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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갈보리 이후: 속죄일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사를 돋보이게 하는가
by Bobby Jamieson2021-04-05

레위기 16장은 죄가 우리에게 무거운 죄책감을 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까지도 더럽힌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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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와 청소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정리에 관심이 많은 반면, 내 아내는 청소를 더 중시한다. 신발을 선반에 놓고, 옷을 서랍에 넣고 또 책을 선반에 꽂는 것 등이 정리라면, 청소는 진공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묵은 때를 지우는 것 등을 의미한다. 내가 볼 때 정리가 눈에 바로 보이는 즉각적인 차이를 만든다면 청소는 좀 더 차원이 깊으면서도 긴 효과를 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년 ‘봄 청소’라는 의식을 치른다. 최소한 일년에 한 번은 집 전체를 샅샅이 뒤져가며 깨끗하게 치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속에 일 년에 한 번 백성들에게 집을 청소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 명령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걸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레위기 16장: 하나님의 백성과 장소를 깨끗하게 하는 것


레위기 16장은 익숙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종종 그 속에 담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이 장은 속죄일(히브리어로 욤 키푸르)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뿐 아니라 그 장막까지도 정결케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집에 왜 청소가 필요한 걸까? 


레위기 16장이라는 문서의 중심에,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규정하는 행동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상징하는(레 16:15-19) 성막의 가장 안쪽 방인 지성소로 가져온 속죄 제물이 있다. 그리고 이 날이 유일하게 사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사람은 오로지 대제사장뿐이었다(참조, 히 9:6-7). 대제사장은 속죄 제물인 염소를 죽이고 그 피를 그릇에 모으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앞에 그 피를 뿌린다(레 16:15).


그러면 이것은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렇게 하면 지성소 가장 안쪽 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에게 효과를 미친다.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레 16:16).


레위기 16장은 죄가 우리에게 무거운 죄책감을 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까지도 더럽힌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죄는 우리를 더럽게 만들고 또한 우리를 더러움의 전달자로 만든다. 성막을 통해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죄였다. 백성의 죄가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다. 죄는, 은혜를 통해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로 선택하신 하나님을 밀어내겠다는 위협이었다(출 29:45-46; 레 26:11-12).


따라서 해마다 행하는 신성한 의식인 하나님의 정결함은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속죄일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장소를 정결케했다. 우리는 레위기 16장 33절에서 이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다. “지성소를 속죄하며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사


그러나 죄의 문제는 레위기 16장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이스라엘의 죄는 결국 주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바와 같이 땅이 그들을 '토해 낼' 정도로 쌓였다(레 18:24-25).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는 주님을 그의 성소에서 멀리 몰아냈다(겔 8:6).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성소에서 떠났다(겔 10:1-22).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그들이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하셨지만, 근본적인 죄의 상태는 지속되었다.


그 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때까지 지속되었다. 히브리서가 말하듯이, 매년 속죄일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속죄일이 죄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지금도 메아리 치는 레위기 17장 11절과 히브리서 9장 22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그리고 셋째 날에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얻었다(히 7:16). 그런 다음 예수는 욤 키푸르 때 대제사장이 예표한 일을 행하셨다. 그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완전하고 충분한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아버지께 자신을 바쳤다. 레위기 16장에서 살펴본 내용에 비추어 이해할 때에만 다음 구절이 비로소 제대로 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4–26; 참조, 9:11–1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2, 28; 참조, 9:15; 13:20).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7–10; 7:11–28).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히 4:14; 7:26),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8:1–5; 9:11–14, 23–28; 10:10–14; 12:24).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거처를 깨끗하게 하는 것 외에도, 우리를 위해 드린 예수님의 하늘 제사는 우리에게 온전함(히 10:14)과 구속(히 9:12), 용서(히 10:18), 그리고 하나님께로의 무제한 접근(히 4:16; 10:19-20)을 가능케 하셨다.


가장 깊은 정결함


이런 식의 히브리서 읽기가 생소할 수도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예수님의 제사는 오로지 십자가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을 더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히브리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속죄일의 절정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히브리서는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히 9:7).


대제사장은 언제 어디서 제물을 바쳤는가? 하나님의 지상 성소에 들어갔을 때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어디서 제물을 바치셨는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간 후 하나님의 천상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죽음을 물리치고, 옛 언약의 저주를 지고도 새 언약을 시작하신 곳이기 때문에 레위기 16장은 결코 십자가를 경시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히 2:9, 14-15; 9:15–17; 13:20).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신 자신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보여주심으로 지상에서의 죽음이 이룬 것을 아버지께 똑똑하게 드러내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성취한 것을 하늘에서 하나님께 드렸다.


이런 청소는 우리가 매년 봄에 하는 청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청소다. 그리고 너무도 깊은 의미를 가지는 청소이기에 한 번만 하면 되지 다시 할 필요가 없다. 




원제: After Calvary: How the Day of Atonement Highlights Jesus’s Heavenly Offering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매년 속죄일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속죄일이 죄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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