 양식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세계의 광범위한 신념에 동의하지 않아도 전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존경받을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어도 저물어 가는 중이다. 기독교가 형성한 사회적 상상의 마지막 자취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심지어 지금 이상한 신세계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처지다. 


자아성 혁명은 구체적으로 성혁명의 다양한 국면에 나타나듯이 유치원 교육부터 직장 내 대명서 사용 정책[직장 내에서 성별을 구별하는 대명사를 사용할지 말지 같은 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의 삶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말하자면 아직은 이런 일을 피하면서 당분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영원히 숨을 수는 없다. 조만간 우리는 모두 현대적 자아성의 관념이 만들어 낸 도전적 상황과 마주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 순응하라는 압력에 직면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갈수록 시급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세계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 여섯 가지 대응 방안이 있다. 


복음과도시 편집자 주_ 이 글은 칼 트루먼, (신좌파 성혁명과 LGBTQ+운동이 만든) 이상한 신세계의 제9장을 부흥사개혁사의 허락을 받아 간추린 것으로, TGC의 “6 Ways Christians Can Respond to Our Strange New World”를 참고하여 편집하였다. “신좌파 성혁명과 LGBTQ+운동이 만든 이상한 신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여섯 가지 방안을 6회에 걸쳐서 싣는다. 


1. 이 시대에 우리도 가담했음을 인식하자

2. 고대 교회에서 배우자

3.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가르치자

4. 성경적 예배를 통해 직관을 형성하자

5. 자연법과 몸의 신학을 회복하자

6. 현실적 소망 안에서 살아가자


교회는 또한 자연법과 몸의 신학도 회복해야 한다. 로마가톨릭교 신자는 자연법과 관련된 오랜 전통이 있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몸의 신학과 관련해 탁월한 스승이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당시에 자연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으나 이런 이해는 지난 2세기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면 자연법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자연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에 도덕 체계가 있다는 개념이다. 특히 우리의 몸은 심오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우연히 깃들이고 생기를 불어넣는 그릇이 아니다. 우리 몸은 심오하고 중대한 방식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자신에게 필수적이다. 몸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고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모두 많은 점을 공유한다. 이것은 인간(인체)이 어떤 면에서는 번성하도록 만들어졌고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기술적이고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이것을 이해한다. 나는 번창하기를 기대하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 나는 자기 힘으로 날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 신체 구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제한을 둔다. 자연법은 이 개념을 도덕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그래서 가령 신생아가 엄마에게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최선을 다해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엄마의 의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엄마가 자녀를 숲에 버려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또는 우리가 생명을 타고난 선으로 상정한다면, 다른 사람이 이 생명을 끝장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요 자연에 반하는 조처이므로 살인은 잘못이다.


자연법 개념은 성과 정체성과 관련하여 분명히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기를 바라지 않으면, 남성과 여성의 몸은 어떤 면에서는 성적으로 알맞게 만들어졌으나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성의 몸은 정말로 다른 남성의 몸과 성적으로 알맞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출생 시에 남성이나 여성으로 분류하는 몸을 갖고 태어난다. 남성과 여성의 몸은 다른 능력이 있고 특정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각각의 경우에 인간을 번영으로 이끌 행동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지의 경계를 자연(또는 자연법)이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은 인간의 죄가 이런 주장이 더 넓은 세계에 어떤 설득력도 없을 것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행위가 에이즈나 암의 위험을 높이는가? 아마 세상은 관련 의학 연구에 돈을 투자함으로써 대응할 것이며, 문제를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약물과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수술과 호르몬 치료는 심리적 확신을 물리적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 가정은 자연이 단순히 ‘재료’일 뿐이어서,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거나 원하는 대상이 되는 일을 방해할 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대는 중요하다. 세계가 하나님께 반역하는 상태며 자기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외부 권위에 대한 모든 호소는 조롱이나 거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내가 자연법과 몸의 신학에 대한 반성을 권고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자연법과 몸의 신학은 세상에 대처하기 위한 변증학 도구라기보다(물론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유용할 수도 있다), 교회 자체 안에서 설득력 있는 교육 전략의 중요 부분이다.


동성애가 옳은지 아닌지를 두고 씨름하는 젊은 신자를 예로 들어 보자. 목회자는 이 신자에게 동성애가 성의 목적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과 상충하므로, 잘못된 것임을 나타내는 특정 성경 본문을 지적할지 모른다. 아마 이 신자는 이 과정을 통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신자가 추가적인 문제와 여전히 씨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단지 비열한 독재자여서 동성애를 금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나의 게이 친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 어째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행동을 금하셨을까?


나이 든 신자는 성경적 윤리가 젊은 신자에게 납득된다고 더 이상 상정할 수 없는데, 성경적 윤리가 작용하는 사회적 상상은 우리가 성장한 사회적 상상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내용뿐 아니라, 기독교 도덕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이 시나리오에서는 단순히 성경이 몇몇 본문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런 본문이 더 큰 그림 속에서 의미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더 큰 그림은 성이 인간의 인격성과 관련해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작용인 폭넓은 성경적 측면도 있고, 가령 특정 성행위로 신체에 가해진 손상의 증거와 같이 남성과 여성의 몸의 성적 상보성과 관련된 ‘자연법’의 측면도 있다. 여기서 자연이 결정적 논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자연에 임의로 부과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연과 서로 관련이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참으로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자연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명령이 의미가 있음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된다.



원제: 6 Ways Christians Can Respond to Our Strange New Worl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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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몸의 신학은 세상에 대처하기 위한 변증학 도구라기보다, 교회 자체 안에서 설득력 있는 교육 전략의 중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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