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성경과 신학

영성이 힘이다
by 최창국2022-03-02

영성은 우리의 삶에서 변혁적인 힘이다. 영성은 우리의 강점을 강화시키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영성은 또한 우리의 약점과 어두움도 극복하게 하는 힘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영성, 이성, 감성, 몸이 모두 온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이러한 요소들은 존재론적 국면과 기능론적 국면을 지닌다. 인간의 영성, 이성, 감성, 몸의 존재론적 국면은 타락 후에도 그대로 있지만, 기능론적 국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는 마치 아버지와 자녀 관계의 존재론적인 국면은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상실될 수 없지만, 그 기능론적인 국면인 아버지 됨이나 자녀 됨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상실이 있을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의 영성은 타락 후에 기능론적 국면을 상실하였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영성의 기능적 생명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회복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회복된 기능론적 영성은 하나님의 영의 창조성을 반영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역동성을 드러내는 국면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의 창조성의 핵심 매개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회복된 영성은 하나님, 이웃, 세상을 향한 관계의 깊이와 넓이가 점점 깊어가고 확장되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영성의 도약은 이성의 능력으로는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해도 되지 않기에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 인간 이성이 변형됨으로써 비로소 그리스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자신을 둘 때만이 유한과 무한의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성과 능력을 전달해 주는 것은 회복된 영적 생명력이다.             


회복된 영성의 힘은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강화시킨다.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어느 날 그를 숙연하게 한 한 부인과의 만남을 소개했다. 그가 만난 부인에게는 15살 된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도시의 쓰레기 집하장에서 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들을 수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그 여인은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경직되어 웅크리고 있었고 울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보프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 지경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보프는 그 때 그가 보고 들었던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드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눈으로 그녀는 나를 바라다보았다. “저요? 어떻게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제 아버지가 아니었던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제가 그의 손에 있음을 느낄 수 없다면, 그 누구에게 제가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Dorothee Soelle, The Silent Cry, 294).

보프는 이 만남을 회상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서 신앙은 마약이 아니라 오히려 빛을 발하는 해방이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이고 죽음을 넘어서는 삶이다”(Soelle, 294).

   

하나님의 생명력인 영성은 인간의 유한의 절망을 넘어서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영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 부인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죽음도 그녀가 지닌 이 신비스러운 사랑의 힘을 빼앗을 수 없었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들은 인간의 영적 차원을 무시하며 모든 신앙을 신경증적으로 내린 결정, 환상, 어린 시절의 소망의 투사, 환각적 정신이상 등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Sigmund Freud,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21, 169). 이러한 사람들은 신앙의 본질을 너무도 단순하게 보았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잘못된 현상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요한, 블레즈 파스칼, 조너선 에드워즈, 데이비드 리빙스턴, 레오 톨스토이, C. S. 루이스 같은 사람들에게 영적 체험은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하였다. 


현대에도 영적 생명력과 세계관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임상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특히 영적 세계관의 변화는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즉 순결이나 충실한 결혼을 요구하는 성 규범을 받아들였고, 충동조절 능력이 개선되었으며, 학습능력이 증진되었고, 자아상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친밀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만드는 능력도 형성되었다. 나아가 ‘실존적 절망’이 감소하였고, 정서가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삶의 염려와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감소되었다(Armand M. Nicholi, “A New Dimension of the Youth Cultur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31(1974): 396-401). 


영성의 회복으로 인한 영적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사람의 가치관과 자아상과 기질뿐만 아니라 생산성까지도 변혁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경우가 C. S. 루이스다. 루이스는 31세에 영적 세계관의 변화를 경험했고, 그것은 그의 삶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그 변화는 그의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그의 생산성까지 극적으로 증대시켰다. 그의 영적 세계관의 변화로 그의 가치관과 자아상 및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 이 경험은 그를 이전의 삶에서 돌아서게 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의 목적과 방향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그의 기질도 변했다. 회심 전과 후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내적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더 안정되었다고 했다. 낙천적인 명랑함이 그의 염세주의와 절망을 대체하였다. 죽기 전 마지막 며칠 동안 루이스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명랑함’과 ‘평온함’에 놀랐다(아맨드 M. 니콜라이, ‘루이스 VS. 프로이드’, 106).

   

루이스에게 영적 세계관은 이처럼 놀라운 변혁을 일으켰다. 영성의 회복으로 인한 영적 세계관은 그의 기질과 생산성까지 대변혁을 일으켰다. 영성은 우리의 삶에서 변혁적인 힘이다. 영성은 우리의 강점을 강화시키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영성은 또한 우리의 약점과 어두움도 극복하게 하는 힘이다.


신약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은 사도 바울의 왜곡된 삶을 이기게 한 힘도 회복된 영성이었다.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는 거울이다.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라고 고백하였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한 것은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통해 회복한 영성 때문이었다. 은혜와 영성은 유기체적인 한 쌍이다. 바울의 소명을 강화시킨 본질적인 요소는 영성이었다. 바울이 로마 선교를 셋집에서 시작하였지만(행 28:30),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던 힘은 영성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힘은 지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동하는 영성이다. 


역동적인 영성과 은혜로 가득한 사람과 공동체는 사람의 약점과 허물까지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수도원장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가 남긴 보석 같은 이야기다.


아나스타시우스는 20세겔이나 하는 고급 양피지로 만든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 담겨 있는 성경을 읽으며 묵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를 찾아온 어떤 수도사가 그 성경을 보고 탐내어 들고 도망쳐 버렸다. 다음 날, 아나스타시우스는 성경책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누구의 소행인지 쉽게 짐작을 했지만, 그가 절도죄에다 위증죄까지 범할 것이 걱정이 되어 그를 잡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성경을 훔친 수도사는 책을 팔기 위해 도시로 갔다. 그가 18세겔을 원하자 사려는 사람이 “그 책을 내게 주시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내 먼저 알아봐야겠소”라고 말한 후에, 그 책을 가지고 아나스타시우스에게 찾아가 말했다. “교부님, 이 책을 좀 봐주십시오. 18세겔의 가치가 있는 책입니까?” 아나스타시우스는 말하였다. “예, 좋은 책입니다. 그 값에 이 책을 사신다면 아주 좋은 거래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상인은 수도사에게 돌아와 말하였다. “여기 말한 대로 18세겔이오. 내가 아나스타시우스 교부님께 직접 이 책을 보여 드렸는데, 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하셨소.” 그 수도사는 깜짝 놀랐다. “그뿐이오? 교부님이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소?” “아니, 다른 말씀은 한 마디도 없으셨소.” “내 마음이 바뀌었소. 이 책을 팔고 싶지 않소.” 


그 수도사는 아나스타시우스에게 돌아와 책을 받아 달라고 눈물로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아나스타시우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에요, 형제님. 그냥 가지고 계세요. 형제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러자 그 수도사는 말하였다. “교부님이 이 책을 받아 주시지 않으신다면 제게는 이제 평화가 없습니다.” 그 이후 그 수도사는 아나스타시우스 교부와 평생 함께하였다(Anthony de Mello, Taking Flight, 164-65).        


아나스타시우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역동적인 영성과 은혜로 가득한 사람의 힘을 가르쳐 준다. 우리 안에 역동적인 영성과 은혜가 가득하면 사람의 약점과 허물까지도 감동의 재료로 만든다. 영성이 힘이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힘은 지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동하는 영성이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최창국

최창국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학위(MA, PhD)를 받았다. 개신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제자들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현재는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삶의 기술』, 『실천적 목회학』, 『영혼 돌봄을 위한 멘토링』, 『해결중심 크리스천 카운슬링』, 『영성과 상담』, 『기독교 영성신학』, 『기독교 영성』, 『중보기도 특강』, 『영성과 설교』, 『예배와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 『영혼 돌봄을 위한 영성과 목회』 등이 있다. 역서는 『기독교교육학 사전』(공역), 『공동체 돌봄과 상담』(공역), 『기독교 영성 연구』(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