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아니라 문화를 해체하라
by Hunter Beaumont2021-05-18

복음주의 문화로부터 복음을 분리하는 탈문화화를 배운 것은 나의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내가 복음을 더욱 더 사랑하도록 해주었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해체 여정을 보내고 있는 많은 내 친구들과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잃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 없는 상황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자라온 믿음을 이해하고, 진부하고 숨막히는 것들을 버리고 싶어할 뿐이다. 그들은 실제로 믿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강한 믿음을 원하며 예수님을 오히려 더 원한다.


이것이 당신의 이야기라면,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찾고 있는 것은 해체가 아니라 바로 탈문화화(Disencultruation)라는 것이다.


탈문화화는 복음을 문화와 구별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사역의 과정에서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이동한 선교사들은 복음이 마치 겉껍질(문화)에 의해 보호되는 알맹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사역은 복음이라는 알맹이가 오래된 껍질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문화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역사는 초대 교회가 이방 문화를 접했을 때 유대교로부터 복음을 구별해야만 했던 사도행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복음주의 하위문화로부터 복음을 구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학창시절에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나는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고등학교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준 복음과 사랑에 빠졌지만, 이러한 복음주의 세계 안에는 복음에 포함되지 않은 문화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복음주의 문화로부터 복음을 분리하는 탈문화화를 배운 것은 나의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내가 복음을 더욱 더 사랑하도록 해주었다.


당신이 해체의 여정 대신에 탈문화화의 여정을 떠나고 싶다면, 여기에 그 방법들이 있다.


1. 문화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라


물속의 물고기가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가 속한 세상을 설명하는 문화, 언어 및 이야기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는 관습을 만들어 멋진 삶을 살게 하고 외부인의 질문을 차단하는 방어 체계를 세운다. 문화는 그들의 이상을 잘 따르는 인물들을 치켜 세운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 문화는 은밀히 행동한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한다. 문화는 스스로를 ‘그냥 그런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문화란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의 신앙 경험에 있어서도 항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첫 번째 단계는 문화와 그 힘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복음주의 하위문화 속에서 자란 내 친구들은 기독교를 떠날 때까지 기독교를 의심하지 않았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 하위문화는 그들의 믿음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이 하위문화는 또한 그들이 새로 발견한 질문을 하게 했다. 많은 이들이 의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오랫동안 타당하게 여겨졌던 구조를 대체하는 문화적 변화다. 많은 이들이 ‘개인 신앙의 해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개인이 위치하는 문화가 바뀐 것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의 힘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된다. 즉 문화 속에서 기독교를 학습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새로운 문화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단계는 이 새로운 문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의 긴장은 기독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 변화로 인한 것이다.


2. 올바른 문제와 씨름하라


의심은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 탈문화화는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당신을 구할 수 없지만, 당신이 바른 상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문화적 껍데기와 복음의 알맹이를 구별함으로써 “알맹이 문제와 씨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심판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성에 대해 배웠으나, 생각이 깊은 비기독교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내게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심판 교리는 갑자기 그들을 나빠 보이게 했다.


이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씨름하고 있던 것 중의 일부는 성경적인 것이었고 일부는 단지 문화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약 성경은 주님께서 세우신 자를 통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행 14:17; 롬 2:5–16). 예수님은 ‘불의 지옥’, ‘울며 이를 가는 것’, 그리고 ‘밖의 어둠’과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시며 그분의 나라 밖에 거하는 상태를 묘사하셨다(마 5:22; 8:22; 22:13). 이러한 식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혐오감 중 일부는 복음주의 하위 문화 안에서 심판을 가르치는 방식 때문이었다. 강압적인 설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는 지옥 탈출에 더 중점을 두었다. 죄는 기괴하게 설명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설교자는 그것을 경멸의 어조로 뿜어냈다.


몇 년간 나는 내 머릿속에서 설교자들의 목소리(껍데기)를 거부하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알맹이)을 다시 배우려고 노력했다. 나는 또한 과거의 설교자들처럼 전달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을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는 선생님들을 찾아보았다. 점차 이것은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심판이라는 것이 내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정의로운 세상을 내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복음주의 하위 문화 외부에서 내 질문과 관심을 다루는 방식으로 이 교리를 다시 배웠기 때문이다.


3. 복음과 문화를 관련시키는 교회를 찾으라


탈문화화는 우리에게 복음을 문화와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지만, 이것이 문화 없이 복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문화로부터 복음을 자유케 한다는 핵심 요지는 결국 다른 문화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와 상관없는 기독교 신화(unicorn)를 발견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현재 당신이 속한 문화에서 당신의 믿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교회는 특정 문화에서 복음을 구현한다. 당신이 문화를 학습하는 순간, 각 교회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최고의 방법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교회는 복음이 교회 내부의 문화를 형성하도록 했다. 교회는 교회 밖의 문화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복음을 가르치며, 분명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주변 문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 구성원들을 제자화한다. 


이러한 교회들 가운데 하나를 찾아서 참석하라. 복음과 주변 문화를 사랑하는 교회는 기독교에 대한 난해한 질문들로 씨름하는 자들을 기쁘게 환영한다. 교회의 태도로 그것을 알 수 있고, 설교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으며, 리더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 새로운 복음을 기대하라


복음이 문화적 껍질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게 될 때 그것은 종종 신선하며 아름다운 방식으로 빛나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 중의 하나는 유명한 매튜 챈들러(Matt Chandler) 목사의 설교다. 텍사스에 있는 교회의 목사인 챈들러는 다소 민망한 성적 금욕에 대한 주제를 다룬, 1990년대 청소년 사역 행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 행사에서 한 설교자는 장미 하나를 청중에게 주어서 그것이 훼손되어 돌아올 때까지 서로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주변에 여러 사람과 잠자리를 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비유한 것이었습니다. 그 설교자는 조롱하는 말투로 “자 누가 이런 장미를 원할까요?”라고 질문했죠.” 챈들러 목사는 이어서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한다. “예수님이 바로 이 장미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메시지가 왜 그렇게 강력한 것일까? 챈들러 목사의 청중들 가운데 수많은 사람은 복음주의 순결 운동이 왕성하던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시대에 그 운동으로 성경적 성 윤리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려움, 압박, 수치심, 의지력에 의존한 환경 속에서 그것을 배웠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기독교 성 윤리는 부담스럽고 나쁜 소식처럼 들렸다. 더 심한 것은, 순결 문화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경향 때문에 성적으로 죄를 지은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챈들러 목사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자신의 하위 문화에서 벗어났다. 그는 혼외정사를 하고 있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챈들러는 그녀와 친구였고 어느 날 밤 그녀를 교회 행사에 초대했다. 그날 밤 설교가 성에 대한 것일지는 모른 채 말이다. 설교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그러한 메시지가 그의 친구를 수치스럽게 하고 그녀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챈들러의 설교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했다. 그러나 챈들러가 “예수님이 바로 그 장미를 원하십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는 순결 문화를 ‘무시’의 양동이에 넣어 버렸으며, 복음은 자유롭게 그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나는 당신도 탈문화화가 가진 동일한 이점을 사용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의 믿음을 해체하지 말고 그 대신 탈문화화 하라.




원제: Deconstruct Your Culture, Not Your Faith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진호

복음과 주변 문화를 사랑하는 교회는 기독교에 대한 난해한 질문들로 씨름하는 자들을 기쁘게 환영한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Hunter Beaumont

헌터 보몬트는 Fellowship Denver Church의 선임 목사로서 Denver Institute for Faith and Work와 Acts 29 U.S. West 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