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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성도의 견인: 후순위 교리인가 기초 교리인가?
by Jeff Robinson2022-06-06

삼위일체, 성육신,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등 기본적인 교리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한다면, 우리가 쌓는 믿음의 건축 전체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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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의심스러웠다. 분명 그 집에 뭔가 숨기는 게 있거나 아니면 영화 ‘대부’로부터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제안”은 켄터키 주 루이빌의 가장 좋은 지역에 있는 집에 붙은 아주 싼 가격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절대 이런 거래에 속지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왜 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는지 알게 되었다. 집의 골조가 아예 깨어져 있었다. 벽이 갈라지고 결국 집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뻔한 소리지만, 이런 숨겨진 문제가 있는 집을 나는 그 즉시 거절했다. 


기독교 신학도 집과 비슷하다. 삼위일체, 성육신,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등 기본적인 교리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한다면, 우리가 쌓는 믿음의 건축 전체가 무너진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다 같이 서거나 아니면 함께 무너진다. 


기독교의 핵심에 있어야 할 중요한 교리 하나가 “착한 사람은 동의하지 않는” 교리로 격하된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성도의 견인 교리이다. 왜 그럴까? 종종 “영원한 보증”이라고 불리는 이 견인 교리를 거부하면 이단이 되는 걸까? 나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러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조차도 얼마든지 배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단이라고 부를 마음은 없다. 그러나 이 교리를 거부하는 건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위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의 살 뻔했던 그 엉터리 집처럼, 견인 교리의 거부는 그 교리를 기초로 하는 다른 많은 중요한 교리까지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진짜 신자가 구원을 잃고 영원히 버림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로 인해 발생할 다음과 같은 피해까지 고려해야 한다. 


선택/예정.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는데도, 그 백성이 스스로 “그 선택을 취소”하는 게 가능할까? 선택 교리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상관없이, 결론적으로 궁극적인 배도가 가능하다면, 그건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대속. 마가복음 10:45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의 목숨을 내주셨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짊어지셨다. 그런데 그렇게 대속한 사람을 궁극적으로 잃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지불한 값이 영원한 구원을 이루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따라서 궁극적인 배도가 가능하다면, 그건 예수님이 치르신 속죄를 약화시키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한때는 그리스도가 흘린 속죄의 피로 덮였던 사람이 자유 의지를 행사해서 그 피가 더 이상 자신의 죄를 덮지 않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정죄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면 말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는 법적 선언을 받는 게 바로 칭의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배도가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평결을 훼손하고, 이전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면죄되었던 사람에게 판결을 번복하고 유죄를 확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견해는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종교 개혁의 근본 진리를 왜곡한다. 


성령의 내주 (또는 인침). 에베소서 1:13-14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궁극적 배도가 가능하다면, 구원을 보장하는 일종의 계약금과 같은 우리 속에 내재하는 성령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약화된다. 날려버리는 계약금과 마찬가지로,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다면 성령의 인치심도 별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또한 빌립보서 1:6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안에서 시작하시는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로마서 8:31-39의 영광스러운 구절은 그 어떤 것도 신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에서 우리 자신을 제거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얼마든지 피해서 갈 수 있다면, 이런 약속이 과연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이 약속이 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약속마저 깰 수 있는 인간에게 아무런 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을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히브리서와 로마서 8장이 주장하고 요한복음 17장누가복음 22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열심히 중보하신다면, 그런데도 그의 기도가 아무런 힘이 없다면, 도대체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만일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하신 것처럼,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 기도하시지만 그 기도가 좌절된다면, 그 사실은 그의 중보 사역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무오하심마저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는 예수님은 제발 자신의 기도가 이뤄져서 우리가 계속 믿음 안에 머물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성도의 견인. 견인과 뗄 수 없는 게 바로 인내이다. 베드로전서 1:3-5에는 구속받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은혜를 묘사하는 아름다운 약속이 들어 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만일 하나님이 하늘에서 우리의 기업을 보호하고 계시다면, 자유 의지가 우리의 구원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베드로가 말하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는 약속을 공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높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든지 훼손할 수 있다면, 베드로 사도의 이 약속은 공허하게 울리는 징과 다를 바 없다. 


견인 교리를 부정할 때 따라오는 부차적인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하지만 이 교리가 부정될 때 기독교 신학에 얼마나 큰 타격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일으키는 몇 가지만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내 추론이 완전히 성경적이라면, 성도의 견인은 결코 후순위 교리로 사소하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 무너진 기초 위에 어떻게 건물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원제: Perseverance of the Saints: Tertiary or Foundational?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견인 교리의 거부는 그 교리를 기초로 하는 다른 많은 중요한 교리까지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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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ff Robinson

제프 로빈슨은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고, 현재 미국 TGC의 편집장으로 섬기고 있다.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Christ Fellowship Church의 부목사이며, Andrew Fuller Center for Baptist Studies의 연구교수이며, Southern Seminary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겸임교수이다. 목회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약 20년 동안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공저서로 한국어로 번역된 '천국 묵상'과 'To the Ends of the Earth: Calvin’s Mission Vision and Legacy'와 '15 Things Seminary Couldn’t Teach M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