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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팀 켈러가 중국 그리스도인에게서 배운 것
by Tim Keller2022-04-20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눈치 없이, 무모하고 거칠고 둔감하게, 또는 문화적으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에는 핍박받는다고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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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우리 서구 사회가 기독교 신앙 및 관습에 점점 더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박해받고 있다는 생각일 들 때도 있다. 나는 결코 과거 기독교 국가라고까지 불리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현재 직면한 역풍을 축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객관적인 관점을 얻으려면, 폭력까지 동반한 훨씬 더 극심한 반기독교 정서가 있는 국가에 사는 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핍박을 지금 아시아 여러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다. 그들은 참으로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삶에서 배우고 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1-12)


예수님의 이 중요한 말씀을 아시아의 형제자매들처럼 겪고 있는 서구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 특히 중국 그리스도인은 최근 몇 년 동안 예수님의 이 약속에 더 간절하게 의지해야 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적어도 네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모욕을 당할 때 복이 있다.’


“만약에(if) 사람들이 너희를 모욕한다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가 아니다. 모든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핍박과 관련한 부분은 팔복의 마지막이다. 다름 아니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박해를 받는다는 게 예수님의 생각이다. 당신이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일관되게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손실과 반발, 반대를 경험할 것이다. (이 해석을 확인하려면 디모데후서  3:12를 보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2.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면 복되다.


“나 때문”이 아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4:15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간섭하는 자”로 번역된 단어는 놀라운 그리스어 단어이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무뚝뚝하다는 뜻이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말하는 바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눈치 없이, 무모하고 거칠고 둔감하게, 또는 문화적으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에는 핍박받는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다!” 아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다. 자진해서 밉살스러운 사람이 되는 이에게 축복의 약속은 적용되지 않는다. 


3.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아버지를 찬양하게 된다.


다음은 당신이 받는 박해가 예수님을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6)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삶과 믿음 때문에 박해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삶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할 것이다. 어떤 비그리스도인은 적개심에 차서 반응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고 당신의 간증에 설득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로 인해 믿음을 찾거나 우리를 통해 예수님께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 모든 이가 단지 핍박만 한다면, 그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무모해서일 것이다. 


한 번도 박해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건 믿음에 관해서 타협하거나 침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일어나고 있다면, 즉 박해를 받지만 또한 간증이 열매를 맺는다면 당신은 지금 아주 좋은 상황에 있는 것이다. 사랑 없이 말하는 진리는 반대를 부를 뿐이다. 또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랑은 비겁하다. 서구 교회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엄청난 핍박을 받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그리 매력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우리가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4. 예수님을 생각하며 묵상함으로 축복의 약속을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위해 핍박받는 경우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복을 어떻게 얻을까?


그 축복은 놀라운 약속이다. 축복은 다름 아니라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에게 임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 축복은 성령님의 성품이 당신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며, 그것이 당신을 특별한 방식으로 형성할 것을 의미한다. 그 축복은 또한 ‘박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오히려 ‘박해 때문에’ 당신을 통해 예수님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생겨남을 의미한다. 


핍박과 관련하여 수동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박해의 때에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필요한 기쁨과 사랑과 용기를 달라고 간구하라.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을 생각하면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께서 “자신을 영광을 비우셨다”고 말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구절을 예수께서 아버지와 동등하시지만 “자신을 비천하게” 하셨다고 번역한다. 그에게는 영광이 있었고 또한 존귀함이 있었다. 그에게는 이름이 있었지만 거절당했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수치와 굴욕을 당했다. 십자가형은 단순히 사람을 처형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로마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죽음이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다. 예수님은 당신과 내가 수치스럽게 죽지 않도록 가장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죽으셨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영원히 지속되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수치와 치욕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영원히 존귀와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의 평판에 약간의 타격이 가해지고 조금 박해를 받았다고 해도,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하신 일을 안다면, 당신에게 궁극적인 영예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궁극적인 수치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제 그 정도의 수치는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예수님의 수치를 묵상할 때,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축복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약간의 수치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이것은 냉정한 메시지이다. 그러나 보라. 그 결과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그 소망을 바라보라. 결코 멸망하지 않을 이름이 당신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결코 시들지 않을 명예와 영광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 ‘광야의 믿음: 중국 교회로부터 듣는 권면’에 담긴 간증과 성찰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런 기쁨이다. 


굳게 서라


2020년 초에 중국 가정교회 그리스도인 수천 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였을 때, 나는 이 기쁨을 직접 목격했다. 박해가 커지는 가운데 복음의 소망으로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모인 가운데, 그들의 고향 곳곳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 대신 담대한 희망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고향이 결코 멸망하지 않는 하늘에 있는 도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 형제자매들의 간증에서 힘을 얻자. 우리가 비록 시련을 겪어도 더욱 굳건히 서도록 힘을 내자. 



편집자 주: 이 글은 ‘광야의 믿음: 중국 교회로부터 듣는 권면’(Kirkdale Press, 2022년 4월)에 수록된 팀 켈러의 추천사를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간추린 것이다. 



Faith in the Wilderness

: Words of Exhortation from the Chinese Church

(광야의 믿음: 중국 교회로부터 듣는 권면)

HANNAH NATION & SIMON LIU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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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동체의 부흥을 원한다면, 부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서구 그리스도인에게 고난과 박해의 경험은 아주 먼 이야기이다. 반면에 중국 그리스도인에게 박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삶의 일상적인 측면이다. 서양 그리스도인이 중국 가정교회로 옮겨진다면, 고난은 설교와 대화의 단골 주제가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수십 년에 걸친 박해와 고난에 대한 풍부한 신학으로 인해 중국 가정교회 운동은 세계 교회에 신학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


‘광야의 믿음: 중국 교회로부터 듣는 권면’의 편집자 한나 네이션과 시몬 루는 서방 세계가 중국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을 한데 모았다. 중국 그리스도인의 이 권면의 편지는 흑암 가운데 빛나는 복음의 실체, 곧 우리 소망의 터전이 되는 복음의 진수를 독자들에게 일깨워 줄 것이다. 독자들은 중국 그리스도인의 증언으로 더 큰 확신과 격려를 받고 성장할 것이다.



LEXHAM PRESS168 PP. 

원제: What Tim Keller Learned from Chinese Christian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우리로 인해 믿음을 찾거나 우리를 통해 예수님께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 모든 이가 단지 핍박만 한다면, 그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무모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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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