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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우기

미국 교회의 쇠퇴와 갱신: 복음주의의 쇠퇴(2-3)
by Tim Keller2022-04-23

보수 종교를 우파 정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 대중의 마음에 매우 강하게 자리 잡았고, 그런 현실은 기독교를 향한 대중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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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성찰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팀 켈러 목사의 4부작 중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주류 교회의 쇠퇴”이며, 앞으로 이어질 글은 “갱신의 길”과 “갱신을 위한 능력”입니다. 


[2-1] 

쇠퇴하는 신앙 

 왜 신앙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는가? 

 계몽 프로젝트의 실패 

[2-2] 

쇠퇴하는 복음주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2-3] 

 복음주의의 쇠퇴

 왜 쇠퇴는 역전될 수 있는가


복음주의의 쇠퇴


이제 우리는 왜 백인 미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종교가 다른 종교 집단을 따라 함께 쇠퇴했는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왔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는 사회 연구에서 너무 얽혀 있어 가장 많이 쇠퇴한 것이 근본주의 교회인지, 아니면 보수 개신교 전반에 걸친 것인지 알 수 없다. 두 번째 경우가 더 정확한 게 아닐까 추측하는데, 그런 상황을 초래한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미국에서 개종이 필요한 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진 미국인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보수 개신교인은 고도로 세속적이고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문화 기관은 기독교를 공언하든 않든 간에 인격적 하나님, 내세, 그리고 절대적 도덕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배출했다. 따라서 복음 전도와 교회 성장을 위한 기독교의 전략은 전도 대상자가 최소한 이러한 전통적인 “배경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뤄졌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일반적으로 보수 개신교는 세속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2.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가릴 것 없이 적지 않은 교회와 지도자가 영적 또는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 복음주의자는 역사적으로 유명 목사가 주도하는 강단과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책임감의 결여는 많은 유명 복음주의 목사와 교회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그래요(#ChurchToo) 운동은 여성에 대한 목사와 교회 지도자의 만연한 성적 비행을 폭로했다. 성보완주의(complementarian) 교회 지도자도 성평등주의(egalitarian) 교회 지도자도 모두 다 유죄이다. 


3. 특히 정치 세력화한 보수 교회가 국가의 절반을 마비시켰다. 양극화된 환경에서 백인 복음주의자가 특정 정당 및 대통령 후보와 강력하게 동일시함으로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 강령에 반대하는 나머지 50퍼센트로부터 적대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복음주의자가 소외시킨 50퍼센트는 더 젊고 민족 구성이 다양하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근본주의자가 이것을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여긴다.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보수 개신교인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지만 근본주의 그리스도인과 비교할 때 그들의 열정이나 지지도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되었든, 보수 종교를 우파 정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 대중의 마음에 매우 강하게 자리 잡았고, 그런 현실은 기독교를 향한 대중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4. 근본주의든 복음주의이든 보수 교회는 여전히 인종 문제로 힘들어 한다. 과거에 보수 백인 복음주의자는 (1) 원래부터 노예제를 지지했고, (2) 짐 크로우(Jim Crow) 시대에는 침묵했고, (3) 인권 운동을 크게 거부했으며, (4) 학교와 신학교를 통합하는 데 가장 느렸다. 오늘날 대다수의 백인 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자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구조적 불의나 조직적 인종차별을 부정함으로써 진보주의의 과잉에 대응하고 있다.


5. 근본주의는 반지성운동이며, 근본주의가 아닌 복음주의자는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로마가톨릭은 대중에게 인기 있는 종교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지식층 계급을 양성해 왔다. 근본주의의 대체적으로 반지성적 태도는 오늘날 대학의 진보적인 과잉에 놀란 보수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일반적으로 보수 개신교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고 미국 문화를 신학적으로 반영하는 능력이 거의 없도록 만든다. 복음주의자가 문화적 “포로”―성경적 믿음과 미국 문화 사이의 차이를 보는 능력의 결여―상태에 머무는 이유는 주로 복음주의적 학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 보수 개신교인은 세속 문화와 관련된 모델이 부족하다. 기독교 신앙과 실천이 지배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복음주의는 “기독교 국가”(Christendom) 문화의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이런 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복음주의자는 그들이 더 큰 사회와 어떻게 연결점을 만들지 정의하기 위한 “공적 신학”(public theology)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많은 근본주의자가 단순히 정부 정책을 통한 기독교 국가 재건을 꿈꾼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세상 문화와 아예 담을 쌓고 교회를 세우기 원한다. 오늘날 근본주의자로부터 비롯한 보수 개신교인과 복음주의자 사이를 가장 많이 갈라놓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왜 쇠퇴는 역전될 수 있는가


다음 글에서는 교회 갱신을 위한 계획을 스케치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마치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희망이 남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당연하다. 장애물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희망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갱신을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세속주의의 한계. 미국에서 나타나는 세속주의의 능력과 성장의 많은 징후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서 세속주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개인에게 의미와 정체성과 만족을 주는 데에 있어도 또한 고통을 직면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심각한 한계를 보여 왔다. 예측: 미래에는 세속주의가 지금처럼 설득력 있는 종교의 대안으로 부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2. 세계 기독교의 능력. 서양 이외 지역에서 기독교는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복음주의와 오순절이다. 미래 기독교의 지도자와 신학자는 다민족이 될 것이며, 이런 현실은 과거에 복음주의를 주로 백인 현상(white phenomenon)으로 치부했던 세속 사람들에게 믿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 것이다. 


3. 종교 인구 통계. 일반적으로 종교가 많을수록 자녀를 더 많이 낳는다. 이런 사회적 사실은 문화와 계층 전반에 걸쳐 적용된다. 이것이 일부 사회 과학자가 세계의 세속 인구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천정을 치고”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4. 선택된 종교의 전복적 성취. 주류 개신교, 로마가톨릭 및 기타 종교는 유전된다. 여러분은 말 그대로 특정 종교 안으로 “태어나며” 가족 때문에 그 종교를 믿는다. 젊을수록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모태 신자에 의존하는 교회는 현대 사회에서 더 빠르게 쇠퇴한다. 복음주의 신앙은 현대 문화가 가진 이런 면에 잘 적응한다. 왜냐하면 복음주의는 참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 즉 회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복음주의는 현대 문화가 가진 개인주의를 역행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할 때, 우리는 또한 나 자신의 지혜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예수님의 지혜로운 권위에 굴복하기로 기꺼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5. 신앙의 번역가능성. 기독교는 정통 이슬람교나 유대교와 달리 신약성경에 레위기가 없다. 음식, 의복 및 기타 일상 활동에 대한 세부 규정이 지정되지 않아 그리스도인은 주변 사회와 얼마든지 완전하게 통합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은 기독교 신앙 안으로 구축되었다. … 사도행전 15장은 새로 믿게 된 이방 그리스도인이 굳이 유대 문화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 개종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헬라 방식을 만들어나갔다. … 그 누구도 기독교 신앙을 독점하지 않는다. 파키스탄에서 튀니지, 모로코까지 알 수 있는 ‘이슬람 문화’가 있는 것과 달리, 그런 식의 ‘기독교 문화’라는 것은 없다.”[17] 간단하게 말해서, 기독교는 새로운 문화 또는 상황 속으로의 번역될 가능성(translatability)이 매우 높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강력한 능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18] 


6. 예수님의 약속. 체스터턴이 쓴 ‘영원한 사람’에는 “기독교 신앙의 다섯 차례 죽음”에 대한 장이 있다. 여기서 그는 정통 기독교가 심각하게 도전받았던 시대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3세기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한 아리우스 논쟁, 유럽 계몽주의 시대 볼테르와 회의주의의 등장, 다윈과 과학주의의 부상 등이 그 때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만난 기독교는 언제나 더 강해졌고 오히려 더 성장했다. 체스터턴은 특유의 비틀기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적어도 다섯 차례에 걸쳐 … 기독교 신앙은 어느 모로 보나 개들에게 굴복한 듯 했다. 하지만 매번 예외 없이 정작 죽은 것은 개였다.”[19]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약속이다. 이 약속에 만료일이 있다고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주]

17. Andrew F. Wall,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An interview with Andrew Walls” Christian Century, August 2-9, 2000, 792.

18. 특히 Sanneh’s chapter, “Translatability in Islam and Christianity, with Special Reference to Africa,” in Translating the Message: The Missionary Impact on Culture(Orbis, 1987), 211ff.

18. G. K. Chesterton, The Everlasting Man. Canon Press, 2021, 279. 



원제: The Decline and Renewal of the American Church: Part 2-The Decline of Evangelicalism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기독교는 새로운 문화 또는 상황 속으로의 번역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강력한 능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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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이이다. City to City의 회장과 The Gospel Coalition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