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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설교란 무엇인가?
by 고상섭2022-06-18

복음설교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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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이 아닌가? 


복음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복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다양한 ‘복음’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팀 켈러는 센터처치(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를 시작하면서 “복음은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복음을 설명한다. 왜 ‘복음은 ~이다’라는 긍정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이처럼 부정문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면 ‘복음은 ~이다’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그는 ‘복음은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팀 켈러는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하지 말라’라는 소제목으로 논리를 이어간다.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한다는 말은 복음의 결과를 복음으로 착각한다는 말이다. 결국 ’복음이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복음의 결과’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의 결과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복음을 잘못 이해할 때 생기는 두 가지 오해인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가 생겨나게 된다.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한다는 말을 싱클레어 퍼거슨은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말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말라는 말은 인간의 행위가 먼저 있고 그 행위에 따른 축복을 누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고 그 은혜의 반응으로서 인간의 순종이 있다는 말이다.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게 되면, 칭의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인간적인 노력으로 성화를 이루어가야 된다는 율법주의를 양산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명령법 앞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먼저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다. 출애굽기에 십계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출 20:4)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명령형은 단순히 인간이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 아니다. 이 명령에는 그 명령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이 먼저 행하신 은혜가 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은혜를 선포한 후에 십계명을 요구하신다. 즉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명령 앞에 먼저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 즉 은혜가 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동일하다. 우리의 순종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칭의와 연결되어야 한다. 


칭의와 성화의 순서를 놓치게 되면, 복음을 왜곡하게 되어서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첫째아들처럼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이 순종했지만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율법주의자가 된다. 첫째아들이 순종한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순종으로 인해 받을 유익 때문이었다. 칭의와 성화의 순서가 연결되지 않으면 복음이 왜곡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자신의 마음대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둘째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는 결국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결과이며, 칭의와 성화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칭의가 성화와 연결되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이 분리되면 율법주의자 또는 반율법주의자를 양산하게 된다.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 


그렇다면 복음설교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동기가 되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설교란 ‘그리스도 중심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대신 행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브라이언 채플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FCF,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인간의 타락한 상황 드러내기(The Fallen Condition Focus)라 말한다. 


FCF는 설교의 진정한 주제를 결정해 준다. 왜냐하면 그 구절이 쓰인 진정한 목적이 바로 FCF에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설교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FCF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성경 본문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 이것이 우리가 성경본문을 타락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결국 FCF가 설교의 주제와 그 접근법을 결정하고 내용까지 구성한다(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54쪽).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억지로 드러내려 하다가는 자칫 성경을 왜곡할 위험에 빠칠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 설교란 본문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 대안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행한 일을 선포하는 것이다. 즉 칭의가 성화의 도구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 적용설교


팀 켈러의 설교를 분석해 보면 단순히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가 아닌 칭의를 성화와 연결시키는 ‘그리스도 중심 적용설교’라 할 수 있다. 이 설교가 도덕주의 설교와 다른 이유는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에 있다. 인간적인 결단을 통해 “내가 ~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하겠다”라는 것은 도덕주의, 율법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지만, 행위의 동기가 칭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의 동기로 순종하는 칭의와 성화가 연결되는 설교가 된다. 


칭의와 성화가 분리가 되면 도덕주의 설교가 되지만, 칭의가 성화와 연결되면 ‘그리스도 중심 적용설교’가 된다.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복음 즉 칭의를 통해 다양한 삶의 자리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팀 켈러는 센터처치에서 복음이 적용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언급한다. 낙망과 우울, 사랑과 인간관계, 성, 가정, 자기관리, 인종과 문화, 전도, 인간의 권위, 죄책감과 자아상, 기쁨과 유머, 다른 계층에 대한 태도 등이다. 이런 주제들이 모두 복음의 동기 즉 칭의와 연결되어 성화 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적용점이다. 


D. A. 카슨도 바울의 고린도전서를 설교의 적용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고린도전서는 복음이 어떻게 태도나 정신기강, 인간관계, 그리고 문화적 상호작용들에 광범위한 변혁을 일으키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을 향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이 작동해야 함을 반복해서 강조한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동일하게 그래야한다. … 복음이 다음의 영역들에서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복음이 어떻게 사업 관행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상업상의 우선순위들을 바꿀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작업은 복음으로부터 사회적 원칙을 추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려는 헛된 노력으로 끊임없이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을 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복되신 구주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교회들 속에서 전파하고 가르치고 살아냄으로써 되는 것이다(센터처치, 93쪽).


복음 설교와 설교자


아마도 가장 탁월한 성경 설교자들의 (성경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탁월성은 본능에서 나온다. 그들의 공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멍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원리들은 무의식 가운데 발전된 것이고, 타고난 능력과 은사, 청중과 설교자로서의 경험을 조합해 터득한 것이다. 성경적 설교는 그들의 모국어가 되었다. 그들은 성경신학의 문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지금 언어 체계의 어느 부분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말이다(설교, 118쪽).


팀 켈러는 설교에서 복음설교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를 ‘본능’이라고 언급했다. 이 말은 많은 설교자들을 좌절시키는 말이다. 왜냐하면 설교를 잘하는 사람은 타고났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 켈러가 여기서 말하는 ‘본능’은 단순한 타고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설교는 복음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 설교는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선포되는 것이다. 


설교자의 내면이 설교보다 더 중요하다. 또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설교할 때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과 거의 같다. …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설교할 때도 일어나지 않는다(설교, 228쪽). 


설교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한다면, 설교 전의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절한 감격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아닌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에 목매어 통곡하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설교자의 삶을 통해 설교가 선포되는 것이다. 


결국 복음설교 즉 그리스도 중심 설교란, 단순히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는 설교자의 뜨거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다.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바로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핵심일 것이다.  


복음설교를 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설교자인 나는 오늘 복음에 감격하고 있는가? 

복음설교 즉 그리스도 중심 설교란, 단순히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는 설교자의 뜨거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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