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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J. I. 패커를 읽어야 하는가
by Kevin J. Vanhoozer2021-11-06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해석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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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나는 J. I. 패커(J. I. Packer)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이미 복음주의 신학을 대변하는 원로(senior statesman)였고, 사실은 꽤나 한참 전부터 그렇게 인식되던 참이었다. 1973년에 출간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그 책은 또한 내가 나중에 아내가 된 여자에게 선물했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두 번째 책이었다). 그 책을 선물한 내 판단은 아주 적절했다. 패커의 경우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머릿속에서 구성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일치한,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사실 그의 경우 실제 모습이 작품을 능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커는 캠브리지 대학 내 복음주의적 성경학자를 위한 연구 센터인 틴데일 하우스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 왔다. 패커는 모든 면에서 확실한 옥스포드 사람이었기 때문에, 캠브리지에 왔다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포함한 모든 학위를 취득했으며, 옥스포드의 틴데일 하우스에 해당하는 라티머 하우스에서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나중에 옥스퍼드에서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옮겼고, 결국에는 밴쿠버의 리젠트 칼리지에서 공식 은퇴 후 오랜 시간이 지난 1979년부터 2016년까지 신학을 가르쳤다.


패커의 틴데일 하우스 연설 주제는 성경적 권위와 해석학이었다. 그 주제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는데, 내가 애초에 캠브리지에 온 이유가 다름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성경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또는 최소한 모든 교파가 자신이 보기에 옳은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다원적 해석의 도전을 피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란 결코 있을 수 없음을, 나는 당시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패커 또한 이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했고, 그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J. I. 패커


반세기 동안 J. I. 패커의 이 고전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는 경이로움, 영광,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왔습니다.


패커의 심오한 신학적 지식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기독교 신앙의 두 가지 핵심 측면, 즉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결합합니다. 매력적이고 실용적인 어조로 쓰여진, 읽는 이의 사고를 자극하는 이 놀라운 작품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하고 풍부하게 만듭니다. 


크리스챠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 복음주의자를 형성한 최고의 책 50권 중 하나로 선정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제 IVP 시그니처 컬렉션에 이름을 올린 상징적인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한 성경 구절을 스스로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동반 성경 연구(. A new companion Bible study)’도 함께 구입할 수 있습니다. 

IVP

패커는 불트만(Bultmann), 하이데거(Heidegger), 푹스(Fuchs) 및 가마머(Gadamer)와 같은 20세기 해석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을 거론했고, 또한 성경 해석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평가했다. 그런 다음, 그는 복음주의 해석학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깨닫게 하시는 자(illuminator)와 해석자로서의 성령 사역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강의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당시 성경해석의 가장 최신 도전이었던 해체(deconstruction)에 대해 물었다. 패커는 그 주제에 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내 창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것은 당신과 당신 세대가 처리해야 할 일”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는 그때 그가 지휘봉을 넘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가 했던 양도는 교회가 항상 해오던 방식,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전달하는 그 방식을 상징했다. 그것은 또한 내 논문의 최종 형태와 소명, 그리고 후속 작업의 많은 부분에 구성적 영향을 미쳤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해석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한 책이다. 패커는 그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을 알아서 얻는 유익. 따라서 나도 같은 방식으로 이 글의 서론을 전개하려고 한다.(편집자 주: 이 글은 IVP 발간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시그니처 판에 실린 저자의 소개글(forword)에서 발췌한 것이다.) 왜 독자들이 패커를 알아야 하는가, 패커의 책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패커를 읽어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패커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패커는 자신을 무엇보다도 교리교사로, 즉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과 삶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묘사하기를 좋아했다. 교리교사가 꼭 학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의상 교리교사는 교회 신학자, 한 번에 한 명씩 제자를 키움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패커가 교리문답과 관련해서 남긴 족적은 적지 않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성공회 교리문답(To Be Christian: An Anglican Catechism, 2020)’ 뿐 아니라 북미 성공회 프로젝트에서 신학 편집자로 봉사했으며, 그 당시를 패커는 “패커의 마지막 십자군”이라고 냉소적으로 언급했다.


패커가 다른 곳에서 지적했듯, 기독교가 누구에게나 다 본능적으로 다가가는 건 아니다. 기독교는 누구나 다니는 거리에서가 아니라 예배당(pew)에서 배울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내용, 즉 사도 바울이 “아름다운 것”(딤후 1:14)이라고 부른 것, 건전한 교리와 일치하는 것, 또는 패커가 “위대한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기독교 교리서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친다. 교리와 제자도는 같은 장갑을 끼는 형제이다. 교리가 없는 행동은 맹목이고, 행동이 없는 교리는 죽은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한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사람은 대신 가르친다.”라는 옛 격언은 패커에게 적합하지 않다. 패커는 기독교를 아주 잘했다. 나는 그점에 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잘한 것은 기독교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잘 하도록, 그러니까 좋은 기독교인이 되도록 도운 것이 바로 가르침을 통해서였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의 요점은 결국 실제적인 문제이다.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가의 문제이다. 가르침에 대한 패커의 사랑은 단지 주제(복음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랑은 학생들을 향한 사랑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는 사랑에서부터까지 비롯되었다.


패커를 안다는 것은 존 스토트(John Stott),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칼 F.H. 헨리(Carl F. H. Henry), 버나드 램(Bernard Ramm), 해롤드 오켄가(Harold Ockenga) 등등,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기독교를 초월한 20세기 중반 기독교 구축 집단인 복음주의 “위대한 세대”의 스승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가 느낀 현대 사회 및 지적 위기에 현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시대를 향해 성경에 근거한 정통 신앙을 확언했다. 


마지막으로 패커를 안다는 것은 “신학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는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실재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고 간결한 말로 설명하고 전달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하는 지식’을 읽는 것은 패커의 실재가 아닌 하나님의 실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하다. 하지만 패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글 속에 담아냈다. 한 때 패커 스스로가 자신을 묘사했듯이, “패커라는 이름 그대로, 그 사람의 본질이 포장하는 일이다.” (역자 주: pack이 ‘포장하다’라는 동사이다. 패커가 하나님을 글로 잘 포장했다는 의미).


패커를 알게 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삼위일체 삼부작의 첫 작품으로 잘 알려져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은 후,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기(Growing in Christ)’와 ‘성령을 아는 지식(Keep the Spirit)’을 마저 읽는 것이 좋다. 세 권 다 신학을 가르치지만, 단순히 머리 속에서만 노는 데 그치지 않는 살아있는 신학을 가르친다. 패커 자신도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삶의 가르침(교리)”이라고 정의한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와 같은 영국 청교도 선조의 발자취를 따랐다. 


패커를 알기 위해서 독자는 청교도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이해해야 한다. 청교도와의 사랑은 옥스포드 대학의 먼지 투성이 지하실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패커는 청교도의 대표자(Puritan divine)인 존 오웬(John Owen, 1616-83)의 24권 저작 세트를 발견했다. 오래된 책을 펼치기 위해서 그는 페이지 사이를 칼로 잘라야했다. 페이지가 열렸을 때, 거기서 뿜어져 나온 것은 퀴퀴한 쉰내가 아니라 신선한 공기였다. 오웬의 책은 삶에 대한 한 기독교인의 진지하고 현실적인 설명이었다. 또한 내재된 죄의 실체에 관한 인정 뿐 아니라, 그 죄를 다루는 실질적인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로마 가톨릭 역사가는 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를 20세기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본다. 그 공의회의 목적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개조하는 것이었으며, 그 방법은 과거의 “발굴(retrieving)”이었다. 즉, 교회의 초기 세기부터 시작된 교부 신학자의 저술을 다시 발간하는 것이었다. 교회 역사의 연대기라는 차원에서 볼 때 패커의 존 오웬 발굴이 그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패커를 아는 것은 한편으로 그가 찾아낸 청교도 신학자의 저술의 가치를 아는 것이기도 하다. 


패커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청교도 연구 회의(Puritan Studies Conference)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부터 그가 가진 생각은 골동품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현대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청교도 작품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 청교도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종종 사람들이 비난하는 “청교도적 도덕” 자체에 패커는 별 관심이 없다. 청교교는 편협하고 신중한 반대론자라는 낡고 고정된 관념은 더 영광스럽고 흥미진진한 실제의 풍자화일 뿐이다. 패커가 청교도 글에 매료된 것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력한 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교도 중에는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영적인 사상가가 적지 않다. 청교도는 교리와 헌신을 동등하게 평가했다.


패커를 안다는 것은, 모든 신학이 영성이라는 청교도의 확신을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적 경험을 중시하는 현대 복음주의자는 경건의 훈련, 즉 경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을 형성해야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한 17세기 청교도에게서 배워야한다. 영적 성장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청교도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패커의 지론이었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영적 변화에 대해 진지하지 않다면, 패커를 읽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마음 속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그 지식은 살아 있으며 활동적이며 개인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패커를 “최후의 청교도”라고, 나름 적절하게 불렀던 교회 역사가가 옳았을 수도 있지만, 굳이 패커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을 찾자면, 최후의 청교도인 동시에 새로운 세대, 그러니까 21세기  최초의 청교도가 더 적절하다. 결국, 패커가 청교도를 발굴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패커를 아는 유익


패커는 한때 신학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마음과 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요점은 주님의 제자라면 모든 일이 다 주를 향한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바로 교리라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패커의 모든 작업의 동기는 오로지 하나,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에 지금 살아있기 때문이다. 


패커는 아마도 복음주의 신학자의 “가장 위대한 세대”의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 그는 구십 대에 들어서까지 계속 가르쳤고,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에도 여전히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을 전달할 방법을 찾았다. 그의 마지막 책은 인생을 보다 더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명한 지침을 제공한다. ‘기쁨으로 이 과정을 마치는 것: 잘 늙기 위한 하나님의 안내(Finishing Our Course with Joy: Guidance from God for Engaging with Our Aging, 2014).


패커의 책을 읽는 것은 그와 다른 순례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거치는 다양한 단계를 통해 이룬 발전 지점에 표시한 이정표를 방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패커를 알게 될 때 누리는 큰 유익이다. 패커처럼 되자는 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자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욱 닮도록 영감을 받자는 것이다. 모든 순례자는 힘들 때 의지할 조언(words)이 필요하다. 패커를 알아서 누리는 유익은 순례길을 함께 하는 현명하고 경건한 좋은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다. 


패커는 자신의 생각을 “화목을 통한 입양”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했다. 이것이야말로 패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적 훈련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사랑하는 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패커가 말 그대로, 땅을 뒤흔드는 이 지식, 즉 옛 세상이 지나가고 있다는(고후 5:17, 요일 2:17, 계 21:1) 그 지식에서 회복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님은 지금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입양에 관한 장은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됨에 따라 당신이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또는 딸로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읽기 시작하라. 창문을 열고, 날아갈 준비를 하라.




원제: Why You Should Read J. I. Packer: Review: ‘Knowing God’ by J. I. Packer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교리와 제자도는 같은 장갑을 끼는 형제이다. 교리가 없는 행동은 맹목이고, 행동이 없는 교리는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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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evin J. Vanhoozer

케빈 J. 반후저는 일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조직신학 연구교수이며, 신학, 해석학, 문화에 대한 책을 다수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