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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능력주의 문화 내러티브에 도전하라
by 고상섭2021-02-25

설교자가 청중들이 신뢰하는 근거 자료를 통해 성경본문에서 얻은 가르침을 강화할 때 사람들은 더 설득력있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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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속 문화의 내러티브들을 평가하면서 동시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성경 주제와 교리와 진리들을 제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팀 켈러, 설교, 155쪽)


팀 켈러는 세속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설교를 할 때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복음으로 나아가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라 말하며 그 중심에는 문화 내러티브를 평가하고 도전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문화 내러티브란, 성경의 진리와는 배치되지만 일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공리를 말한다. 한번 더 생각하면, 모순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모순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청중들이 모순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문화 내러티브의 분석은 설교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문화 내러티브를 평가하고 도전하기 위해 팀 켈러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을 활용해 논지에 힘을 실으라”는 것이다. 설교자가 청중들이 신뢰하는 근거 자료를 통해 성경본문에서 얻은 가르침을 강화할 때 사람들은 더 설득력있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2021년 현대 사회를 이끄는 문화 내러티브는 어떤 것일까? 다양한 문화 내러티브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능력주의 사회’며, 그것의 한계를 다양한 책들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z) 교수의 ‘엘리트 세습’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오늘날 능력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 내러티브를 도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내용이 많다.


1. 능력주의 문화 내러티브의 평가와 도전


현대 이전의 시대는 세습의 시대였다. 재산을 세습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부정이 일어났고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불평등이 많이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능력’이라는 것이 동일하게 세습되고 있음을 두 책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양극화 현상을 낳았는데 교육과 직업과 정치 영역이다. 미국에서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사람들 중에 2/3는 소득 분포가 상위 5%의 가정 출신이다. 예전에는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자주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능력이 세습이 되는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신분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돈을 자녀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이제는 자녀에게 돈이 아니라 능력을 물려주는 엘리트 세습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극대화 될 것이다. 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세습된 능력으로 엘리트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은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교만이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 사건’도 능력주의의 또 다른 면이며, 엘리트들이 능력으로 많은 것을 독식하기 때문에 중산층이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더 두드러지는 사회현상을 낳게 된다.


이런 사회현상은 엘리트들에게는 무한 경쟁이 주는 압박으로 스스로 쉬지 못하는 올무가 되고, 또 중산층의 붕괴는 일반 서민들에게 엘리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준다. 바로 이로부터 사회적 갈등과 계층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정교육도 인격 함양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능력주의적인 입시와 취업용 교육으로 변하면서 자녀들이 인격이 아닌 능력주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이로 인해 바른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사회적 엘리트를 양산하는 사회가 되고 그 경향은 나날이 더욱 비인격적으로 강화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런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과 어려움에 대해서 ‘신 없는 섭리론’ 이라고 말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모든 성취를 은혜의 결과가 아닌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만연할수록 더욱 불평등이 가속된다고 말한다. ‘엘리트 세습’과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라는 오늘날 현대 문화 내러티브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지만, 그 대안은 명확하지 않다.


팀 켈러는 권위있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오늘날 문화 내러티브를 분석하기도 하지만 도전하기도 한다. 그 도전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잘못된 문화적 생각의 모순을 드러낸 후 복음이 능력주의 사회의 해답이 됨을 제시하는 것이다.


2. 능력주의 사회를 향한 복음적 대안


첫째. 행위가 아닌 은혜의 복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능력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착각은 ‘공정하다는 확신'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 은혜의 결과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것의 결과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만이 싹트고 다른 사람을 향한 멸시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게 되고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내어줄 수 있게 된다.


1-3세기 동안 초기 기독교는 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크게 성장했는데 그 원동력이 바로 ‘은혜로 인한 구원 교리’에 있었다고 신약학자 래리 허타도(Larry Weir Hurtado)는 분석한다. 다른 종교는 제사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지 않고 대신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더 많은 성취라는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존 오트버그(John Ortberg) 목사는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를 만났을 때,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나는 현재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그때 달라스 윌라드는 “당신의 삶의 급하고 바쁜 것을 가차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바쁨은 우리 시대 영적인 삶에서 가장 큰 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늘날 능력주의는 바쁘게 사는 것이 멋있는 삶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바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으로 치명적인 질병 중의 하나다. ‘미친 듯이 바쁜’의 저자 케빈 드영(Kevin DeYoung)도 영적으로 퇴보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은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라 말했다.


능력주의라는 문화 내러티브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라는 트랙 위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영원한 것이 아닌 영원하지 않은 가치에 쏟아 부어야 한다. ‘영끌’(영혼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이 시대의 능력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팀 켈러는 ‘일과 영성’에서 게으른 삶과 너무 바쁜 삶이라는 두 가지 오류를 벗어나는 균형있는 삶을 소개한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전 4:5~6)


전도서는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극단을 피하라고 말한다. 첫째는, 두 팔을 사용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우매자다.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의 피말리는 경쟁을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둘째는, 두 손 가득 일하면서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이다. 두 손 가득 일하며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왜 쉬지 못하고 두 손 가득 일하는지를 돌아보게 되면 결국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결핍 때문이다. 복음이 주는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성취와 일이라는 외부적인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손만 일하고 한 손은 쉬는 삶의 균형이다. 능력주의 사회를 벗어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크리스천인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그러나 능력주의 사회에서 엘리트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속에 직장과 가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복음이며, 은혜로 얻은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행해야 하는 많은 노력을 행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건강하고 균형있는 열심을 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일이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균형있는 열심으로 살아가게 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다른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게 하는 힘은 결핍이나 성취라는 목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능력주의라는 트랙 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달려가는 것을 멈추게 한다. 또한 게으른 삶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살도록 하게 하지도 않는다. 양극단의 오류에서 벗어나 은혜로 인한 건강하고 균형있는 열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 결국 복음만이 능력주의라는 문화 내러티브의 유일한 대안이다.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복음이며, 은혜로 얻은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행해야 하는 많은 노력을 행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건강하고 균형있는 열심을 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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