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 ������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신약의 메시지
by 정현구2022-07-30

‘온유한 자’는 성품이 온순하고 유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하나님의 다스림 앞에서 유순한 사람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정현구 목사의 주기도문과 하나님 나라]


기도, 타인을 향한 자비의 실천

주기도문,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구약의 메시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신약의 메시지



온유한 자 


예수님이 산상수훈 이야기를 하셨다. 팔복으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복을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팔복은 천국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팔복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란 사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심령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잘 알려주는 내용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구절이다. “온유한 자”는 성품이 온순하고 유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하나님의 다스림 앞에서 유순한 사람이다. 그 온유한 사람이 땅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가 주어진 삶의 현실을 다스리며 왕처럼 살아간다는 뜻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다스린다.


민수기 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는데, 모세는 원래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광야 40년의 용광로 속에서 제련되어나온 다음 성품이 굉장히 유순하게 바뀌었다. 사실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체질로 바뀐 것이다. 온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을 얻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가정도 잘 다스린다는 말처럼, 하나님께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백성을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성이 불평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권위에 도전하자 모세는 분노한다.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바위를 명하라고 하셨는데, 그는 지팡이로 바위를 쳐버렸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분노의 다스림을 받은 것이다. 이후 하나님은 모세가 이 사건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사람이 주어진 땅을 다스리며 사는 곳이다. 그런데 모세는 이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오직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다. 성령충만에 관련된 구절을 둘러싼 에베소서 4, 5, 6장은 부부 관계, 부자 관계, 노사 관계, 국가와의 관계 등 삶의 다양한 현실들이 나온다. 부부를 향하여 “피차 복종하라” 하고, 부모를 향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하고, 자녀에게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관계의 현실이 나오는 본문의 중심에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면 부자 관계, 부부 관계, 노사 관계와 같은 현실의 땅에 속한 여러 문제를 다스리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와 갈등에 정복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그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림으로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시켜가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다스림을 받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로 부름받았다. 에베소서 2:5-6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한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유명한 중국 전도자 워치만 니(Watchman Nee)가 에베소서를 강의하면서 좌행참:앉으라, 행하라, 서라라는 얇은 책을 썼다. 그중 좌(坐)는 ‘앉다’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앉히신다는 말은 그냥 쉬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왕의 의자에 함께 앉는다는 의미다.


사도신경에도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편한 소파에 앉아 쉬고 계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의자에 함께 앉아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지금도 하늘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과 같이, 신자들도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앉히셨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옆에 앉아서 다스리듯이, 우리도 영적으로 그리스도 옆에 앉아서 다스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스림을 받아 주어진 삶의 땅을 다스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한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 임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삶의 다양한 문제에 정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염려를 감사로 바꾸며, 문제를 기도로 돌파해 나가고, 사고를 만나도 절망하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오히려 치유자가 되어 주어진 삶의 땅을 다스리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우선으로 구해야 할 것이 바로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준공한 다음에 일천 마리 양으로 엄청난 제사를 드렸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구할 것을 물으셨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며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그 대답에 매우 흡족해하셨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는데, 그 듣는 마음은 바로 순종하는 마음이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았을 때 그는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채워주셨다.


주기도문이 나오는 마태복음 6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은 기도할 때 이 한 가지를 구하라고 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의 나라와 의는 그분의 다스림이다. 주기도문 전반부의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와 같은 내용이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는 것은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기도문 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삶의 현실에서 왕처럼 다스리며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신구약 성경에 흐르는 큰 줄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다스림을 받는 만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해야 할 매일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주셔서 내가 딛고 있는 땅과 역사를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살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런 기도를 드리고, 이런 기도를 살아낸다면,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이 서 있는 삶의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나가는 사람의 가슴 속에, 그리고 그 사람의 현실의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유대 종교의 중심지였다. 당시 헤롯은 금을 칠한 성전을 짓고 있었다. 수많은 양이 제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형식적으로 많은 제사를 드렸지만 마음속에 진짜 하나님의 다스림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형식적이었다. 


그런데 다스림을 참으로 구하는 소수가 주변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드로, 요한과 같은 어부 몇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역사가 완전히 바뀐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이야말로 역사의 중심지이고, 그곳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역사는 갈릴리, 즉 주변부에서 일어났다. 어디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고 역사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장되는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잘 받고 삶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일어난다. 그러니 주변부가 중심부가 되고 중심부가 주변부가 되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핵심은 주기도문이 말한 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제대로 깨닫고 이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주기도문이 보여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소서, 다스림을 받아 다스리게 하소서’라는 분명한 두 가지 원리가 어떻게 구약과 신약에 흐르는지를 살펴보았다. 주기도문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교훈을 얻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주기도문을 간구함으로 주기도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땅을 다스리면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은 하나님 나라 복음(새물결플러스)에 실린 정현구 목사의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다시 엮은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흐르는 큰 줄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다스림을 받는 만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정현구

정현구 목사는 부산대와 서울대학원 영문과를 거쳐 고신대신대원(신학)과 예일대와 밴드빌트 대학(기독교사상사)에서 수학했으며,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와 기윤실 공동대표, 희년선교회 이사장, 복음과도시 이사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광야에서 삶을 배우다, 다스림을 받아야 다스릴 수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