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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마지막 혼인 잔치
by Marshall Segal2022-05-20

결혼은 그저 독신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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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는 홀로 있는 한 남자와 함께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남자를 만드시고는 왜 잠시 멈추셨을까? 하나님은 그 사이에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그 남자 앞으로 이끌어 오시고, 왜 마지막에 가서야 그의 배필, 그의 여왕을 만나게 하셨을까? 에덴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지만, 딱 한 가지는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


에덴동산에서의 결혼은 오랜 기다림 끝에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그렇게 만드신 데는 분명한 뜻이 있으셨다. 하나님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 광대하고 놀라운 지구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마지막에 이 외침이 기분 좋은 지진처럼 그가 만드신 만물에 울려 퍼지게 하셨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창 2:23).


결혼은 마지막 순간에 첨가된 것이 아니다. 결혼은 완성―살과 피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 남자와 여자, 친밀과 안정과 생식―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창 1:27-28). 하나님은 결혼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곳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아담의 짝을 만드시는 걸 미뤄 두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혼인을 통하여 남자가 홀로 지내는 그 긴장, 온 세상을 사로잡고 있던 긴장을 해소시키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로 둘을 만드시고, 다시 둘로 하나를 만드신다. 


그렇지만 결혼의 아름다움이 저 최초의 러브 스토리를 이룬 원천은 아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남자가 또 다른 사랑, 더 큰 사랑, 더 좋은 배필이 있나 찾아 사방을 헛되이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셨다. 


결혼은 왜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아담이 창조의 제단 앞에 오랫동안 불편하게 서 있게 하셨고, 이로써 우리가 하와를 고대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신 다음에 당신의 아들을 그 제단에 보내셨고, 이로써 우리가 그 신랑을 만날 날을 고대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저 첫 번째 결혼을 주제하실 때 당신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엡 5:31-32).


결혼은 그저 독신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택한 백성, 교회를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끝없는 뜨거운 사랑을,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중단 없는 열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결혼이다. 신랑 그리스도께서는 신부 교회를 얻을 때까지 결코 평안하지 않으실 것이다. 신부 교회는 신랑 그리스도께서 찾아내실 때까지 결코 평안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속에 나타낼 수 있도록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 5:25-27).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속에 나타낼 수 있도록 남편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엡 5:22-23).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결혼을 우리의 영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캔버스로 만드셨다. 아내의 말, 태도, 행동, 결정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거룩하게 할 수도 있고 더럽힐 수도 있다. 또한 남편의 말, 태도, 행동, 결정은 신랑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할 수도 있고 더럽힐 수도 있다. 


신부 교회 안에 있는 나의 기쁨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강한지를 설명하기 위하여서 결혼의 이미지를 거듭거듭 사용하시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4:5-6을 보자.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사 54:5-6).


하나님은 신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혼인과 결혼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백성에게 전하고자 하신 당신의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사 62:4-5).


하나님은 남편들이 아내로 인하여서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만드셨다. 이를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하여서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리는지 알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호 2:19-20).


그 길을 걸으시는 하나님


비록 결혼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기다려온 그 신랑임을 알고 계셨다. 또한 당신의 오심이 온 세상이 기다려온 사랑임을 알고 계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고 정죄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마 9:15). 오랫동안 신부는 죄와 수치와 소외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고대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이 오셨다. 하나님께서 그 동산에 심어놓으신 씨앗이 마침내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없는 작은 동산에서 싹을 틔웠다. 


그는 당신의 갈비뼈를 내주는 대신에 십자가를 지고 외롭고 먼 갈보리 그 길을 걸어가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빌 2:7-8). 그 신랑은 결혼 예복을 입고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는 겸손의 옷을 입으셨고, 이름 없이 자라셨고, 대적들의 공격을 받으셨고, 고통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첫 신랑은 신부를 찾고 또 찾아다녔고, 이 마지막 신랑은 신부를 얻기 위하여 죽으셨다. 


어린 양의 결혼식


결혼이란 것은 결국 끝날 것이기에, 결혼―에덴동산에서도 그리고 오늘날에도―은 결혼 너머의 것을 준비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랑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부활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 22:30). 하나님은 창조세계의 중심에 신랑과 신부를 세워 두셨다. 이는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혼인의 씨앗을 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은 우리를 지으시고 허락하신 결혼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하와를 얻게 된 아담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예수께서 당신의 얻으실 때에, 열방은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로 노래할 것이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6-8).


그리고 천사가 외칠 것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9). 마침내 자신의 아내를 찾은 신랑의 기쁨을 우리 모두 저 멋진 마지막 결혼식이 임할 때 우리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혼을 주셨다. 언젠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내를 주셨다. 당신이 당신의 교회 안에서 보는 아름다움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편을 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기와 능력과  사랑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다. 



원제: The Wedding at the End of Marriage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박광영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은 우리를 지으시고 허락하신 결혼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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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rshall Segal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한국어로 번역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당신에게'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