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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하나님을 아는 지식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 J. I. 패커를 기리며

by Sam Storms2022-07-21

“이 책을 읽고 독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점에서 시편 기자의 마음에 더 가까워진다면 이 책은 헛되이 쓰인 것이 아닐 것이다_제임스 패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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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앞으로 함께 읽을 기독교 고전


• 장 칼뱅_기독교 강요

• 아우구스티누스_고백록

• 조나단 에드워즈_신앙감정론

• C. 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 J. C. 라일_거룩

• 존 오웬_죄 죽이기

• 존 밀턴_실낙원

• 아타나시우스_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 J. I. 패커_하나님을 아는 지식

• 리처드 십스_상한 갈대  

(글 싣는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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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이넬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년 7월 22일 - 2020년 7월 17일) 


신중심(theocentricity)은 “하나님 중심”을 간결하게 담아내는 장엄하고도 인상적인 단어이다. 이 단어에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의 핵심이며, 우리가 하는 행동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근원의 힘이시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 누구도 고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쓴 고 J. I. 패커(1926-2020)보다 더 신중심 관점을 잘 드러낸 저자는 없다. 


제임스 패커는 상당히 유명하다. 형벌 대속 속죄(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에 대한 엄격하고도 철저한 성경적 표현, 성경 무오성에 대한 확고한 변호, 그리고 청교도의 공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많은 자질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유명한 패커가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왜소한 기독교


패커는 하나님 중심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나 영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마음의 애정에 생명을 주는 열기가 있으려면, 먼저 그 마음에 성경의 빛이 내리쬐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성경적 지식, 그리고 거기에 대한 인지적 이해야말로 기독교를 기독교로 만드는 모든 것의 기초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패커의 방식이었다. 패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곧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그분을 아주 왜소하게 축소해 버리는” 것이며, 결국 그렇게 “왜소해진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리스도 예수의 충만함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17). 


패커가 지금 과장하는 걸까? 이런 말이 단지 신학적 과장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패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채로 살려고 애쓴다면, 우리 자신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이상하고 미친 듯하며 고통스러운 장소이고, 삶은 실망스럽고 불쾌한 일이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아무런 방향 감각 없이 그리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아마도 당신은 사는 동안 내내 비틀거리고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26). 


패커는 독자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단지 더 차원 높고 궁극적인 영혼의 만족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하려는 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수단이 될 때, 그 결과는 자존감 상승, 지역 교회가 누리는 더 큰 권력과 존경, 또는 이 지상에서의 더 큰 부와 같은, 훨씬 덜 중요한 목표로 자신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패커의 이 저작을 읽고 이해하려는 모든 독자를 위한 그의 기도는 에베소 성도를 향한 바울의 기도와 똑같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이고 또 무엇을 수반하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그분의 성품이 어떠한지에 관해 비추시는 성령님의 빛에 의지하여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패커는 말한다. 그러나 듣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경청 후에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우리의 삶과 생각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길지에 관해서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기쁜 마음으로 그 진리를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다면적인 방법을 부지런히 탐구해야 한다. 그 탐구는 하나님의 속성과 행동에 대한 면밀하고 진지한 연구를 포함하며, 그 결과 하나님에 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어져 그분이 누구이며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뜨거운 찬양과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패커는 우리가 하나님께 공헌을 하거나 하나님에게 부족할 영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찬양과 직접적인 순종, 그리고 우리 앞에 열린 모든 선택 중에서 그를 가장 기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항상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그를 높이고 또한 경의를 표한다. 즉, 우리는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세 가지 개념이 하나로 융합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종합적인 목표이다(기도, 20)


패커는 기독교 희락주의(Hedonism)라는 명시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점을 근본적인 진리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모든 활동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그를 위해 존재한다”(Hot Tub Religion, 36). 우리는 그를 영원히 즐거이 누림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 계속해서 패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옳다면, 하나님께서도 같은 목적을 갖는 것이 잘못일까?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높은 목적을 가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작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건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이 옳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단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해 범사에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이시기를 멈추라는 요구와 같은 말이다. 하나님을 향해 존재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신성모독은 없다(Hot Tub Religion, 38).


하나님의 속성 찬양하기


그 어떤 책도, 또한 우주의 모든 책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다 확인하고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패커는 성경에서 특별히 강조된 하나님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의 연구를 제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성숙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이다. 


그는 빌립보서 3:7-10에서 지나간 모든 것을 “배설물” 즉 “똥”으로 여겼다고 말한 바울의 감정을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패커는 바울의 의도가 그러한 것들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바울의 말은 또한 그것들을 계속 마음에 둔 상태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향수에 젖어서 멍하니 똥거름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겠는가?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이 바로 이러한 일을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37).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조차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가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패커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진리는 언제나 영적 변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항상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영광스럽고 안도감을 주는 약속,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성품에 해당하는 신성한 불변성을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위엄, 측량할 수 없는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에 관해서도 장을 할애한다. 하나님은 또한 확고하게 의롭거나 거룩하지 않으시면 결코 하나님이실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 아예 하나님의 진노를 없애려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지만, 패커는 죄를 향해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은 그 어떤 경배와 헌신을 받을 가치도 없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지만 동시에 반직관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게 바로 하나님의 질투에 관한 부분이다. 왜 그런지 궁금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출 34:14)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구속한 자들에게 전적이고 절대적인 충성을 요규하시며, 그들이 신실하지 못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다면 단호한 행동을 취하심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보이시리라는 의미다”(271).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아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이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패커는 이 책이 기독교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1993년 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이 1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1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에 패커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그때로부터도 거의 30년이 지났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이 고전에 관해 훨씬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 놀라운 책을 합당하게 평가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패커 자신이 이 책에 관해 결론 내린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이 책을 읽고 독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점에서 시편 기자의 마음에 더 가까워진다면 이 책은 헛되이 쓰인 것이 아닐 것이다(447).  




원제: Knowing God: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패커는 하나님 중심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나 영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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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m Storms

샘 스톰스는 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ThM)를 받고, The University of Texas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Enjoying God Ministries의 설립자이고, 현재 오클로호마주 오클로호마시티에 위치한 Bridgeway Church의 선임 목사이며,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대표 저서로 'Practicing the Power'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