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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성경적 예배를 통해 직관을 형성하자

이상한 신세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by Carl Trueman2022-10-08

시편이 공동 찬송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시편을 공동체로 노래하는 것이 유대인의 사회적 상상을 형성했다. 그리고 교회도 오늘날 똑같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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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상이 변했다. 자아성(selfhood)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도전한다는 것이 위험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도덕적 양식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세계의 광범위한 신념에 동의하지 않아도 전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존경받을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어도 저물어 가는 중이다. 기독교가 형성한 사회적 상상의 마지막 자취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심지어 지금 이상한 신세계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처지다. 


자아성 혁명은 구체적으로 성혁명의 다양한 국면에 나타나듯이 유치원 교육부터 직장 내 대명서 사용 정책[직장 내에서 성별을 구별하는 대명사를 사용할지 말지 같은 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의 삶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말하자면 아직은 이런 일을 피하면서 당분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영원히 숨을 수는 없다. 조만간 우리는 모두 현대적 자아성의 관념이 만들어 낸 도전적 상황과 마주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 순응하라는 압력에 직면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갈수록 시급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세계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 여섯 가지 대응 방안이 있다. 


복음과도시 편집자 주_ 이 글은 칼 트루먼, (신좌파 성혁명과 LGBTQ+운동이 만든) 이상한 신세계의 제9장을 부흥사개혁사의 허락을 받아 간추린 것으로, TGC의 “6 Ways Christians Can Respond to Our Strange New World”를 참고하여 편집하였다. “신좌파 성혁명과 LGBTQ+운동이 만든 이상한 신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여섯 가지 방안을 6회에 걸쳐서 싣는다. 


1. 이 시대에 우리도 가담했음을 인식하자

2. 고대 교회에서 배우자

3.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가르치자

4. 성경적 예배를 통해 직관을 형성하자

5. 자연법과 몸의 신학을 회복하자

6. 현실적 소망 안에서 살아가자


우리가 현대 사회 속에서 발견하는 형태의 표현적 개인주의는 개인과 개인의 욕망(심지어 자아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을 도덕적 세계의 중심에 두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땅의 계층 구조에서 어디에 속하느냐와 상관없이 보편적 인간 존엄성의 관념에 대한 근본적 헌신같이 표현적 개인주의에 내포된 중요 진리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심리적 공간, 우리의 감정, 우리의 욕망에 대한 표현적 개인주의의 강조는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사실상 그 자체로 목적으로 만들 때만 잘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정과 욕망이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우리는 단순히 본능의 동물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존재여서 우리의 내면 생각은 우리의 정체성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내면의 심리적 공간을 인정하고 이 공간의 직관을 올바른 방식으로 형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서전 ‘고백록’은 기독교 문학의 고전이다. 이 작품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에 경험한 중요 사건들을 회상하면서 자기의 정신생활에 집중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내향적 반성의 움직임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항상 외부로 하나님을 지향하면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감정은 하나님 및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라는 더 큰 진리의 맥락 안에 놓이며 이 진리를 기준으로 교정된다. 비슷한 역학관계가 시편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편 저자는 친구, 원수,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감정에 대해 종종 노골적이면서도 지나칠 만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확인, 또는 훨씬 나쁘게 말하면 방종한 자기 연민을 탐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야기하고 있는 경험과 감정을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의 맥락 안에 두기 위한 것이다.


교회가 이 진리를 붙잡고 우리의 심리적 직관을 성경적 방식으로 형성하려면, 예배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행동 중 하나인 찬양을 길게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 시편이 공동 찬송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시편을 공동체로 노래하는 것이 유대인의 사회적 상상을 형성했다. 그리고 교회도 오늘날 똑같이 해야 한다. 우리가 표현적 개인주의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루소에서 오프라 윈프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는 것과 정서를 우리의 생활방식을 위한 토대로 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정서와 감정의 자리를 없애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기의 정신생활을 알맞게 형성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공동 교회 생활을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감정을 위해 감정을 탐닉하거나 나의 필요와 욕망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이유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지 않는 예배 음악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는 자기의 감정을 이해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게 해 주면서도, 항상 밖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노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주장하듯이 교회가 시편만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더 많은 시편을 (또는 여러분이 아직 시편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어떤 시편이라도) 노래하는 것이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편에 대해 생각해 보라. 시편은 기쁨을 특징으로 하지만 또한 슬픔과 상실도 알고 있는 기독교 인생관을 제공한다. 시편은 현재의 투쟁을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위대한 행동과 미래를 위한 약속의 맥락 안에 둔다. 시편은 우리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인 자기의 신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나님의 웅장한 그림과 미래 안식에 대한 약속을 제시함으로써, 시편은 우리가 질병 같은 개인적 사건이든, 이 책에서 설명한 충격적 변화 같은 사회적 사건이든 간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이고 감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감정과 정서의 존재인 동시에 타락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감정과 정서를 올바른 맥락으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속의 노래가 필요하다.



원제: 6 Ways Christians Can Respond to Our Strange New Worl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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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우리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인 자기의 신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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