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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는 이제 선교에 대한 관심을 멈췄는가?
by Douglas A. Sweeney2022-06-12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수입의 0.09퍼센트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을 글로벌 선교에 지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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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도전, 지상 명령을 지향하려는 우리를 낙담시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냉엄한 사실


오늘날 세계에는 거의 80억 명이 살고 있으며,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그 중 28퍼센트가 복음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스도인 수는 모두 25억 명(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 모두 포함)이고, 선교사는 43만 5000명이다. 그러니까 전체 그리스도인의 0.01퍼센트가 외국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연간 총 수입은 53조 달러이고, 해외 선교에 지출하는 금액은 520억 달러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수입의 0.09퍼센트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세계 선교에 지출하고 있다.


이 수치를 일반 가정에 적용해 보자. 이 통계에 따르면, 미국 그리스도인이 각종 기독교 사역에 지출하는 금액은 크리스마스 비용과 비슷하다. 해외 선교에 지출하는 만큼 우리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돈을 쓴다. 그리고 미전도 종족 복음화보다 애완동물을 위한 할로윈 의상에 더 많은 돈을 쓴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런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나와 같다면, 이러한 통계 앞에서 부끄럽고 우울하고 또 죄책감까지 느낄 것이다. 물론 이런 수치를 아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숫자 뒤에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구속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주권자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진정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한 확신을 지금 잃어 가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이 오늘날 제자도를 방해한다. 수세기 동안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역사 속에는  세속적인 세상을 초월하는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역사에는 의미와 방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내적 조언(창세 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사이의 합의)에서 나온다. 


창조와 함께 시작된 역사는 인류가 죄에 빠지면서 나선형으로 흘렀고, 잃어버린 자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에 의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운행하셨다.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그 좋은 소식을 전함으로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고 그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명하신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 말이다. 역사는 구주의 재림과 함께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혼으로 끝이 날 것이며, 구주와 함께 빛나는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과거에만 해도 대부분 그리스도인에게 실제이고 진리였다. 바로 이런 사건이 우주를 앞으로 이끌어 가는 동력이었다.


그러한 이런 믿음은 대부분 서구 세계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적어도 세속 대학, 엔터테인먼트 산업 및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미래를 건설하라.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라. 무슨 이야기를 할지 주의를 기울이라.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러니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라. 진짜 죽어야 할 정도로 큰 죄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이런 철학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사명감을 상실하는 건 세속주의 인간 역사와 운명에 대한 해석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진짜 북쪽, 그러니까 정확한 기준이 없을 때 우리의 행동은 줄어든다. 타고 즐기는 게 목표라면,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제는 객관적 가치와 영원한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유명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1800년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바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나간 시대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전에 죽을 때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우편 손으로 갔다.

그런데 그 손이 지금은 잘리고 없다.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믿음의 포기는

행동마저 하찮게 만든다. 

아예 아무런 빛이 없는 거 보다는 

희미한 도깨비불이라도 있는 게 더 낫지 않던가


그녀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의 약화가 우리가 사는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청지기로서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관리해야 할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가를 치르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서로 격려하며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확신을 굳건히 하자. 


그리스도인이라면 알고 있던 것


짧은 교회사 공부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승천 당일, 사도들에게 더 많은 제자를 삼으러 나가기 전에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4, 8).


자, 성령이 임하시고 교회가 성장했다. 고대 기독교 성장률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학자도 서기 150년에는 약 4만 명, 200년에는 20만 명 이상, 300년에는 6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성령은 더 많은 제자를 준비시키는 제자를 계속해서 일으키셨다. 그 중 소수는 “땅 끝까지” 여행하여, 그 후 몇 년 동안 교회 성장을 가속화했다. 1900년까지 교회는 전 세계 인구의 거의 35퍼센트인 6억 명을 돌파했다. 많은 사람이 다음 세기가 세계 기독교의 황금시대인 “기독교 세기”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물론 기독교 전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른바 중세 시대에 기독교세계(Christendom)의 지리는 이슬람 정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심하게 축소되었다. 500년에 기독교는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했으며, 인구 통계학적으로 지중해 동부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150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더 작은 부분을 차지했으며(천 년 전보다 약 2퍼센트 적음), 그 때 전 세계의 무게 중심은 유럽의 심장부에 있었다. 실제로 전체 그리스도인의 거의 92퍼센트가 유럽에 살았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놀라운 비율이다. 그러나 서양 근대사를 거치며 신앙이 더욱 약해졌고, 그에 따른 불가피한 세속화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은 하나님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 사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18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흠이 없고 썩지 않는다(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서유럽인 사이에서는 신앙이 쇠퇴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세계 여러 곳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현대 선교 운동이 한창이던 1900년에 이르러, 교회는 1500년에 비교해서 일곱 배가 더 커졌다. 그러나 20세기, 적어도 전망처럼 서구에서 “기독교 세기”가 되는 건 실패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엄청난 인구 증가,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 기독교 헌신의 감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의 증가로 인해 기독교는 20세기 동안 전 세계 인구의 1퍼센트 이상이 감소했다. 북반구에서는 인구의 82퍼센트에서 41퍼센트로 급감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전체적으로 겨우 1퍼센트만 감소했을까? “2/3 세계”에 해당하는 여러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이 성장했고, 1900년에 약 9,900만 명(인구의 18퍼센트)이었던 신자가 2000년에는 거의 12억 명(인구의 59퍼센트)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실로 20세기가 기독교 세기가 되었다. 그리고 21세기는 서로 다른 문화가 다양하게 제자도에 참여하기에 좋은 시대가 되었다. 


순종은 작게 시작한다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움직임에 동참하자. 장 칼뱅이 말했듯이 믿음의 안경을 끼고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으로 시야를 넓히고 세계사를 바라보자. 국내외에서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자. 돈이 없거나 해외 선교에 참여할 여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세계 여러 국가의 국민이 우리 곁으로 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당장 이민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지역 교회의 선교 사업에 협력하고, 또 어디에 있든지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재림 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고 사랑하면서 사역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그분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신다. 구속의 역사에서 주님은 우리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길 원하신다. 



원제: When Did Evangelicals Stop Caring About Mission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대가를 치르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서로 격려하며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확신을 굳건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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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ouglas A. Sweeney

더글라스 스위니(Douglas A. Sweeney)가 쓴 책으로는 ‘에드워드, 주석가(Edwards the Exeget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