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필요한 기독교적 기업가정신
by 김선일2022-04-02

투자의 대중화, N잡러, 앙티프리너십의 부상은 변화하는 시대에 경제적 주체성과 자유를 찾기 위한 유력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은 이러한 경제적 관심과 해법을 찾는 트렌드에 어떠한 성찰과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코로나가 한창일 때 서점에서 직원들끼리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주식 책 진짜 잘 나간다!” 필자에게는 주식 책은 남들의 관심사였지만, 전대미문의 코로나 광풍 반대편에서는 전국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 열풍이 맞바람처럼 일어났다. ‘머니러시’ ‘욜로의 종말과 투자 열풍’ ‘평생직장보다 평생수입’ ‘1억 모으기’ ‘디지털 자산과 NFT’…. 2022 트렌드 서적들에서 공통으로 눈에 띄는 구절들이다. 과거 “부자 되세요~”가 유행어였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목적과 이유가 좀 더 구체적이다. 슈퍼개인으로 살려면, 취향의 연대만으로, 친환경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경제적 자유는 필수 조건이다. 재테크 열풍은 언제나 뜨거웠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수입원과 투자 영역에 눈을 뜬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주가가 유례없는 대폭락을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코로나 이전을 뛰어넘는 V자 반등을 보였다. 저금리와 재난지원금으로 엄청난 돈이 풀리면서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더욱 치솟았다. 소상공인들과 저소득층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산을 증식할 절호의 기회였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환테크, NFT 투자 등 새로운 재테크 상품들이 속속 선보인다. 미래 지향적인 메타버스나 기업의 건전성을 상징하는 ESG 같은 개념들이 유행을 탄 것도 사실은 각광받는 투자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영끌”해서 부동산을 마련한 이들은 하락의 가능성으로 불안해 하고, 주식은 원금도 날릴 수 있는 고위험 투자다. 비트코인, NFT 같은 디지털 자산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지만, 높은 기대는 항상 거품을 동반한다. 이러한 고위험 투자에 젊은이들이 더욱 적극적이다. 위험한 줄 몰라서가 아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현재의 월급만으로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높아진 삶의 질적 기대에 부응하며 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서 디지털 경제의 개념과 용어에 익숙하고, 유튜브의 재테크 방송과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신속히 정보를 습득하는 학습력을 갖췄다. 5, 6년 전부터 유행했던 “인생은 한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며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욜로’(YOLO)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현실의 절박함을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줄어들었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은 2017년 53.8퍼센트에서 2021년 41.4퍼센트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75.8퍼센트에서 55.6퍼센트로 대폭 줄었다(2022 트렌드 모니터, 40-41). 그렇다고 삶의 기대 수준이 저하된 것은 아니다. 소소한 지출은 줄이되, 한 번쯤 나를 위로하는 품격 있는 소비에는 인색하지 않다. 점심값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이용해도 6만원이 넘는 호텔의 망고빙수는 줄을 서서라도 먹을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은 ‘파인 다이닝’이나 자기과시적인 ‘플렉스’(flex) 문화는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서 현실적으로 참고 살아가는 스트레스를 한 번씩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2022 트렌드 노트, 90-93). 


평생고용의 신화가 무너지고 AI와 로봇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자 불안한 월급만으로는 미래의 생존과 삶의 질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보였다. 게다가 아무리 안정적 직장이라 하더라도 남에게 고용되어 맞추며 살기보다 자기만의 주체적인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고자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 조기 은퇴를 이루는 파이어 족이 선망의 대상이 됐다. 이처럼 수입과 투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대중화, 다각화되는 현상은 과거 미국의 서부개척 시기에 금을 찾아 몰려들었던 골드러시(Gold Rush)에 빗대어 머니러시(Money Rush)라 불린다(트렌드 코리아 2022, 195). 머니러시의 시대에 사람들은 각자의 여건과 관심에 따라 수입의 다변화를 꾀한다. 첫째, 앞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 자산과 같은 투자 유형의 확대다. 이는 소득을 창출하는 파이프라인이 많아졌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디지털화되어 가는 중요한 라이프 트렌드의 전환이다(라이프 트렌드 2022, 201). 디지털 콘텐츠가 자산의 가치를 갖는 것은 아직은 낯설지만 이미 시작된 미래의 모습이다. 둘째로, 소위 ‘N잡러’라는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하나의 일자리로는 수입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지만, 돈벌이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개발하고 싶은 욕구도 있기 때문에, 생계와 자아실현이라는 이중적 이유가 있다. 셋째로는 이러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인의 앙터프리너십(entrepreneurship) 개발 필요성이 부상한다. 김난도와 공저자들은 기업경영에서 주로 사용된 이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이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자신의 관심과 역량에 맞는 자기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트렌드 코리아 2022, 218-219). 이미 여러 유튜브와 대중강연자들도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자기만의 관심과 취향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지속적인 시스템 수입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자의 대중화, N잡러, 앙티프리너십의 부상은 변화하는 시대에 경제적 주체성과 자유를 찾기 위한 유력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은 이러한 경제적 관심과 해법을 찾는 트렌드에 어떠한 성찰과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 전통은 인간의 경제적 활동과 관련해서 풍성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에 소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루터와 칼뱅과 같은 개혁자들의 가르침이었다. 


먼저, 다양한 투자 열풍은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깊이 지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금융자본주의는 제품생산과 서비스와는 무관하게 이익이 이익을 창출하는, 한마디로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세계 경제가 상호의존하면서 온갖 복합한 금융거래 상품들이 등장한다. 레버리지(차입금)를 통한 투자는 금융자본주의에서 부를 늘리는 최고의 능력으로 꼽힌다. 개신교 정신이 자본주의의 발흥에 정신적 촉매 역할을 했다는 막스 베버의 이론적 틀을 빌려,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는 그의 ‘기독교와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에서 기독교 신앙은 오늘날 금융자본주의에 저항하며 대안적 가치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에 돈을 빌렸거나 신용을 통해 투자한 이들은 현재의 모든 삶이 과거에 속박되어 미래를 상실하며 영구적인 긴박성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진단한다(Christianity and the New Spirit of Capitalism, 105). 기독교적 회심은 우리를 과거에 얽매인 삶에서 새로운 현재와 미래로 이동시키며, 은혜와 선물의 경제는 경쟁적으로 자기 충동적 이익을 추구하는 삶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현실의 상황에서 태너의 진단은 예리하고 해법은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금융투자 열풍에 휩쓸리기 쉬운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경종이 될 것이다.    


둘째로, N잡러나 긱 이코노미(gig은 단기적, 일시적 일을 뜻한다)가 현실이 되어 가는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은 전통적인 소명론을 넘어서는 일의 의미를 재조명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닌 한 하나님 앞에서 성스러운 소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고정적인 평생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사람들이 다양한 일자리를 통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해야 하는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성령의 은사로서 일이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일과 성령’에서 미로슬라브 볼프는 일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심화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시기와 장소의 일을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은사를 발견하고 표현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은사는 한 사람에게 한 가지만 존재하기보다는 그가 처한 사회적 역할에서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에서 소명을 배제하고 개인의 은사를 통한 커리어 개발에만 집중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이 오로지 자아실현과 수입의 용도로만 인식되는 풍조에 기독교적 소명론은 여전히 선한 영향력을 제공한다. 맥킨지 보고서는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의 지속적 확장과 AI 체제의 가속화로 인해 인간의 일에서 사회적, 정서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기독교적 소명론은 수동적이고 자기보호적인 태도를 넘어서 일터에서의 상호 협력과 섬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여전히 기여할 수 있다. 


끝으로, 앙티프리너(entreprenuer)가 갖춰야 할 기업가정신(enrepreneurship)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며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인간이 동참하기 위해 필요한 청지기적 사명이기도 하다. 기업가정신은 영리 비즈니스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창의성, 혁신, 모험을 수반하는 정신이다. ‘일터신학’의 저자 폴 스티븐스(Paul Stevens)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공동체(남자와 여자로, 또한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서)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필연적으로 의지하고 교류하며 기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한 사제의 역할을 맡은 앙티프리너라고 그는 주장한다(Doing God’s Business, 176).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이다. 이는 기회를 포착하고, 혁신을 기획하며, 실행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업가정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인간에 대한 돌봄과 섬김의 마음으로부터 동기부여 되어야 한다. 적정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됨을 상실하지 않는 적정한 수익 추구여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 수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수익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거대한 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일과 비즈니스라는 경제적 활동에서 일어날 것이다. 변화의 시대에는 항상 기회를 틈타 인간의 탐욕과 왜곡된 진리가 창궐하여 사람들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러한 시대를 교정하고 선도하기에 충분한 차원을 갖고 있다. 새롭게 확장될 일터와 비즈니스의 세계는 21세기에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가장 치열한 선교의 현장이다. 


이전 글: 

•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 세계관과 내러티브 열풍 

• 메타버스와 교회의 과제 

• 복음중심 신앙은 생태적 감수성을 동반한다

• 일상의 재발견: 루틴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 

• 슈퍼개인의 시대: 기독교적 개인주의를 위한 변명

• 트렌드를 읽다, 복음에서 길을 찾다 



기업가정신은 영리 비즈니스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창의성, 혁신, 모험을 수반하는 정신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