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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우기

기독교의 첫 8세기에 관한 여덟 가지 이야기
by Donald Fairbairn2021-10-20

첫 번째 천 년 동안 유럽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더 많은 기독교인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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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 관심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인이 가장 잘 아는 분야는 아마도 종교개혁이고, 또 동시에 자신이 속한 교단의 역사 정도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이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역사에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다음은 아마도 당신이 몰랐을 기독교 교회의 첫 8세기에 관한 여덟 가지 중요한 사항이다. 


1. 초기 기독교를 단지 로마에 해당하는 현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이 로마 제국 내에 살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거의 처음부터 로마 제국 외부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은 당신이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1세기는 아니었지만 2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복음은 오늘날의 터키 동부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의 가장자리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늦어도 4세기에 이르러 인도에 확실하게 도달했는데, 어쩌면 1세기 또는 2세기에 이미 닿았을 수도 있다. 4세기에 들어서는 복음이 로마제국을 넘어 아프리카(지금의 에티오피아)에까지 이르렀고,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으로, 멀리는 아일랜드까지 로마제국 바깥에까지 뻗어나갔다. 첫 번째 천 년 동안 유럽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더 많은 기독교인이 살았다.


2. 초대교회가 로마인에게 박해를 받아 카타콤에서 은밀히 예배를 드렸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처음 3세기 동안은 매우 산발적이었고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당신이 몰랐을 사실은 기독교 초기에 기독교인에 대한 최악의 박해는 로마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처음 3세기 동안 로마인은 기독교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도리어 페르시아인이 기독교인을 용인했다. (고대 산스크리트 속담 중에 “내 적의 적은 내 친구”가 있다) 그러나 4세기 초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페르시아인은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로마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페르시아의 박해는 339년부터 370년까지 일어났으며, 상대적으로 기독교인은 그 기간 내내 로마 제국 내에서 우호적인 지위를 얻었다.


3. 4세기 초 로마제국의 개종이 기독교 역사에서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로마는 기독교로 개종한 4개 왕국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는 아르메니아, 조지아, 악숨(오늘날의 에티오피아 북부와 예멘)이었다. 사실, 현대 터키 동부의 작은 왕국인 오스로엔(Osrhoene)이 아르메니아보다 120년 앞선 2세기 후반에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스로엔은 수세기 동안 중요한 기독교 중심지로 남아 있었지만 독립 왕국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데, 216년에 로마제국에 흡수되어 공식적으로 기독교 왕국으로 인정받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가 지금까지 기독교로 개종한 왕국 중 가장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유일한 왕국은 아니었다.


4.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리스어로 완성된 니케아 신경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 내 모든 교회의 표준 신경이 되었다. 그러나 410년에 페르시아 내 교회와 그 이후에 조지아, 악숨, 아르메니아, 그리고 멀리 인도에 있는 교회까지도 이 신경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니케아 신경은 전체 기독교 교회에서 받아들이는 유일한 성서 이후의 저작물이다. (이와 반대로, 사도신경은 교회 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적이 없다. 단지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구 교회에서만 전통으로 존중받을 뿐이다.)


5. 사람들이 고유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권리를 옹호한 14세기 영국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알 것이다. 물론, 위클리프 성경 번역(Wycliffe Bible Translators)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성경 번역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위클리프는 사실상 천 년이나 늦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와 서부 아시아에서는 초기 기독교 세기에 이미 방대한 수준의 성경 번역이 있었다. 5세기 경에 성경은 시리아어(서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언어, 예수가 사용했던 아람어와 유사)로, 아프리카 방언인 콥트어(이집트에서 사용됨) 및 게츠어(에티오피아에서 사용됨)로, 그리고 아르메니아어와 그루지야어로 번역되었다. 사실, 4세기 말에 메스롭 마쉬토트(Mesrop Mashtots)라는 뛰어난 아르메니아 언어학자는 오로지 성경 번역을 목적으로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고안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고, 그는 나중에 그루지야어 알파벳 개발에도 참여했다. 얼마든지 위대한 현대 성서 번역 기관을 “메쉬토트 성경 번역(Mashtots Bible Translators)”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6. 당신은 아마도 6세기와 7세기에 북유럽의 많은 지역을 복음화한 아일랜드 수도사 콜롬바(Columba), 콜롬바누스(Columbanus), 그리고 보니파시오(Boniface)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에 페르시아 기독교 수도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실크로드 동쪽으로 여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600년까지 그들은 소그디아(오늘날의 구소련 중앙아시아 공화국) 전역에 기독교 센터를 세웠고, 635년에는 중국의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까지 도달했다.


7. 732년에 있었던 투르 전투(Battle of Tours)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프랑크족 전사들이 무슬림 군대를 물리치고, 그들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후퇴시켜 유럽의 기독교 문명을 이슬람으로부터 “구원”했다. 그러나 아마도 당신은 8세기 초에, 유럽을 “구한” 훨씬 더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소유물이었는데, 그것을 간절히 원한 아랍 무슬림은 80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절정은 717년에 시작된 해상 연합 공격이었지만, 일 년 이상의 전투 끝에 비잔틴 제국이 승리했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아랍 정복의 결정적인 전투가 751년 탈라스 전투(현대의 타지키스탄)라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이 전투에서 아랍인은 중국을 물리치고 지상 최강국이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정복에 성공한 아랍이었지만, 그들이 유럽 정복에는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세계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했다. 유럽은 대부분이 살아남았고, 그제서야 유럽이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8. 전체 이슬람 기간 내내 중동 전역에 존재했던 소규모의 기독교 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그룹은 20세기와 21세기 역사상 가장 박해받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이 그룹의 조상이 한때 시리아, 페르시아 및 중앙 아시아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구였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아랍 국가에서 확실한 2등 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웃 무슬림들 사이에서 신앙을 증거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도를 대상으로 아랍어로 사과문을 썼고,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슬람 지도자와 공개 토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당시의 글은 오늘날 이슬람교도와 교류하는 우리에게 계몽적인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교훈이 기다린다


우리는 왜 이런 사실들을 몰랐을까? 비록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 많이 들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배운 대부분이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는 서방 교회와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현재의 기독교 주류와 연결되는 역사만을 배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기독교의 모든 역사가 아니며 초기 기독교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오늘날 가치 있고 매혹적인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주님은 개신교인인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른 때에 세계의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종족을 통해 일하셨다. 따라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초기 기독교인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의 일부이다. 


 


편집자 주: 

이 주제와 관련해서 보다 더 많은 내용을 접하려면, ‘글로벌 교회- 첫 8세기: 오순절에서 이슬람 시작까지(The Global Church—The First Eight Centuries: From Pentecost Through the Rise of Islam)’를 읽으라. 




원제: 8 Things You Didn’t Know About the First 8 Christian Centurie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성경 번역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위클리프는 사실상 천 년이나 늦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와 서부 아시아에서는 초기 기독교 세기에 이미 방대한 수준의 성경 번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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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onald Fairbairn

도널드 페어반(PhD, The University of Cambridge)은 고든콘웰 신학교의 초대 교회사 교수이다. 그는 프랑스,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선교사로 섬겼고 유럽 전역에서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