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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도, 더 위대한 응답
by 최성은2021-12-10

여호사밧은 계엄령 대신에 국가 금식령을 내린다. 이상하기는 유다 백성도 마찬가지다. 피난 갈 준비는 하지 않고 온 나라가 국왕의 이 이상한 명령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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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국에 위기가 닥쳤다. 주변 국가들이 연합하여 유다 왕국을 침공했다. “연합군 대부대가 사해 바다 저쪽에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엔게디까지 이르렀습니다.” 전령이 긴급 상황을 여호사밧 왕에게 보고한다.   


유다 주변국 모암과 암몬이 마온 사람들과 결탁하여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한 이 국가 위기 상황이 역대하 20장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남 왕조 유다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약소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까지 했다.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던 이 나라에 별안간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 최고 지도자는 어떤 조치부터 취할까? 따져 볼 것도 없이 가장 먼저 군대를 소집하고 전시 상황에 돌입할 것이다. 전군에 비상령을 발동하고 국가비상사태 내지는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왕위에 오르고 유다 왕국을 다방면으로 개혁해 온 왕이지만 여호사밧에게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런 급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지하 방공호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군사 지휘관들을 대동하고 은신하여 국가안보회의를 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식에 어긋난다.


여호사밧은 계엄령 대신에 국가 금식령을 내린다. 이상하기는 유다 백성도 마찬가지다. 피난 갈 준비는 하지 않고 온 나라가 국왕의 이 이상한 명령을 따른다.     


국왕은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여호사밧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려나 보다. 그런데 그 내용 역시 이상하다.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라거나 예비군 소집령에 따르라거나 하는 내용이 아니다. 왕은 군중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6-12).

국가 위기 상황에서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 드린 여호사밧의 이 기도를 찬찬히 살펴보자.


여호사밧이 드리는 기도의 초점은 여호사밧 자신이나 그의 왕조나 그의 백성에 가 있지 않다. 그의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한다. 아니, 더 나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 상기시키신다. ‘하나님은 이러 분이 아니십니까?’ 매우 당돌하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수사의문문은 마치 하나님을 설득하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하다(이 기도는 시종일관 수사의문 문장이다.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모두 9문장으로 된 이 기도문에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4개나 된다). 


이 당돌한 기도를 살펴보자.  


여호사밧의 이 기도는 그 첫마디가 “우리 조상 하나님!”이라는 하나님 부름이다. 왜 조상을 소환하는지는 이어지는 기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부르자마자 바로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마치 하나님께서 잠시 잊고 계시기나 하듯이, 그래서 하나님께 환기시켜 드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힘주어 아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세계 만민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 누구도 맞설 수 없는,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지 않습니까?’    


여호사밧은 “우리 조상의 하나님” 곧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고 확인한다. 이 하나님은 유다는 물론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의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안 믿는 이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악한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곧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신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이 단순하지만 확고한 믿음을 여호사밧이 지금 국가 위기 앞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휴전이나 강화조약 같은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군 비상령을 내리지도, 진군명령도 공격명령도 내리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만 찾을 뿐이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자기 자신에게, 그의 백성에게,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 되새길 뿐이다. 그의 이러한 고백 속에는 지금 시시각각 좁혀 오는 저 연합군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친 이런 상황과 처지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호사밧은 이 위기 상황에서 분명히 자신과 백성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왕이 되자마자 “주적” 남쪽 이스라엘 왕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국가 방어 체계부터 개혁하고 강화한 자신이(대하 17:1) 오히려 교만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았을 것이다. 바알숭배를 척결하고 우상의 산당들을 일소하려한 자신의 종교개혁도(대하 17:3-4, 6) 돌아보았을 것이다. (사실 그는 이 종교개혁을 완결하지 못했다.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대하 20:33).) 북쪽 이스라엘 왕조와 정략혼인 관계를 맺고 전략적 제휴를 시도한 뼈아픈 실책(대하 18장)이 시국이 이렇게 되니 다시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지금 이 위기가 자신과 백성의 죄로 인한 것이든 불가항력적인 주변 상황으로 인한 것이든, 여호사밧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한 분 하나님께 오로지 무릎 꿇을 뿐이다.


사실, 여호사밧의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 부름은 하나님이 그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과 하신 일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재확인이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조상과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근거로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조상의 하나님, 곧 조상과 약속하신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평소에도 곧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고 그 말씀으로 백성을 가르쳤다.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그의 방백들[을]…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또 그들과 함께…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대하 17:6-9). 이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앞에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기도할 수 있었다.


여호사밧이 구체적으로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그리고 또한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도 들추어낸다. 이제 그의 기도는 현실의 급박한 상황에 더욱 근접한다. ‘우리가 성전에서 주께 부르짖으면 우리를 기근이나 환난이나 전염병에서 구해 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아람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지금 이렇게 성전에 올라와 무릎을 꿇고 주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이제 비장의 카드로 하나님을 압박(?)한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앙갚음을 하는 것을 보십시오.” 옛적 ‘그들’은 지금 유다로 쳐들어오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옛적에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우리는 암몬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들을 침공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들이 유다를 침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여호사밧, 아마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달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정곡을 찌른다. 더 나아가 그는 지금 그들이 유린하려고 쳐들어오는 땅은 ‘우리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 “주의 기업”이라고 아뢴다.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그런 땅을 연합군이 빼앗으려 한다고, 그는 지금 하나님께 핵심을 찔러 일러바치고 있다. 


여호사밧의 기도는 이제 맺음 부에 이른다. 조상과 과거를 들추어 하나님께서도 도저히 어찌하실 수 없게 한 그는 거두절미하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요구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나님,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는 저들을 무찌를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뿐입니다!’


기도는 끝났다. 절박함에서 우러나온 기도였다.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간절한 기도였다.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우리 군대에게 힘을 주실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침공한 연합군을 박살내 버릴 수 있을 것이야.’ 아마도 여호사밧은 이 정도로 예상했을 것이다. 이것으로도 어찌 큰 믿음이 아니겠는가! 기도와 믿음의 군주 여호사밧은 이 기도를 마치고 어쩌면 현실적인 행동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출정식을 거행할 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 차례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허를 찌르신다.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 당당히 요구한 여호사밧에게, 하나님도 그 백성 앞에서 당당히 말씀하신다. 여호사밧이 백성 앞에서 기도한 바로 그 자리에서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 있는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 20:14-17).  

여호사밧의 기도가 매우 구체적이었던 만큼 하나님의 응답도 매우 구체적이다. 여호사밧의 지난 역사 회고(말)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현재적 행동으로 응답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지 마라. 이 전쟁은 너희 전쟁이 아니라 내 전쟁이다. 너희는 싸울 필요 없다. 내가 직접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너희는 그 들판에서 구경만 해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냥 수사가 아니었다. 이 전쟁은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전쟁으로 끝난다. 유다 백성은 전쟁터에 그냥 구경하러 간다. 군악대도 아니고 찬양대가 선두에 서고, 백성은(전투 부대가 아니다) 전장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찬송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암몬-모압-세일 연합군을 전멸시키신다.


여호사밧의 기도는 위대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훨씬 더 위대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냥 수사가 아니었다. 이 전쟁은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전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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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성은

최성은 목사(PhD,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는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이며, 지구촌미니스트리네트워크(GMN) 대표 및 (사)지구촌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섬기고 있다. 한국교회의 복음화 운동과 복음 생태계 마련을 위해 한국로잔위원회와 TGC코리아ㆍCTC코리아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인 '뉴노멀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