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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중심 신앙은 생태적 감수성을 동반한다
by 김선일2022-03-05

우리 삶 전반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는 생태적 감수성과 교회는 얼마나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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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위한 재테크 전문 작가였던 고 래리 버켓(Larry Buckett)이 생전에 쓴 소설 토르 음모(The Thor Conspiracy)를 보면 21세기 미국에서 환경주의 독재 정부가 탄생하여 환경보호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책이 나온 1995년 당시에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지만, 현실감을 느끼진 못했다. 더군다나 그때 한국의 상황에서 환경론자들이 독재 권력을 쥔다는 상상은 너무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 그와 같은 환경 권력까지는 아니지만  친환경적, 생태적 삶의 규범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태세의 전환이다. 


라이프 트렌드 2022’의 저자 김용섭은 2022년의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의 현상으로 친환경적 라이프 스타일의 부상을 꼽는다. 다른 트렌드 서적들이 주로 개인주의나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반면 김용섭은 독특하게  전망하는 트렌드 서적 중에서 이러한 생태적 삶의 양식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특히 현재의 M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서 환경 문제에 관한 민감성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기성세대에게는 좋은 삶을 위한 선택이었던 친환경적 라이프 스타일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동의 생존 과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친환경적 민감성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더욱 경각심을 갖게 된 주제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근본적으로 기후 위기와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말미암았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재앙적 바이러스의 발발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약물 백신이 아니라 ‘생태 백신’이라고 한다. 즉 사람이 동식물의 서식지에 함부로 침입하지 않고, 그러한 침입과 고갈을 유발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이제는 ‘환경’이라는 용어보다 ‘생태적’(ecological)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확하다. 환경이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 되어 다른 동식물 세계를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뉘앙스를 띤다면, 생태라는 말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일체로서의 의미로서 인간도 거대한 생명 체계의 일부라는 겸손한 의식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무튼 생태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은 갈수록 고조되어 오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보편적인 삶의 양식을 변화하는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 전반의 친환경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김용섭은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 아니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베터 노멀’(better normal)이라고 부른다. 환경친화적 트렌드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고립과 마스크 착용이 기본 값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삶은 맑은 공기와 자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가드닝과 비거니즘은 베터 노멀의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에 새로 문을 열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백화점들은 상점으로 꽉 채우던 공간에 넓은 실내 가든을 조성한다. 가드닝과 반려 식물은 사람들의 고급 취미가 되었고, 채소와 과일만 먹는 사람을 뜻하는 비건(vegan)은 식습관뿐 아니라 옷과 주거에도 영향을 주며 ‘올라운드 비거니즘’으로 발달하고 있다. 이는 “동물 착취 반대와 채식에서부터 기후 위기와 탄소 배출, 일회용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 등을 비롯한 환경 문제, 생태계 파괴, 인권과 차별 문제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트렌드다(‘라이프 트렌드 2022’, 102).  


일상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방식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일회용 용기를 덜 쓰거나, 조깅이나 산책을 하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수고하는 플로깅(plogging)과 같은 활동에서부터, 탄소배출과 자원 낭비를 가속화시키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무한 선호에 제동을 걸고 기존의 옷이나 가방 등을 수선해서 쓰는 서스테이너블 패션(sustainable fashion)이 등장한다. 이는 빈티지 패션이라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과제가 되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물이 얼마나 소비되는지도 꼼꼼히 따져 본다.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하는 데 물이 6,814리터, 티셔츠 한 벌에는 2,700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이러한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은 산업 폐수가 된다. 물뿐 아니라 면화나 케시미어의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도 엄청나다. 


새로운 세대에게 기후와 환경의 위기는 직면해야 할 생존의 문제다. 기성세대가 이러한 환경오염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고민 없이 살아가며 결정하는 모습은 생태적 감수성을 지닌 젊은이들에게는 지구에 민폐를 끼치는 오염 엘리트로 비쳐진다. 기업 경영에서도 E-Environmental(환경), S-Social(사회적 기여), G-Governance(지배구조)를 뜻하는 ESG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과 건강성을 가늠하는 주요한 핵심 척도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위장된 환경 친화적 허세를 부리는 기업은 오히려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로 더 큰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한 화장품 회사가 “Paper Bottle”이라는 종이 화장품 패키지를 홍보했는데, 사실 종이 패키지에는 플라스틱이 소량 들어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기네 제품을 친환경적인 것으로 어설프게 홍보함으로 인해 기만적 위장술로 더 질타를 받은 것이다(‘라이프 트렌드 2022’, 139). 친환경적 삶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고,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숙고를 요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삶 전반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는 생태적 감수성과 교회는 얼마나 가까운가? 위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교회는 익숙한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엡 1:23)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지구를 살리자는 친환경적 실천을 신앙고백의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해하는 구원이 죽어서 우주 먼 곳 어딘가에 있는 천국으로 이동하고, 이 땅은 멸망하여 영원 폐기될 운명이라고 믿지 않는 한, 이 땅을 돌보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은 영원토록 유효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비전이다(계 21:1-2).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 백성의 책임은 절박하고 엄중하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도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19, 21).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태계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보존과 돌봄의 책임을 지닌 청지기이다. 


복음중심적 신앙은 신자들로 하여금 영혼의 구원과 교회 활동에 집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창조세계에 대한 돌봄의 책임과 역할을 회복하게 한다. 일찍이 복음주의 사상가 프란시스 쉐퍼는 ‘환경오염과 인간의 죽음’(The Pollution and the Death of Man)이라는 책을 통해서 구원받은 인간의 생태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일깨운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반향은 복음주의권에서 널리, 오래 퍼지지 못했다. 만일 복음주의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당사자 의식을 결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개인주의적, 기복주의적, 내세주의적 구원과 복음이라는 잘못된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교회생활을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병들어 가고 있다면, 그와 같이 병든 지구에서 건강한 교회가 나올 수 있겠는가? 이는 선교학자 하워드 스나이더가 그의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 ‘구원은 치유된 창조세계다’(Salvation Means Creation Healed: The Ecology of Sin and Grace)의 서문에서 제기한 질문이다(이 책의 우리말 역간 제목은 ‘피조물의 치유인 구원: 땅과 하늘의 이혼을 극복하는 죄와 은혜의 생태학’).


온전한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생태적 감수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회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존재로 새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게 한다. 생태적 감수성은 약자의 고통에 대한 책임 있는 연민으로 이어진다. 많은 교회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에 참여한다. 그러나 긴급한 필요를 해결해 주는 구제도 중요하지만, 고통과 빈곤을 증가시키는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근원적 책임의식이 수반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른다고 볼 수 없다. 생태적 감수성과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은 복음적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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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 모두에게 필요한 기독교적 기업가정신 

 

온전한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생태적 감수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생태적 감수성과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은 복음적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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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

김선일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