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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톨릭의 내부 개혁자, 베네딕토 16세
by Leonardo De Chirico2022-02-07

이 교황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고려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오늘의 로마가톨릭을 진지하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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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들은 언제나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전 세계 로마가톨릭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교황이 “성 베드로의 의자에 앉은 역대 교황 중 최고의 신학자”로(1:xi), 또 마르틴 루터 이후 가톨릭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인이라고(1:xi) 불리는 인물이라면, 그는 훨씬 더 많은 시선을 끌 것이다. 적어도, 신학적으로 예민한 개신교인 독자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전집(Opera Omnia)은 총 1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전집은 신학과 교회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학문적 엄격함과 목회적 깊이도 겸비하고 있다. 이 교황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고려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오늘의 로마가톨릭을 진지하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이 전집과 비교했을 때] 페터 제발트(Peter Seewald)가 쓴 방대한 전기(1, 2권 합쳐 1,000쪽이 넘는다), ‘베네딕토 16세: 한 생애’(Benedict XVI: A Life)는 베네딕토 16세(본명 ‘요제프 라칭거’)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우리는 초대한다. 이 책은, 신학적 전기라기보다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어린 시절 침실에 테디베어가 있었고(2:2) “거의 여자아이 같은 부드러움”(2:55)이 있던―한 인물이 사건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게 된 삶의 이야기를 풍부한 정보로 다룬 저널리즘 기사에 더 가깝다. 



베네딕토 16세: 생애: 제1권: 나치 독일 청년기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1927-1965 

Benedict XVI: A Life: Volume One: Youth in Nazi Germany to the Second Vatican Council 1927-1965


피터 제발트 지음


‘베네딕토 16세’ 제1권은 교회 계급의 최고위 성직자의 위치까지 올라가며 점차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영웅이자 피뢰침이 될 한 남자의 젊은 삶이 주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로마에서  베네딕토 16세와 가진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 두 권짜리 전기는 요제프 라칭거의 생애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유산에 대한 결정적인 기록이다.


제1권은 독일에서 성장한 시기와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소년단(Hitler Youth) 가입, 신학 교수, 뮌헨 대주교장에 이르기까지, 미래 교황의 초기 생애를 다룬다. 제2권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시기 로마로의 이동, 교황 즉위, 논란이 된 사임, 후임 프란치스코 1세 교황 선출 이후 언론에 오르내린 그의 발언들을 다룬다. 


베네딕토 16세의 회고록, ‘마지막 증언’(Last Testament)과 꼭 함께 읽어야 할 이 책은 바티칸 뒤뜰에서 은퇴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뉴스를 만들어 내는 한 과격한 가톨릭 지도자의 생애에 대한 가장 완전한 설명이다. 


제발트는 이미 추기경 시절에도 그와 긴 인터뷰를 했고, 또 그가 교황이 된 후에도 역시 긴 인터뷰를 한 적 있다. 그리고 그 인터뷰들은 각각 ‘이 땅의 소금: 밀레니엄 끝의 교회’(Salt of the Earth: The Church at the End of the Millennium, 1997)와 ‘마지막 증언’(Last Testament in His Own Words, 2016)으로 출간됐다. 라칭거와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기록한 이 두 권짜리 전기는 또한 저자 제발트의 폭넓은 조사의 결과물이다. 라칭거와 동시대를 산 백 명과 대담을 했고 또 라칭거와 추가 인터뷰까지 했다. 제발트는 난처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넘어서는 안 되는 거리”(critical distance)(1:x)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927년에 태어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세기 로마가톨릭 신학의 저명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인상적인 이력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전문가(1962-65), 뮌헨·본·뮌스터·레겐스부르크에서의 다양한 교수직(1957-1977), 뮌헨 대주교(1977-1981), 추기경(1993-2005), 바티칸 신앙교리성 장관(1981-2005), 교황(2005-2013), 그리고 다소 비극적인 사임 후 2013년 이후 명예 교황(Papa emeritus). 베네딕토는 또한 오백 년 만에 나온 최초의 독일인 교황이기도 하다.


이 전기는 베네딕토의 사임을 앞둔 말년의 맥락을 자세하게 설명하기에 특히 환영을 받는다. 성 학대, 바티칸 은행 재정 스캔들, 그리고 바틸리크스(Vatileaks, 바티칸 기밀문서 유출 사건)의 비극적인 결과는 모두 라칭거의 힘을 약화시켰고, 전통을 중시하기로 유명한 이 교황으로 하여금 결국은 상당히 비전통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생애 초기


어린 시절부터 요제프 라칭거는 로마가톨릭교회에 삶을 헌신할 생각을 했다. 1931년 뮌헨 대주교 파울하버(Faulhaber) 추기경이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 네 살 난 요제프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언젠가 추기경이 될 거에요”(1:25). 1934년, 요제프가 아기 그리스도께 보낸 첫 번째 편지(라칭거가 작성한 최초의 문서)는 미사 경본, 녹색 미사 예복, 예수님과 같은 마음(1:31)에 대한 요청을 담고 있다. 소년 때부터 그의 성향은 이미 매우 분명했다. 그의 가족생활은 묵주, 고백, 그리고 9일 기도의 독실한 가톨릭 의식으로 특징지어졌다. 어린 시절 요제프와 그의 형 조지는 성직자 놀이를 하면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어린 시절 놀이로 시작한 게 결국 그의 삶이 되었는데, 평생에 걸쳐서 라칭거는 무려 2만 5,000번 넘게 미사를 집전했다(1:250).


라칭거가 회상하듯, 신앙과 관련한 그의 첫 번째 경험은 “전례(liturgy)의 아름다움”(1:55)을 통해서였다. 이 주제는 “합리성과 미학의 혼합”(1:313)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신학의 중심이 되었다. 사실 젊은 신학자로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의 ‘전례의 정신’(The Spirit of the Liturgy)이었다. 라칭거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독서는 자신이 ‘나에게 직접 말하는 동시대인’(1:191)이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강하게 동일시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찾는 하나님 백성의 교회론’(The ecclesiology of the people of God in Augustine)은 라칭거의 첫 학문 연구 주제가 되었다.


신학의 발전


신학교 시절에 라칭거는 가톨릭의 일체성(the wholeness of Catholicism)을 강조한 고트프리드 생엔(Gottfried Songhen)의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서 라칭거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관념, 존재의 유비에 대한 위대한 보편적 예”(1:212)를 발견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재된 이스라엘 신앙과 헬라 정신의 종합”(1:269)이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원칙을 기독교를 “탈헬레니즘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던 2006년 레겐스부르크 연설(2:328-344) 당시 그가 주장했던 요점이기도 하다.


라칭거는 생엔에게서 또한 전례 운동에 근거한 새로운 신학적 접근 방식을 배웠다. 살아 있는 과정으로서의 전통(성경을 포함)에 대한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조사, 철학-신학적 “누벨 신학”(Nouvelle Theologie, 새 신학)에 대한 공감, 교회일치운동의 충격, 그리고 신학을 함에 있어 명확한 공식화에 대한 열정(1:215) 등이 그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원칙은 “현대적이지만 결코 현대성에 함몰되지 않는”(modern but not modernistic)(1:321), 그가 작업할 미래의 신학적 지평이 되었다. 


초창기 라칭거에게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책은 “성육신을 그리스도가 역사 속으로 자신을 확장한 사건으로”(1:235) 해석한,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의 책 “가톨릭주의”(Catholicism)였다. 그리스도처럼 교회도 세상으로 확장함으로 교회의 권위와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의 시도에 라칭거는 감동을 받았다. 나중에 라칭거는 자신의 신학 형성에 그 책이 “핵심적 역할”(1:233)을 했다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온전한 그리스도”에 더해 그리스도 성육신의 연장으로서 교회를 바라보는 드 뤼박의 주장을 반영한 라칭거는 두 번째 시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는 것, 우리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리스도의 연속(continuation)이 됨을 의미합니다” (1:241).


라칭거의 교회론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성례전적 성격에 대한 주장과 깊이 얽혀 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스 큉(Hans Kung)이 교회를 “공의회”(council-concilium)로 본 것과는 달리, 라칭거에게 교회는 “성체 공동체”(Eucharistic community-communio)였다(1:417).


라칭거의 교수 자격 연구는 성 보나벤투라(St. Bonaventura)의 역사 신학이었다. 이 중세 프란치스코수도회 신비주의자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라칭거는 “계시가 성경뿐만 아니라 전통, 교부와 성인의 영감, 살아 있는 믿음 자체와 같은 것들에서도 주어졌다”는 확신을 확고히 했다(1:280). “계시는 단지 성경에 실린 표현 이상”이라는 그의 평소 견해와 “성경과 전통과 교회의 선포 사이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확신 때문에 라칭거는 항상 “성경주의(Scripturism)의 위험”(1:390)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것은 개신교(Protestantism)를 비판하는 방식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제발트는 로마가톨릭(Roman Catholicism)을 받아들이는 길에 들어선 수많은 개신교 지식인을 포용한 라칭거의 역할을 언급한다(예: 2:51; 2:170).


2차 바티칸 공의회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스핀 닥터”(특정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의 최측근에서 그들의 대변인 구실을 하는 사람-역자) 중 한 명이었던 라칭거는 문서 초안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경, 교부, 전통, 하나님의 백성, 계시 같은 공의회의 핵심으로 판명된 영역은 라칭거의 전문 영역이었다”(1:387). 그 후 그는 공의회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세속화 및 프로테스탄트화 경향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로마가톨릭 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친 1968년경의 혁명적 혼란은 그를 크게 괴롭혔다. 성 혁명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고, 일종의 “트라우마”(2:30)까지 경험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가 (“뉘앙스와 확장성을 제외하고는”) 신학을 바꾸지는 않았지만(2:42), 그로 인해 로마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진보” 경향에 대해 그는 확고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는 비관 속에서, 때로는 절망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2:69).


공의회에 대한 라칭거의 해석은 “개혁의 해석학”(hermeneutic of reform)으로, 교황 레오 13세의 공식을 사용하면 “새 것으로 옛 것을 보완하고 완성함(Vetera novis augere et perficere)”(2:77)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라칭거의 로마가톨릭 신학을 평가할 때, 전통주의와 진보주의가 마치 그의 저작 내에서 교란되고 상충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대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다양한 단계의 경력에 따라서 각각 다른 강조점과 우려가 있었을 수 있지만, 제발트의 전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라칭거가 급진적 신학자에서 융통성 없는 정통주의의 파수꾼으로 회심했다는 식으로 그의 신학을 평가하는 것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오류이다. 1982년 한 독일 신문에 실린 기사는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진부한 표현은 라칭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요제프 라칭거는 몸과 영혼 모두 가톨릭 신자일 뿐이다”(2:159-160).


개신교에 대한 반대 


라칭거의 신학은 로마가톨릭의 보편성(catholicity)을 전형화한다. 예를 들어, 그의 신학은 항상 권위 있는 교도권(magisterium)에 비추어 성례전이라는 렌즈를 통해 성경을 읽는 방식이다. 그는 로마가톨릭 교회가 성육신을 연장한다는 관점과 니케아 기독론을 하나로 엮는다. 그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동시에 트리엔트 공의회의 반개신교 교회법 및 교령, 그리고 보다 최근의 마리아 교의(Marian dogmas)를 함께 고백한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성체 희생의 표현과 관련시킨다. 그는 또한 항상 성령을 교회의 성직위계 구조와 연결시킨다. 라칭거는 에큐메니즘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함이 있고 오로지 로마 교회만이 유일한 “가톨릭” 교회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는 전 세계를 포용하는 가톨릭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의 사명을 추구한다. 그는 교회의 교회적 관점에 교회가 수행해야 할 정치적 역할을 결합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칭거는 회복된(revitalized) 로마가톨릭주의의 경계선 내에 있는 현대적 보수주의자이다.


라칭거가 1972년 창간에 참여한 신학 저널 ‘꼬뮤니오’(Communio)의 모토(2:79)는 그의 신학적 비전을 깔끔하게 요약하고 있다. “진정한 전통의 근원으로의 회귀를 통한 쇄신 프로그램.” 다시 말해서,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구체화된 로마가톨릭주의의 업데이트는 결코 그 전통적 뿌리를 끊지 않는다. 베네딕토는 결코 성경에만 전념하거나 그리스도께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가 지향하는 방향은 종교개혁의 주장에 반대하는 로마가톨릭의 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로 결코 교정될 수 없는 “가장 깊은 핵심에서부터”(2:120) 또는 “내부에서부터”(2:164) 로마가톨릭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자 출신 교황(현재는 명예교황)의 신학적 존재의 요지이다.


칼 트루먼(Carl Trueman)은 ‘베네딕토 16세의 신학: 개신교에서 바라본 이해’(The Theology of Benedict XVI: A Protestant Appreciation)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지적한다. 


로마가톨릭교(Roman Catholicism)는 단순히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개신교(Protestantism)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며, 개신교와는 매우 이질적으로 성경과 전통과 교회 교리를 고도로 긴밀하게 연결하는 방식이다(153).

베네딕토 16세는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을 구현한다. 개신교 독자들은 성경적 또는 신학적 언어의 사용에서 일부 중복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설명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신교와는 매우 이질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 교황이라는 우뚝 솟은 지적 위상과 20세기 로마가톨릭을 향한 그의 명백한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의 전기는 전 세계에서 무려 13억 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전통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흥미로운 진입점이 된다. 



원제: Renewing Rome from Within: A Biography of Benedict XVI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복음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설명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신교와는 매우 이질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기는 전 세계에서 무려 13억 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전통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흥미로운 진입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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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eonardo De Chirico

레오나르도 데 키리코는 Breccia di Roma 교회의 목사이자 Instituto di Formazione Evangelica e Documentazione의 역사신학 강사이다. 저서로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황 가이드(A Christian's Pocket Guide to the Papacy)’ ‘같은 말, 다른 세상: 로마가톨릭과 복음주의자는 같은 복음을 믿는가?(Same Words, Different Worlds: Do Roman Catholics and Evangelicals Believe the Same Gospe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