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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영혼 안에 숨은 분노를 조심하라
by Joe Rigney2021-11-09

열정은 충동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영혼의 움직임이다.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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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은 다시 읽을 때마다 필연적으로 새로운 교훈을 주기 마련이다. 책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의미는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한다(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할 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에게는 게다가 읽고 또 읽는 책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광범위하고 풍부한 프레임워크(기준)인 성경이 있다. 


이것은 어린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어린이 책의 경우, 예를 들어, 나니아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전혀 비밀이 아니다. 나는 나니아 시리즈를 수십 번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었을 때에는, 옷장 여행을 통해서 그 시리즈의 마지막 책에 담긴 중요한 주제가 나를 새롭게 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제와 관련해서 성경을 읽었고, 마침내 모든 주제가 명확하게 내게 이해되었다. 


그 주제는 마지막 전투에 관한 초반부 장에서 드러나는 열정에 관한 것이다. 열정은 충동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영혼의 움직임이다.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두려움, 불안, 욕망, 연민,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런 열정이다. 화를 낼 충분한 상황이었기에 분노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 하더라도, 억제되지 않고 마구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억제할 방법이 있을까?


왕의 성급함


두 번째 장은 아슬란이 나니아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티리안 왕과 그의 절친한 친구 쥬얼 유니콘이 몽롱해지는 상태로 시작한다. 아슬란의 도착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식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곧 아슬란의 도착 소식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룬윗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거짓말!” 왕이 거칠게 말했다. “나니아 또는 전 세계의 어떤 생명체가 감히 그런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왕의 반응이 보여주는 강도에 유의하자. 더 중요한 것은 그 반응이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주목하는 것이다.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칼을 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충동적인 열정은 그의 마음과는 별개로 어떤 반응을 하도록 유도했다. 


잠시 후 숲에서 나타난 드라이어드가 파괴된 나무에 대한 정의를 외쳤을 때에도 우리는 똑같은 경솔함을 본다. 그말을 들은 티리안은 벌떡 일어나 검을 뽑는다. 주변에 아무런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티리안의 검은 이미 뽑혀졌다. 그가 열정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일으킨다


드라이어드가 죽은 채 땅에 쓰러지자 티리안은 슬픔과 분노로 말문이 막힌다. 곧 이어 그는 쥬얼과 룬윗을 불러 이 살인을 저지른 악당들을 죽이기 위한 여정에 즉시 합류한다. 그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떠나야 한다. 쥬얼은 동의하지만 룬윗은 주의한다. “왕이여, 당신의 의로운 진노에 주의하십시오” 룬윗은 화가 났을 때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한다. “바보가 되지 말라. 군대를 모으고 적의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티리안은 “10분의 1초도 기다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의 분노에는 이미 불이 붙었고, 그를 조종하는 주인은 이제 분노이다. 티리안은 혼자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쥐고 쥬얼과 함께 출발한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강을 건널 때 물의 차가움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분노는 그의 목을 조르고 놓지 않을 것이다.


나무 벌목을 지시한 사람이 아슬란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티리안과 쥬얼은 위험을 향해 달려간다. 해설자 코멘트가 따라온다. 


쥬얼은 단지 두 사람이 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순간 깨닫지 못했다. 그건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너무 화가 나서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경솔함은 결국 많은 재앙을 불러왔다.

이것이 문제이다. 너무 화가 나서 그들은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불의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의롭더라도 경솔한 분노는 어리석음에 이르게 한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충동적으로 반응했고, 그 결과는 큰 악과 해를 입는 것이다. 


무엇이 분노를 막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악의 일부가 분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말하는 말이 칼로멘 병사들에게 구타와 채찍질 당하는 것을 본 두 사람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 말이 나니아인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티리안과 주얼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분노했다. 왕의 검이 올라가고 유니콘의 뿔이 아래를 향했다. 그들은 함께 앞으로 돌진했다. 다음 순간, 칼로멘 병사 둘은 다 죽어서 쓰러졌는데, 하나는 티리안의 칼에 베였고 다른 하나는 쥬얼의 뿔에 심장이 찔렸다. 

반복해서 우리는 이 장의 주제를 보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칼을 쥔 손, 너무 화가 나서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 너무 화가 나서 상대를 죽이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상황이다. 왕의 무자비한 경솔함은 큰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나는 티리안의 경솔함을 성경 속 이야기와 함께 엮어서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억제되지 않은 성급한 분노가 큰 어리석음과 악과 유혈로 이어진다면 무엇이 과연 그러한 열정을 억제할 수 있냐고 말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성급함


다윗의 삶에 관한 성경 이야기는 친숙하다. 다윗이 광야로 쫓겨난 이유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서 사울의 추격에서 일종의 유예를 얻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죽었고 바란 광야에 있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물자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다윗은 근처에 사는 부자 나발에게 사자를 보낸다. 나발은 잔치를 준비하고 있고, 다윗은 호의와 물자를 요청한다. 이 요청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나발의 목자들 근처에 진을 쳤다. 그들은 그의 양 떼를 약탈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다른 약탈자로부터 그 양떼를 보호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밤낮으로 나발의 양 떼를 지키는 성벽이었다(삼상 25:16). 도적도, 또 짐승도 양 떼를 해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보호와 더불어, 다윗은 자신이 나발의 아들이자 종이라며 겸손하게 요청한다(삼상 25:8).


그런데 나발은 조롱과 모욕으로 반응한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삼상 25:10-11). 즉,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윗아, 너는 무익한 무법자요 왕을 거역하는 자니라. 그리고 나는 내 빵과 물과 고기를 그런 자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모욕을 들은 다윗은 나니아의 마지막 왕처럼 반응한다. “각기 칼을 차매!"(사무엘상 25:13). 분노한 그와 그의 부하들은 즉시 모욕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나발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삼상 25:22). 티리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우리는 분노의 충동적인 열정, 곧 엄청난 유혈과 유혈죄로 이어질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티리안과 달리 여기에는 점검의 과정이 있었다.


어떻게 분노에 호소할 것인가


그 점검은 다름 아니라 나발의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아내인 아비가일로부터 왔다. 나발의 모욕과 더불어 조만간 그들의 집에 재앙이 닥친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즉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위해 풍성한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한다. 그녀는 예물을 가지고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은혜를 간구한다. 


그녀는 책임을 진다. 남편의 어리석음을 증언한다. 그리고 다윗에게 선물을 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두 가지 근본적인 호소를 한다는 점이다. 첫째, 그녀는 다윗에게 무죄한 자의 피 흘림과 자기 손으로 구원하는 일을 삼가라고 촉구한다(삼상 25:26).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이 앞으로 자신의 손으로 유혈죄를 짓거나 자신을 구원하려고 할 때 만날 슬픔과 양심의 고통을 피할 것이라고 한다(삼상 25:31). 둘째, 그녀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싸우실 것이며, 다윗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삼상 25:29)라며 다윗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호소는 왕의 경솔함에 제재를 가한다. 적절한 점검은 분노뿐 아니라 분노로 인한 복수까지도 막는다. 충동적인 분노가 주는 열정마저도 길들일 수 있게 한다. 다윗은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삼상 25:34) 아비가일의 분별력과 용기를 축복한다. 그리고 그녀를 자기에게 보내셔서 다윗의 손이 아비가일과 그 남편의 집에 해를 끼치는 큰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은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다.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삼상 25:39). 다윗은 악을 행하는 일에서 스스로를 보호했을 뿐 아니라,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아내까지도 덤으로 얻었다.


분노에 대응하는 무기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화를 다스리는 데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영혼의 온도가 급작하게 올라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잠시 멈추고 나 자신뿐 아니라 서로를 상기시켜야 한다. 첫째, 불경건한 분노는 우리의 부상에 죄악을 더할 뿐이며, 둘째, 주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이 두 이야기 중 하나는 허구이고 하나는 성경 속 역사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 다 같은 경고를 보낸다. 육체의 정욕을 조심하라. 그들은 종종 당신의 영혼을 대적하여 전쟁을 한다(벧전 2:11).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엡 4:26). 성내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약 1:20). 대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라(벧전 4:19). 당신을 대신해서 싸우고 당신의 이름을 지키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렇다고 이런 태도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서 물매돌을 들었을 때, 여호와는 다윗과 함께 싸웠다. 반면 나발과 관련한 구원 이야기는 다윗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결코 반응적이거나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고 반대로 의도적이고 사려 깊게 행동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주님의 보살핌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고, 동시에 항상 진정한 아슬란의 강력한 두 발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원제: Beware the Anger of Your Soul: How to Restrain Ungodly Passion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억제되지 않은 성급한 분노가 큰 어리석음과 악과 유혈로 이어진다면 무엇이 과연 그러한 열정을 억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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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e Rigney

조 리그니는 Bethlehem College & Seminary 의 학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전투 이상: 정욕에서 벗어나 어떻게 승리와 자유 그리고 치료를 경험하는가(More Than a Battle: How to Experience Victory, Freedom, and Healing from Lust)’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