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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사역이 예상보다 더 어려울 때
by Tyler St. Clair2018-12-10

또 다시 주일 사역으로 녹초가 된 나와 아내는 거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었다. “우리에게 사역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나는 (눈물을 참으며) 아내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즈막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우리는 10년 넘게 사역하며 겪었던 승리와 시련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6년 시작한 교회 개척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건강하고 아름답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때때로 그 고통은 마치 출산을 했는데도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확실한 불확실성


수년째 평온한 지역에서 잘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아내에게 폭탄과 같은 말을 던졌다. 주님이 안정적인 지금의 직장을 정리하고 교회 개척 사역에 전념하도록 나를 이끄시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당시 내가 벌던 수입으로는 필요한 자금의 6-70%밖에 충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족을 데리고 디트로이트로 이사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아내의 마음은 여러 감정으로 복잡해졌다. 그녀는 당황함과 두려움으로 내게 화를 냈다. 또 분석적인 성격을 따라 내 생각이 왜 잘못된 결정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기도하고 토의하였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의 결정은 이후 여러 해 동안 우리가 겪게 될 험난할 시간의 출발점이었다. 예를 들면, 디트로이트의 악명 높은 우범 지역으로의 이사, 연봉의 대폭 삭감과 좋은 사보험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 자금 충당을 위해 쉬지 않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일, 우리를 해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노출하는 일,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우리 자녀들을 떼어놓는 일, 극심한 가난, 깨진 관계, 학대를 겪는 사람과 깊은 관계 맺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우리에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삶의 ‘불’확실성이었다. 우리는 교회를 개척한 지 막 2년이 된 지금도 비슷한 여정에 있다.


새로운 이 공동체를 섬기다 보면, 폭풍 구름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결국 그 폭우에 흠뻑 젖기도 한다. 이제 거의 2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다른 교회가 이즈음이면 가질 법한 인력과 재정을 여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교회 침입과 차량 도난을 여러 번 경험했고, 건물주에게 금전을 강탈 당한 적도 있다. 혼란의 도시에서 사역하며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예측 불가능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고난의 중첩


이처럼 어려운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많은 힘든 일을 겪었지만, 내가 잘못 계산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 가족이 치르는 희생의 값이었다. 아무리 자주 아내와 데이트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아내와 자녀들이 치른 대가를 벌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안해, 우리는 그럴 돈이 없어.”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나는 슬픔 혹은 후회와 씨름했다(그리고 여전히 종종 씨름한다).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교회 개척에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내 자녀들은 인간의 타락을 전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생활 환경으로 인해서, 어린 시절에 누려야 할 순수함을 잃었다. 아이의 친구들은 그들 가정에 지낼 곳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또 부모가 투옥되는 바람에 그 친구들이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일도 우리 자녀들은 보았다. 한 번은 내가 마약을 구매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는 바람에 체포된 적이 있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아내와 자녀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야 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보통의 어른들조차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거기에 지난 수년간 아내가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도리조차 없다. 그녀는 교회 개척으로 인해 경제적 안정과 이전에 살던 집을 포기해야 했고, 이상적인 교육과 휴가의 기회를 잃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남편 없이 보내야 했다.


지금도 아내는 집안을 돌보면서 동시에 다른 자매들을 양육하느라 엄청난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게다가 우리는 이 와중에도 여러 번 이사하였고, 그 밖에도 여러 차례 삶의 전환점을 겪었다). 아내가 치르는 희생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이 사역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지속하게 만드는 은혜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이 이 가족을 지켜 주셨다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 큰 대가를 치러 왔는가? 바로 예수님이 그럴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신 분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주님은 내 마음에 이 말씀을 새겨 주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무한히 큰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분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8). 다가올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히 12:2). 죄 없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자기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고후 5:21).


어려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과연 우리가 희생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31-1873)이 말한 것처럼, “만약 이 땅의 왕에게 파송 받는 일을 영광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하늘의 왕에게 파송 받는 일을 희생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바울처럼 주님이 요구하시면 무엇이든 하리라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그 어떤 손실보다도 가치 있는 분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얻고(엡 3:8),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엡 1:3).


내 이야기는 간단하다. 주님이 들려 주신 숨겨진 보화나 값진 진주의 비유와 같이(마 13:44-46), 아내와 나는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라면 이 모든 일을 감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을 섬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n Ministry Is (Way) Harder Than You Expected

번역: 하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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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yler St. Clair

타일러 클레어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Cornerstone Church Detroit의 선임 목사와 Church in Hard Places in Acts 29’s U.S. Midwest Network의 리더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