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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두려움 없이 시대를 거스르는 그리스도인
by Thaddeus Williams2022-01-16

사도행전에는 적어도 13건의 정치적 부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13건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두려움이나 절망, 정치적 편집증으로 반응한 사례는 정확히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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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 대학교는 미국인의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연례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미국 주요 도시의 화재, 논란에 휩싸인 대통령 선거, 선거 부정 주장, 전례 없는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테러리스트 소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셧다운 행정명령, 백신 의무화 등등, 2020년과 2021년을 장식한 이런 뉴스 헤드라인들을 떠올려 보면, 최근 미국 사회에 불안감이 급등했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채프먼 대학교의 이번 조사 결과에서 정치성향에 따라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초점이 달라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예를 들면, 진보성향 응답자일수록 대통령 선거 결과를 더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74.6%). 보수성향 응답자는 29.5퍼센트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 걱정한다고 응답했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매우 두려워”하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응답자는 1/4만이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극 진보”라고 응답하는 75.8퍼센트는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소요사태에 대해 걱정한다고 밝혔지만, “극 보수”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43.2퍼센트만 소요사태에 대해 걱정한다고 응답했다. 


물론 정치적 좌파가 두려움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은 당파의 경계를 넘나든다. 왜냐면 모든 정치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거기에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당을 초월하여 미국에서 (6년 연속으로) 가장 으뜸가는 두려움의 대상은 “부패한 공직자”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응답자(84.6%)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77.8%) 모두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다. 2위를 차지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두려움의 지수가 무려 20점이나 높을 만큼, 이 두려움은 지배적인 두려움이다. “부패한 공직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을 일으키는 데에는 여러 (일부는 타당하고 일부는 비합리적인)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두려움을 더 큰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믿음


공포심을 조장하는 오늘의 우리 정치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서 1세기로 돌아가 보자. 사도행전에는 적어도 13건의 정치적 부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보통 폭력이 개입되었고 심지어는 죽음이 수반된 그런 사건들이었다.  


그런데 이 13건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두려움이나 절망, 정치적 편집증으로 반응한 사례는 정확히 제로다. 그리고 그 13건 가운데 1세기 그리스도인이 담대하게 대처했던 사례는 정확히 13건이다. 그들은 13건 모두에서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이웃을 사랑했으며, 정치적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는 명백한 정치적 부패 사건의 첫 번째 사례를 살펴보자. 베드로와 요한은 공중 앞에서 치유를 베풀고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다. 사도행전 4장에서 보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예수를 입 밖에 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 입을 다물게 하겠다”며 살해 위협을 가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의 이런 위협으로부터 겨우 풀려난 뒤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그들이 당한 일을 낱낱이 일렀다. 예루살렘에서 교회 식구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이 소식을 듣고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공황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려워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초대 교회는 어떻게 하는가? 기도한다. 그들은 소리 높여 하나님을 “데스포테스”(Despotes), “대주재”라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한다(행 4:24). 이 단어에는 절대적이고, 전권적이며, 아무도 저지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무너뜨리려고 위협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적, 정치적 세력은 “대주재”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들의 기도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온 우주의 창조주라고 선언하며, 이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인간의 시도는 모두 무익하다는 시편 2편의 말씀을 인용한다(행 4:26).


그 다음에 이 기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향한다. 예수를 처형하는 데 공모한 정치 세력(“군왕들”과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28절) 그대로 했을 뿐이다. 누가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아무도 저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chier), 아무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boule), 미리 정하여 두시는(proorisen) 하나님의 주권. 


부패한 정치 세력이 예수님을 이긴 것처럼 보였던 그 암울한 날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초대 교회의 대답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항상 계셨던 바로 그 자리, 당신의 주권적 보좌에 앉아 계셨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이 진리를 부패한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가하는 절체절명의 위협에 적용한다. 그렇게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행 4:31). 그리고 그 교회는 자신들을 철저하게 박해하는 세력 앞에서도 급격하게 성장해 나갔다.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주재,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우연히 생긴 우주에서 그저 우주적으로 소외된 존재라면? 정말 그렇다면, 오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온갖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속주의가 팽창하고 있는 시대에 부패한 지도자에 대한 두려움 또한 증가한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질수록 권세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두려움이 필연적인 심리적 결과가 아니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두려움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을 따르지 않고 1세기 교회의 저 굳건한 신학을 따라 구속의 은혜로 이 시대에 맞서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이웃들에게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는 우주의 하나님을,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행 4:24) 하나님을, 그리고 이 땅에 있는 가장 강력한 제국들과 나라들과 왕들을 왜소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줄 수 있다. 


2022년을 시작했다. 올해도 세상에는 온갖 무시무시한 헤드라인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다는 사실 속에서 살아가자. 이 불안한 시대 안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가자. 



원제: In 2022, Christians Can Be Counterculturally Fearles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서은성 

우리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을 따르지 않고 1세기 교회의 저 굳건한 신학을 따라 구속의 은혜로 이 시대에 맞서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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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haddeus Williams

사디어스 윌리암스(PhD, Vrije Universiteit, Amsterdam)는 캘리포니아 Biola 대학에서 조직신학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 그의 저서 Confronting Injustice without Compromising Truth: 12 Questions Christians Should Ask About Social Justice (Zondervan, 2020)는 베스트 셀러이다. Trinity Law School에서 법학을 가르쳤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L'Abri Fellowships에서 세계관 연구, 워싱턴 D.C.의 Blackstone Legal Fellowship 및 Federalist Society에서 윤리학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