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과 이스라엘 이야기
by Thomas Schreiner2018-11-23

성경의 내용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누구나 인지하는 바이며, 실제로도 그러하다.  또한 성경은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완성이라는 흐름의 특징을 갖는다. 이 이야기는 창조로부터 새 창조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회심은 어느 부분에 들어갈까? 그것은 구속 부분에 속한다.

 

분명, 회심이 성경 이야기의 핵심 주제인 건 아니다. 성경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대목은 회심이 지향하는 ‘목적’ 부분에서 나타난다. 이 목적은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말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장차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이며, 거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며 그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계 22:4).

 

동시에, 회심은 성경 이야기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심하지 않고는 새 창조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마주하게 되는 매우 분명한 결론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흑암의 지배로부터 건져 내신 하나님을 천국에서 영원히 찬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 사역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올리는 찬양의 주제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경 줄거리의 방대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왜 회심이 그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지를 여기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회심과 이스라엘 이야기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상 아담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대신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지어졌다(창 1:26-28).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그분의 대리 통치자여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신뢰하며 순종함으로써 그의 통치권 아래에서 만물을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했으며, 창조주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지 않고 피조물인 자신들을 숭배했다. 그 불순종의 결과로 아담과 하와는 죽게 되었다(창 2:17). 그들은 죄를 짓는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회개하지 않는 한 ‘영원한’ 죽음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죄를 범한 이후, 아담과 하와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은 회심이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상태일 때,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거나 그분의 축복을 세상에 확산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과 뱀의 후손을 이기리라고 약속하셨다(창 3:15). 초기 인류 역사는 인간들의 철저한 죄악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아들과 딸로서(롬 5:12-19), 그리고 뱀의 후손으로서(마 13:37-38; 요 8:44; 요일 5:19) 세상에 들어온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들만이 사탄의 지배로부터 구원받는다. 예컨대, 가인은 의로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었다(창 4:1-16).


악의 힘이 얼마나 강했을까? 노아 당시의 세상에는 여덟 명의 의인들만 남았다! 인류는 철저히 악했고, 창세기 6장 5절은 죄가 만연한 상태를 증언한다. 뱀의 후손이 땅을 지배했지만, 하나님이 홍수로 죄인들을 멸함으로써 당신의 거룩하심과 통치권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창 8:21). 바벨탑 사건은 새 창조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창 11:1-9). 세상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았다. 즉, 새 창조는 새 마음 없이는 도래할 수 없었다.


바벨에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심판 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다(창 12:1-3). 악한 세상에서 다시 한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 사람은 복을 약속 받았다. 다시 말해, 가나안을 새로운 에덴으로 만드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아브라함은 아담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후손이 될 것이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 결과적으로 온 세상으로 확산될 계획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행하도록 부르심 받은 대로,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세상을 다스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약속들은 거의 2천 년이 지나도록 성취되지 않았다. 창세기는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약속되었던 그들의 후손에 초점을 맞춘다. 이 족장들은 가나안 땅을 물려받지 못했으며, 온 세상에 확산되는 축복을 보지도 못했다.


출애굽기로부터 신명기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애굽 종살이로부터 이스라엘이 해방된 사실을 회고한다(출 1:15). 이제 하나님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스라엘의 후손을 향한 약속을 성취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일종의 새 에덴인 가나안 땅으로 이끄셨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실행될 계획이었고, 만민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백성의 의와 평안과 형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굽을 떠났던 세대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14:20-38). 그들은 애굽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표적 및 기사들을 본 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길 거부했다. 애굽으로부터 구출된 이스라엘 백성 중의 대부분은 완고하고 반역적이었며,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고전 10:1-12; 히 3:7-4:11). 그들에게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할례, 즉 회심이 필요했다(신 30:6).


광야 세대 이후에 일어난 후손들은 예전 세대가 실패한 일에 성공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신뢰하고 순종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수 21:45; 23:14).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의 새 에덴에서 살며 여호와의 통치 아래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삶을 보여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과 속 벌레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의 순종이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사기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만민에게 복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이방 민족들을 모방하고 이교적인 삶의 방식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이 회개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죄악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했나?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진 이후로 거의 1000년이 지났다. 엄청 늘어난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살았지만, 전 세계적인 축복에 대한 약속은 실현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처럼 왕을 원했고, 그들이 세울 왕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삼상 8:5). 사울이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아브라함처럼 또 한 명의 새 아담이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임명되었다. 그러나 사울은 아담이 그러했듯이 여호와께 반역함으로써 왕의 자리에서 추방되었다(삼상 13:13; 15:22-23).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는 사울의 통치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후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셨고, 그는 사울과는 달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라를 다스렸다(삼상 13:14). 하지만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 살해 사건은 다윗이 하나님의 축복을 온 세계에 임하게 할 대행자가 아님을 드러냈다(삼하 11장).


솔로몬이 즉위했을 때에는 새 창조의 낙원이 곧 눈앞에 닥친 것처럼 보였다(왕상 2:13-46). 그는 평화 중심의 통치를 했으며, 여호와를 위해 장엄한 성전을 지었다(왕하 3-10). 솔로몬이 이처럼 처음에는 지혜롭게,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여호와를 멀리하고 우상숭배를 행하였다(왕상 11장).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두 왕국으로 분열되었고(왕상 12장), 오랫동안 죄악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그리고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다(왕하 17:6-23; 24:10-25:26). 아브라함의 소명 이후로 약 1500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과 후손 및 축복에 대한 약속들은 성취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가나안 땅이 아닌 유배지에 머물렀고, 그들은 온 세계를 복 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채, 세상 나라들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을까? 무엇이 문제였는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거듭 가르친다(사 42:24-25; 50:1; 58:1; 59:2, 12; 64:5).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서에서 새 출애굽과 새 창조를 약속하신다. 하지만 새 출애굽과 새 창조는 오직 죄 사함의 역사 안에서만 이루어 질 계획이었고(사 43:25; 44:22), 또한 이 용서는 여호와의 종의 죽음을 통해 현실화될 예정이었다(사 52:13-53:12).

 

예레미야도 같은 진리를 가르쳤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할례 받은 마음이었다(렘 4:4; 9:25). 달리 말해서, 그들에게는 거듭남과 회심이 필요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마음에 자신의 법을 기록하여 그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할 새 언약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31:31-34).


이와 동일하게, 에스겔도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죄를 정결케 하시며, 그들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그 날을 내다보았다(겔 36:25-27). 그들의 변화된 마음은 성령의 사역에 따른 결과일 것이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을 걷고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주전 536년에 포로로 살던 땅으로부터 돌아왔지만, 선지서들에 나오는 위대한 약속들이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말라기 시대에도 고투를 벌였고, 약속된 성령의 사역이 아직 전개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왕을 기다리고 있었고, 새 창조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심 없이는 이스라엘이나 세상을 향한 축복도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죄 사함과 할례 받은 마음 없이는 새 창조와 새 출애굽도 누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이스라엘의 죄와 반역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와의 뜻을 거듭 불순종하고 거역한 일들로 점철된다. 이스라엘에게는 죄 사함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이사야는 고난 받을 종을 예언함으로써 그러한 죄 사함이 실현될 것임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 즉 회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회심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 곧 성경 이야기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세상에 약속된 복은 그들의 회심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Conversion and the Story of Israel

번역: 김태곤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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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homas Schreiner

토마스 스크리너는 켄터기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부학장이며, 성경 해석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