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Shawn Wright2022-07-28

칼뱅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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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장 칼뱅(1509-1564)은 역사에 큰 양향을 끼진 인물이다. 그에 관해서는 중립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종종 칼뱅에 관해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칼뱅을 비난한다. 그가 이중 예정을 주장했고, 마이클 세르베투스 같은 이단자의 처형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몇 가지가 칼뱅이 믿었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칼뱅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보낼 방법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 인간미 없고 머리만 큰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친구 하나 없고 감정 자체가 없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칼뱅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가 성경적이기보다 더 철학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마치 칼뱅의 사상이 성경적이고 목회적인 성찰로는 전혀 요약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게 칼뱅에 대해 당신이 가진 우려나 두려움의 일부라면,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칼뱅과 그의 사상을 직접 이해하려면 칼뱅의 걸작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읽어야 한다. 당신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의 하나인 이 책을 통해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은 장 칼뱅의 이 저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옛날 책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C. S. 루이스는 학생들이 고전 원문이 아닌 주석을 읽는 이유가 겸손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덧붙였다. “이 학생은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다. 자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으며 그 철학자의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현대 주석가들의 글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사실을 이 학생이 안다면 좋았을 것이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서문).


나는 칼뱅과 관련해서 루이스의 말에 동의한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독자가 기독교 강요를 향한 칼뱅의 의도만 정확하게 안다면, 주석이나 지침서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거의 모든 내용을 쉽게 다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바로 기독교 강요이다. 왜 그런가? 기독교 강요는 칼뱅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향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실재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누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칼뱅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시간을 초월한 갈망이다. 박해받던 16세기 프랑스 개신교도이든, 세상의 격변을 헤쳐나가려는 21세기 그리스도인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다음 일곱 가지 진리는 우리가 기독교 강요를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1. 제목


Institutes는 라틴어 Institutio의 번역으로 “강요”나 “지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칼뱅은 그리스도인을 가르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다. 그의 책은 고급 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나 찰스 하지의 조직 신학만큼 광범위하지 않다. 칼뱅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방식으로 썼다. 이런 점은 영어 번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독교 강요를 들고 읽어보라. 그리고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라!


2. 대상


기독교 강요를 쓸 때 애초에 칼뱅이 생각한 대상 독자는 두 부류였다. 처음에 그는 당시 학문의 언어인 라틴어로 책을 저술했고 또 출판했다. 따라서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유럽의 신학자와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개정하고 확장 보완하면서 칼뱅은 라틴어판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그의 모국인이 모국어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독자는 주로 박해받는 교회였다. 프랑스와 나머지 유럽의 개신교인은 당시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는 오늘날 신학 저술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 읽는 내내 당신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3. 세밀함에 쏟은 관심


장 칼뱅은 모든 것을 다 제대로 하기 위해 엄청나게 몰두했다. 그는 1536년에 초판을 출판했다. 그것은 최종판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곧이어 1539년판이 나왔다. 1543년과 1550년 사이에 칼뱅은 서로 유사한 두 가지 개정판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1559년판은 그가 죽기 불과 오 년 전에 출판되었다.


칼뱅은 죽기 전까지 거의 성경 전체에 관해서 강의하거나 설교하거나 또는 주석을 집필했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의 마지막 판에는 그가 평생 성찰한 모든 성경에 관한 설명뿐 아니라 수십 년간 제네바 교회의 목양을 통해 얻은 목회자로서의 지혜까지 다 담겨있다. 1559년에 칼뱅은 기독교 강요의 이전 판에 관해서 이렇게 논평했다. “이제야 마침내 나온, 제대로 된 순서로 완성된 이 작업 전까지 나는 결코 만족한 적이 없었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책도 순식간에 쓰이고, 또 그런 책이 과연 제대로 된 책인지 판단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 시중에 나온 책이 과연 백 년 후에도 읽을 가치가 있을까? 칼뱅은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수정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60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 강요는 16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기독교 강요를 읽고 세밀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울인 칼뱅으로부터 배우라. (현대 독자가 칼뱅의 저술 당시 역사적, 신학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훌륭한 책은 다음과 같다. 데이비드 칼훈(David B. Calhoun)의 칼뱅을 읽다(Knowing God and Ourselves), 데이비드 홀(David W. Hall)과 피터 릴백(Peter A. Lillback)의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위한 신학적 가이드’(A Theological Guide to Calvin's Institutes), 안소니 레인(Anthony N.S. Lane)의 ‘칼빈의 기독교강요 가이드’(A Reader's Guide to Calvin's Institutes), 그리고 프랑소와 웬델(Francois Wendel)의 ‘칼뱅.’)


4. 신학적 균형


불행하게도 그리고 부정확하게도 칼뱅의 걸작인 기독교 강요가 소위 말하는 “칼뱅주의의 5대 교리”의 기반이 되어야 하고 또한 칼뱅이 이 책을 쓴 이유도 다름 아니라 “칼뱅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맞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 강요의 첫 문장은 두 가지 큰 주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가 소유한 거의 모든 지혜 즉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Institutes 1.1.1 ). 칼뱅이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바램이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상호적 지식이다. 하나님을 알 때만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다. 또한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아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방향이야말로 칼뱅이 책 전반에 걸쳐 자료를 다루는 데 있어 균형을 이루도록 이끈 핵심이다. 예를 들어, 그는 예정론 (만약에 기독교 강요가 “칼뱅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었다면, 모든 내용을 예정론에서부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교리를 책의 네 부분 중 세 번째 부분(3.21-24)이 끝날 때까지 다루지 않는다. 


기독교 강요는 수많은 보석으로 가득하다. 믿음에 관한 성경적 이해에 대한 긴 설명이 있다 (3.2). 왜냐하면 이것이 신약성경의 핵심이고 칼뱅 시대에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서 뜨거웠던 토론 주제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의미 있는 부분도 있는데, 거기에 관해서는 칼뱅이 평생 기독교 강요 내용 중에서 별도의 발췌 출판을 허락한 유일한 내용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작은 책’(A Little Book on the Christian Life)을 참조하라. 가장 길고 가장 영광스러운 장의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의미에 관한 칼뱅의 놀라운 설명이다(3.20).


모든 자료를 칼뱅이 어떻게 배열했는지를 통해 우리는 그가 이 책을 얼마나 균형 있게 저술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학자들은 여전히 칼뱅이 왜 기독교 강요의 자료를 그렇게 배열했는지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그가 네 권으로 구분한 것을 놓고 사도신경(성부, 성자, 성령, 교회)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랐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물론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칼뱅은 실제로 루터교인 필립 멜란히톤의 지도를 따랐던 것 같다. 루터교인 필립 멜란히톤이 쓴 ‘신학총론’(Loci Communes)은 바울의 로마서 배열을 따랐다. 나는 칼뱅도 로마서의 순서를 따랐다고 생각한다. 칼뱅 역시 다른 16세기 개신교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서야말로 성경 전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칼뱅이 1560년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그의 책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말한 이유이다. (리차드 뮬러(Richard A. Muller)가 쓴 ‘수용되지 않는 칼뱅’(The Unaccommodated Calvin)에 실린 기독교 강요의 배열에 관한 사려 깊은 에세이 몇 개를 참조하길 권한다.)


다시 말해서, 칼뱅은 성경의 윤곽을 고수하려고 했던,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이었다.


5. 성경적 담대함 


칼뱅의 말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현대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예정론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정의로 설명한다. 예정이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죽음을 맞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썼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선언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예정을 통해 각 사람과 자신과의 관계를 맺으셨다. 사람은 평등한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어 있다. 즉 누구나 다 이러한 목적 중 하나를 위해 창조되었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다 생명 또는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 (3.21.5).


어떤 이들은 택함을 받은 자와 택함 받지 아니한 자의 상태를 영원히 결정짓는, 예정과 관련한 하나님의 이중적 본성에 관한 칼뱅의 완고한 주장에 움찔할 수 있다. 그러나 칼뱅은 다른 성경 구절 중에서도 특히 로마서 9장에 있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6. 역사적 거리


고전 독서의 한 가지 장점은 다른 시대에 살았던 저자가 지금과 다른 압력과 유혹을 받으며 우리와 다른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점은 실망을 줄 수 있다. 


고전에서 지금 당장 현실 속에 적용할 수 있는 거리가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내한다면 종종 우리가 가진 염려와 질문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칼뱅 또한 전혀 다른 시대의 말을 하기에 지금 우리가 던지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칼뱅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던지는 질문의 일부는 사실상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될 것이다. 


7. 하나님을 아는 지식


기독교 강요를 읽는 것과 관련해 지금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이미 말했다. 칼뱅은 성경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렘 9:23-24, 요 17:3). 칼뱅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덮는 순간 주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기를 원했다. 바로 이런 열망이야말로 기독교 강요 곳곳에 숨은 진짜 메시지이다. 예를 들어, 칼뱅은 독자들에게 그가 “경건”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전시키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연관된 경외심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져다주는 유익함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존재의 전부를 하나님께 빚지고 있다는 것, 아버지의 돌보심으로 양육된다는 것, 그분이 모든 선의 창시자이시며 그렇기에 사람이라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그분께 기꺼이 헌신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찾기 전까지 사람은 결코 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지 않을 것이다(1.2.2).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를 기뻐하고, 그분 안에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존 칼뱅의 안내를 받으며 기독교 강요를 읽으라. 




원제: Introducing the ‘Institutes’: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하나님을 알 때만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다. 또한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아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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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hawn Wright

션 라이트는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 역사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칼빈주의에 관한 40가지 질문(40 Questions About Calvinis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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