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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감독자가 제대로 보고 행동해야하는 이유
by Joe Rigney2021-10-05

감독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즉시 조치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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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장로, 감독(overseer).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직책을 표현하는 세 가지 용어이다. 현대 기독교인이 교회 지도자를 언급할 때, 첫 번째 단어인 목사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두 번째로 장로를 쓰지만, 세 번째 감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직책과 업무를 이해하는 데 이 세 가지 용어는 모두가 도움을 준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딤전 3:1). 선한 일을 사모하는 감독의 직분은 무엇인가? 사도 베드로는 첫 번째 편지의 끝부분에서 한 가지 대답을 준다. 그곳에서 그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벧전 5:2)라고 명령한다. 따라서 교회의 장로는 하나님의 양 떼를 감독하며 목양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목양의 맥락에서 감독의 의미를 풀 때 모든 장로를 부르신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보는 것, 거기에 더한 책임


그럼 목양은 무슨 의미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실제 목자와 양의 사례를 든다. 


목자는 양을 돌본다. 목자는 양 떼를 이끌고 또 양 떼를 먹인다. 목자는 양 떼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곰과 이리와 우는 사자로부터 지키고 보호한다. 그들은 양의 건강과 안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병들 것 같은 양을 위해서는 먹이를 살피고, 진짜로 병에 걸리면 약으로 치료한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해낸다. 공격하는 사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양 떼를 지킨다. 


베드로가 추가한 “감독을 행사하는 것(한글 성경에서는 ‘양무리를 친다’로 번역)”을 고려하면 의미는 더 명확해진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냥 보는 것(sight)과 감독(oversight)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감독에는 당연히 보는 것이 포함된다. 명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감독할 수 없다. 그러나 감독은 단지 보는 것 이상이다. 감독은 거기에 책임까지 더한 것이다. 감독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즉시 조치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은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제대로 보고 “조치해야 한다.”


보는 것에 실패


장로가 실패할 수 있는 영역을 생각할 때 그들의 사역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감독이 보는 것과 그에 따라 행동하는 책임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이 사실에서 목회자가 실패할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영역을 본다. 


첫 번째, 제대로 보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다. 그들은 언제 무리에게 질병이 퍼졌는지 알지 못했다. 늑대 무리가 언덕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고, 양가죽을 입은 늑대에게 속았으며, 진짜 양을 늑대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물이 오염된 사실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패한 목양을 의미한다.


교회 상황으로 보면 장로가 그들의 양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지는 거짓 가르침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특히나 기만적인 가르침이 남성 사역, 여성 사역, 아동 청소년 사역, 상담 사역과 같은 하위 그룹을 통해 전체 커뮤니티로 퍼져갈 수 있다. 


또한 장로가 교인들 사이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파괴적인 행동 패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험담과 중상모략, 믿음 없는 의심, 독선적인 리더십이나 수동적인 리더십 또는 헌신자를 비난하거나 헌신자를 이용하는 것 등 잘못된 믿음과 파괴적인 행동 패턴이 교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을 제때 보지 못한다면 장로는 감독하지 않은 것이다. 


행동하는 데 실패


두 번째, 장로가 알면서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 퍼지고 있는 질병을 보지만 제대로 약을 바르지 않는다. 늑대를 보지만 도리어 두려움에 움츠린다. 오염된 물을 보고도 양 떼를 다른 목초지로 옮기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보살피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교회 상황으로 보면 장로가 거짓 가르침을 진리로 무장하여 대적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오류를 수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참으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는 그와 반대로, 그런 오류가 특정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신학적 갈등만 더 확대할 수도 있다. 그들은 사소한 문제를 너무 자주 일으킬 수도 있고(또는 진짜 중요한 문제를 사소하게 처리할 수도 있고), 조바심이나 게으름으로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파괴적인 행동 패턴에 직면했을 때 장로가 냉정하고 명료한 판단과 진실한 사랑으로 무장하지 못해서 제대로 말을 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들은 교인이 “교회를 떠남으로 의사를 표시(vote with their feet)”하고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이 두려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루는 것을 회피할 수도 있다. 전혀 평화롭지 않은데도 “평화, 평화”라고 포장하고 싶은 충동에 굴복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만날 때 장로는 분명한 위험을 알기에 그들 앞에 놓인 문제를 현명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용기가 부족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감독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치명적인 유혹


아주 교묘하고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목회자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목회자는 분명히 보고 있고, 눈에 보이는 현상과 관련해 용기와 연민으로 행동할 준비까지도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양 떼의 특정한 필요, 염려, 문제, 위험, 유혹 등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눈은 위험을 멀리 그리고 넓게는 볼 수 있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베드로의 부름은 구체적이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양 떼를 치는 것”이 아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치라”는 것이다. 목회자는 자기 교인을 돌보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남의 교인이 아니다. 다른 목자의 양이 아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맡은 자들을 감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인스턴트 뉴스와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는 이런 사실의 중요성을 놓치기 아주 쉽다. 목회자가 저쪽에 있는, 도시 반대쪽이나 나라 반대편에 있는 양 떼의 건강을 놓고 걱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정작 자기 양 떼가 처한 위험은 무시하고 저 멀리 다른 양 떼의 위험을 지적하는 것이 사랑이 많은 목자, 더 목자다운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자기 교회에는 홍수가 났는데 다른 동네나 다른 교단에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는 모습, 온라인에서 차고 넘치는 화재를 진압하겠다며 양손에 소화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목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지혜롭고 신실한 목자는 그들 가운데 있는 양 떼의 필요와 염려, 그들이 처한 문제와 위험 그리고 유혹과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인다. 


더 많은 눈과 더 많은 손


보지 못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위험에 직면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큰 도움을 주셨다. 첫 번째는 다수의 장로이다.


지역 교회 장로에 관한 신약의 모든 언급에서처럼 베드로는 장로를 복수로 말한다. 장로가 여러 명일 때 더 많이 보고 더 잘할 수 있다. 한 명의 양치기가 360도 시야를 확보할 수는 없다. 한 명의 양치기는 거시적 위협과 미시적 위험에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지만, 양치기 팀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목자는 수평선을 동쪽으로 훑어볼 수 있고 또 다른 목자는 지평선을 서쪽으로 훑어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멀리 떨어진 위협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늑대 무리가 계곡에 정착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목초지의 상태와 개별 양의 건강 문제가 소홀히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장로가 한 사람이 아니라 다수가 되어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함께 치면 혼자 보고 행동할 때보다 더 많이 보고 더 큰 지혜와 명철로 행동할 수 있다.


감독자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두 번째 도움은 기도이다. 감독을 행사하라는 부름과 잠재적인 두 가지 실패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좋은 방법을 제공한다. 


하나는 목회자가 교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분명히 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즉 그들이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현실에 주목해서 자신이 담당한 교인들의 필요와 위험 그리고 그들의 상황과 유혹까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전국의 많은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우리 교회는 홍수가 났다면 우리가 원하는 목사는 소방관과 소방 호스가 아니라 모래주머니와 구명 뗏목을 들고 오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목회자가 양 떼 속에서 봐야 할 것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와 행동할 용기와 동정심을 갖고 말씀을 통해서 양들에게 최선의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보아야 할 것을 본 목회자는 이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가? 누가 그것을 말해야 하는가? 언제, 얼마나 자주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로서 감독을 잘 하려면 마음과 배짱(nerve), 용기와 연민, 복수의 동역자(plurality)와 책임 그리고 가르침과 기도가 필요하다.




원제: Overseers of Souls: Why Elders Must See and Act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목회자는 자기 교인을 돌보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남의 교인이 아니다. 다른 목자의 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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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e Rigney

조 리그니는 Bethlehem College & Seminary 의 학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전투 이상: 정욕에서 벗어나 어떻게 승리와 자유 그리고 치료를 경험하는가(More Than a Battle: How to Experience Victory, Freedom, and Healing from Lust)’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