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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남아서 섬길 것이다
by Vasyl Ostryi2022-02-27

관료들, 사업가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임박한 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서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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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사이에 에스더서의 사건이 우크라이나의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한 민족을 말살하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고, 하만의 손에 그 도륙을 실행할 수 있는 면허장이 주어진 그 위기가 우리 앞에 도달했다. 교수대는 세워졌고, 우리는 지금 그 아래 서 있다. 


전쟁 발발을 기정사실이라고 말하는 세계 언론의 소리를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들어야 하는 사회가 어떤 분위기일지, 이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제대로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나라에서 쏟게 될 피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주 사이에 거의 모든 선교사가 우크라이나를 떠났다고들 한다. 서방 국가들은 자국 대사관 직원과 국민에게 이 나라를 뜨라고 했다. 수도 크이우의 거리에 인적이 현저히 줄고 있다. 관료들, 사업가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임박한 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서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할까? 


어디로? 


아내와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르핀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크이우에서 멀지 않은 이 도시에서 우리는 이르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이곳 주민들을 돌볼 것이다. 이르핀 교회는 2016년부터 내가 목회자로 동역하고 있는 교회다. 들이닥칠 재난에 대비하여 우리는 식량과 의약품과 연료를 비축했다. 이런 걸로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여섯이다. 우리는 딸 넷을 키우고 있다. 편도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대학까지 매일 대중교통으로 통학하는 16살 딸이 가장 걱정되었다. 언론은 러시아가 침공하면 이동통신이 끊길 것이고, 대중교통도 마비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맙게도 대학생 딸아이의 수업은 이제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크이우에서 벨라루스 국경까지는 150킬로미터밖에 안 된다. 그래서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통해 공격할 가능성도 높다[이 글은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이 개시되기 전인 2월 24일에 쓰인 글입니다_역자]. 이 지역 언론은 피난가방을 꾸려 두라고 권고하고 있다. 나도 아이들에게 각자 3일치 정도의 배낭을 챙기라고 일러두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배낭을 챙기는 건 곧 즐거운 휴가나 여행을 의미했다. 그래선지 6살, 8살 두 딸이 계속 묻는다. “아빠, 어디로 갈 거야?” 처음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디에도 안 갈 거야.”


교회가 할 일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은 곳에서, 두려움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기의 시간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교회는 평화의 시간에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4년에도 이런 위기를 겪었다. 그때 많은 교회들이 부패하고 권위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독립광장에 기도 천막이 세워졌고, 그리스도인들이 따뜻한 식사와 뜨거운 차를 나눠주었으며, 교회들은 문을 활짝 열어 군경에 쫓기는 시위대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공공연하게 야누코비치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시위대를 비난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또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를 못 본 체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듯이 침묵하며 지내는 교회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교회들과 부패한 권력자들을 지지했던 교회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서 신망을 잃었다. 반대로, 시련의 시대에 국민과 함께한 교회들은 사회로부터 가장 높은 신뢰를 얻었다. 


이 나라를 위한 우리의 싸움


확신하건대 교회는 영적 투쟁의 장이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선포했고, 매일 밤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간구했다. 3일 연속으로 도시에 불이 꺼졌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모여야 했지만,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더욱 엄숙해졌다. 

    

금식기도 주간을 함께하면서 우리 내면에 버티어 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우리는 확신과 평화를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엄중한 시간에, 우리 교회는 또한 섬김의 장이기도 하다. 평상시 주일에 1,000여명이 모이는 우리 교회는 최근에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다. 지혈대 사용법과 지혈법, 붕대 감는 법, 기도[氣道] 확보법을 배웠다. 이건 걸 배운다고 우리 교인들이 의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이를 통해 우리 교인들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응급처지 교육을 받을 거라고 내가 처음 발표한 날, 한 형제가 내게 말했다. “제가 왜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그도 떠날 계획이었다. 군인도 아니고,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니, 떠날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는 이 나라에 남아 부상당한 사람들을 돕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한다. 


위급 상황이 되면 교회 시설은 피난처로 전환될 수 있다. 우리 교회에는 괜찮은 지하실이 있다. 난방 설비를 들여 놓을 준비도 되어 있다. 야전병원 부지로도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응팀을 꾸리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우리는 연료, 식량, 부상자 치료 물품 같은 전략 물자를 내놓을 준비도 되어 있다. 의사, 정비사, 배관기술자 교인 정보도  모아 두었다. 단수 상황에 대비하여 우물을 갖고 있는 교인도 알아 두었다. 


남아서, 기도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우리 교회도 남기로 결심했다. 이 위기가 끝나면,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도움이 절실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주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교회가 국가처럼 싸우지는 못할 것이지만, 이 싸움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는 노약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것이다. 아픈 사람들을 돌볼 것이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그리스도의 소망과 그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에스더처럼 기도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주께서 오래 전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하셨던 것처럼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내실 것이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것이다. 남아서, 우크라이나의 교회가 주께 의탁하게 해 달라고, 이웃을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원제: To Stay and Serve: Why We Didn’t Flee Ukrain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김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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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약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것이다. 아픈 사람들을 돌볼 것이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그리스도의 소망과 그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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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Vasyl Ostryi

바실 오스트리이. 이르핀성경교회(Irpin’ Bible Church) 목사이며 키예프신학교(Kyiv Theological Seminary) 청년사역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