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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떼를 감독하는 세 가지 원칙
by David Mathis2022-03-07

성도의 기쁨을 위한 일꾼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그들을 지배하거나 압제하고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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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Global 2021 Conference | Nashville

성경: 베드로전서 5:1-5

주제: 성경적 리더십


[“교회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이들은”에서 이어집니다] 


다시 베드로전서 5장으로 돌아가서, “목양하다”(shepherd)를 보강하는 동사는 “감독하다”(exercising oversight)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0:28과 신약성경의 다른 네 본문(빌 1:1, 딤전 3:2, 딛 1:7, 벧전 2:25)에서 사용된 명사 “감독”(overseer)의 동사 형태입니다. 이 문맥에서 “감독하다”(Oversee)는 단지 감시하고 관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 떼에 대한 중요한 관찰과 더불어 양 떼에게 위협이 감지될 때 교회가 가시적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이 바로 이 “살피다” 또는 “감독하다”의 의미입니다. 제 동료 목사 조 리그니(Joe Rigney)는 최근 감독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목사는 양 떼 속에서 봐야 할 것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제 양 떼를 위해 지혜와 행동하는 용기와 동정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역은 가르침을 통해서 일어나야 한다.”


이제 이 구절, 베드로전서 5장의 핵심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하라”며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2∼3절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이제 이 명령을 역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지배하려 하지 말고, 모범이 되십시오.


우리는 “포악으로” 통치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를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 “주인노릇 하지 말라”(not lording it over)로 번역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는 또 다른 문맥에서는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을 의미하는 강력한 동사이기도 합니다(롬 14:9; 딤전 6:15). 또는 한때 죄가 우리에게 행사했던, 따라서 더 이상은 그래서는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주인노릇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롬 6:9, 14, 7:1).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지금 그리스도인 지도자라면 결코 그들이 맡고 있는 사람들 위에서 행사해서는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주인노릇(lordship)을 이 동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눅 22:25).


가장 우선하고 가장 중요한 양 떼


지배하지 말라는 이러한 금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사도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고후 1:24).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베드로전서 5장에 있는 동사의 강화된 형태는 예수께서 마가복음 10:42에서 사용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성도의 기쁨을 위한 일꾼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그들을 지배하거나 압제하고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양 떼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두 번에 걸쳐서 그들이 양 떼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벧전 5:1-2). 위도 아니고, 옆도 아니고, 그렇다고 멀리도 아니고,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목회자는 무엇보다 양 떼가 언제나 가장 먼저입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받아들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지성과 웅변 또는 실행 기술에서 굳이 월드클래스일 필요는 없습니다. 평균적인 지적 수준에 정상적 사고를 하며,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양 떼에게 본이 되고, 지혜로운 팀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양 떼를 인도하고 먹이면 됩니다. 좋은 목회자라면 누가복음 10:20에 나오는 예수님의 명령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 마련입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들에게 가장 크고 근본적인 기쁨은 목회자인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인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신 (그리고 하고 계시는) 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목회자는 안정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굳이 남을 감동시키거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으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회중보다 더 수준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성숙하고 건강하며 정상적인 기독교의 믿을 만한 모델일 뿐입니다. 


겸손해서 행복한


이런 그들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은 그들이 겸손하거나 또는 겸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장로와 회중에게 동시에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벧전 5:5)라고 촉구합니다. 교회를 위해 겸손으로 옷을 입는 데 앞장서는 목회자를 가진 건강한 교회의 교인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겸손으로 옷을 입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한 목회자는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겸손하며 교인이 언제라도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양 떼를 초대하고 환영하며 그들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온 세상 모든 양 떼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여러분 가운데 있는”(2절) 양 떼, 즉 그들의 책임으로 할당된 특정한 이름과 얼굴에 초점을 맞추며, 그 어떤 교인도 멀리 떨어져 있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인 가운데 함께 거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2. 부끄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부끄러운 이익은 양떼의 이익이 아닌 다른 이익입니다. 돈이 그런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권력, 존경, 위안, 또는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쁜 마음”이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히브리서가 양 떼의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인 리더십의 역동성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하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히 13:17).


이 구절에는 교회와 지도자 사이의 보완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마치 결혼과 같은 비전이 들어 있습니다. 지도자는 교회의 이익을 위해 수고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사역하고, 그건 많은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목회자의 기쁨이 교회의 유익이 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고생하지 않고 열심히 사역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행복하게 사역하기를 원합니다. 교인들도 지도자가 자신을 위해 사역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들이 즐겁게 사역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의 기쁨을 위해 지도자들을 주십니다. 바로 이 사실이 리더십에 대한 이 세상의 패러다임과 의심을 뒤집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


리더십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주님이 주신 지도자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열심을 내겠습니까? 지도자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도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때, 그러니까 성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성도에게 가장 깊고 지속적인 기쁨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지도자의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지도자를 향한 성도의 복종은 그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성도와 관계없는 기쁨, 성도가 아닌 다른 기쁨이 아니라, 오로지 성도를 통해서 자신의 기쁨을 찾게 됩니다. 


“복종”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제시한 목양과 감독과 목회라는 비전의 맥락에서 볼 때 5절에서 말하는 “복종” 그러니까 “장로들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2∼4절에서 말하는, 자원하고 열심이며 또한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양 떼의 기쁨을 위해서 일한다”는 맥락이 확립되기 전까지, 5절에서 말하는 복종이라는 명령에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복종하라는 지도자는 자신이 아니라 양 떼를 먹입니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양 떼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뭔가를 얻는 것은 다 양 떼와 함께 얻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양 떼는 잃고 자신만 얻는, 그런 일은 생길 수 없습니다. 


복종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기 전에 먼저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감독과 목사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선결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골 3:19).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십시오(엡 6:4).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롬 13:1; 벧전 2:13).


목회자는 공적 가르침으로 양을 먹이고(고전 14:34),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행 20:28), 양 떼를 돌봅니다(딤전 4:16).


목회자는 양 떼의 기쁨을 위해 자기 자신과 시간, 에너지와 관심을 바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7에서 하나님은 소극적으로는 목회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으며, 적극적으로는 목회자가 신음이 아니라 기쁨으로, 양 떼의 기쁨을 위하여 사역하게 되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여러분에게 유익과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해지지 않는 기쁨


일반적으로 지도자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에게 한마디 하자면, 지도자들이,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는”(살전 5:12) 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 그러니까 그들의 사역이 자신의 이기심을 높이고, 이기적인 특권을 얻으며, 남을 다스리려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실상은 오히려 자기 권리와 사사로운 안락함을 제쳐놓고 불편한 일을 도맡아 할 뿐 아니라, 제한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까지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교회나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공식적인 지도자인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만약에 여러분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아래서) 여러분이 가진 상대적 권위가 자기과시나 자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기희생의 결과이며,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로 순수하게 그들을 위해서 사역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리더십에서 여러분이 찾는 기쁨은 결코 이기적인 추구나 부끄러운 이득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끄는 사람들의 기쁨에서 찾은 거룩한 만족이란 것을 그들이 확신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양 떼의 기쁨을 위해서 애쓰는 일꾼으로 보일 때, 그들은 기꺼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위대한 목자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합니다. 그런 지도자는 그 과정에서 결코 자신의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기쁨 안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히 12:2). 


목회자는 교회의 기쁨을 위한 일꾼으로서, 부끄러운 이득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조금도 없는 이득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교회의 유익 안에서 기쁨이라는 이득을 추구합니다. 지금 당장 누리는 기쁨이자 다가오는 심판 날 부끄러움이 없는 보상에 대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벧전 5:4).


3.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하여 하십시오.


교회는 행복한 목회자를 원합니다. 의무감에 사역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음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목회자는 우리의 기쁨을 위해 기쁨으로 사역하는 목자입니다. 우리는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벧전 5:2) 섬기는 목회자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수고하는 목회자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사역을 열망하고(딤전 3:1), 기쁨으로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히 13:17). 의무감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열심히,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문자 그대로 “하나님에 따라”(그리스어: kata theon) 사역하는 목사를 원하십니다.


이런 구절은 하나님도 분명히 이런 식으로 사역하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행동하시는, 무한히도 행복한 “복되신 하나님”(딤전 1:11)이십니다. 하나님이 몸소 그렇게 일하시기에 하나님은 목회자도 기쁨으로 사역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활동의 근원은 충만한 기쁨입니다. 의무가 아닌 열심과 즐거움으로 이뤄지는 일을 통해서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또한 기꺼이 열심을 다해, 그리고 행복하게 당신의 백성을 돌보십니다. 


교회는 이런 사실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신음하는 장로가 아니라 행복한 목회자가 교회를 행복하게 만들고 구주께 영광을 돌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일을 즐기며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유익이 됩니다(히 13:17).


모두가 원하는 대표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목회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나 어떤 팀도 이런 꿈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완전성으로 인한 마비와 체념이라는 유혹까지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무거운 짐을 넓은 어깨에 짊어진, 온전하고 위대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벧전 5:7). 또한 성령이 그들 안에서 살아 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용감하고도 겸손한 다음 발걸음을 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행여나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면 언제라도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목회자가 성령에 의해 진정한 진보를 이뤄가는 현실적인 꿈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울 때, 우리 시대 망가진 리더십 문화의 일부는 우리를 통해서 치유 받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만은 의심을 떨쳐 버리고 훌륭한 목사와 교사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결코 일반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 선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원제: Workers for Your Joy: The Call of Christ to Christian Leaders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지도자는 성도와 관계없는 기쁨, 성도가 아닌 다른 기쁨이 아니라, 오로지 성도를 통해서 자신의 기쁨을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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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Mathis

데이비드 마티스는 desiringGod.org의 주필이며,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Cities Church의 목사이다. '은혜받는 습관'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