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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그날은 지났지만 이교도 기념일이었다고요?
by Kevin DeYoung2020-12-26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들의 겨울 축제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

There is good evidence that December 25 was not chosen because of any pagan winter holi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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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관해서는 사실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12월 17일부터 7일간 ‘사뚜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하는 겨울 축제의 기간을 가졌다. 그것은 방탕과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 숭배로 채워진 완전한 이교도적 사건이었다. 동지를 기점으로, 로마 황제는 12월 25일을 ‘솔 인빅투스’(Sol Invictus)라는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를 만들었다. 기독교는 로마인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이 이교도의 축제에 교회가 함께 참여하였고 12월 25일에 구세주의 탄생을 끼워 맞춘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은 이미 자리 잡고 진행되던 이교도의 명절을 모방함으로 시작하였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면, ‘사뚜르날리아’와 ‘솔 인빅투스’에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유주의 기독교인이나 보수적인 기독교인, 심지어 비기독교인들 까지도 모두 그것이 사실이라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실이 아닌 사실이 숨어 있다.


우선 이교도의 기념일로부터 가져왔다는 데에서 기원을 찾는 것과 거부감과 불편함 때문에 새로운 기념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보려는 것은 분명히 구별하여야 한다. 기독교의 축제와 이교도들의 축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동시대에 잘나가는 이교도의 축제를 모방하여 기독교화한 것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 이교도들의 축제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거기에 기독교다운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종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교도 축제를 변형하여 기독교화 했다. 그들이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그 일을 진행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한 확인은 역사적 논쟁거리가 되겠지만, 그 동기는 로마의 이교도들을 멸절시키기보다는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설령 크리스마스가 ‘사뚜르날리아’와 ‘솔 인빅투스’로 인해 12월 25일로 정해졌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독교인들의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들의 축제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들의 겨울 축제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예일대 신학교의 앤드류 맥고완이 “어떻게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는가”(Bible Review 2002 참조)라는 기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맥고완의 훌륭한 역사적 업적을 풀어보도록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언제부터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축하하기 시작하였을까?


훨씬 오래전부터 기독교의 기념일로 자리 잡았던 부활절과는 달리,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일을 축하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레나에우스 (130-200)나 터툴리안(160-225) 같은 크리스천 작가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에 관해서는 이야기한 바가 없었고, 오리겐(165-264)는 로마인들이 기념하는 탄생 기념 축제를 이교도의 관습으로 비웃기도 하였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아직 교회력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고(적어도 널리 퍼지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유사한 로마의 축제일과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 일자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세기 후반 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가 내놓은 몇 가지의 제안 가운데는 예수의 탄생일을 추정해 보고자 하는 상당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 중 어느 것도 12월 25일은 아니었다.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을 처음 언급한 것은 필로칼루스 달력이라 불린 4세기 중반의 연감이었다.


수십 년 후, 서기 400년경,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4세기 초기에 북아프리카 기독교회에 출현한 교파)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축일을 지켰지만, 1월 6일 주현절(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을 찾은 것을 기리는 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거부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현절이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312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동안 일어난 도나트투스파는 로마의 압제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완강히 거부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로부터 기원하였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맥고완은 도나투스파가 오래된 북아프리카의 전통에 깊이 빠져 있었음이 틀림없고,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가장 이른 기념일은 3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대보다 앞선 것이며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교도와의 어떠한 교류도 확실하게 피하고자 노력했었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로부터 기원할 수도 있었다고 논의되기 시작하였을까?


1세기 교회의 초기 교부 중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와 ‘사뚜르날리아’ 그리고 ‘솔 인빅투스’ 사이의 연관성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물론 독자들은 ‘그들이 그랬을 리가 없지. 그건 정말 황당한 일이었을 테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기독교의 예수 탄생일을 이교도의 기념일로부터 찾고자 하는 목적이 기독교가 더 인기를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나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분명 누군가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맥고완은 “그것은 미래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관계성을 찾고자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그레고리 대왕은 601년,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이교도 사원을 교회로 바꾸고 이교도 축제의 의미를 기독교 순교자들을 위한 기념일로 바꾸기를 촉구하는 글을 남겼다.


디오니시우스 바 살리비(Dionysius bar Salibi)가 크리스마스는 1월 6일에서 12월 25일까지 ‘솔 인빅투스’와 일치하도록 변경하였다고 말한 12세기까지는 예수의 탄생이 이교도의 축제 기간에 맞춰 정해졌다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 세기가 경과한 후, 비교 종교학의 계몽주의 학자들은 교회 역사의 첫 천년 동안 그 누구도 그런 연관성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지 축제를 변형하여 채용하였다는 이론을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로 기념할까?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기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1월 6일에 기념하는데, 아마도 다른 계산 방식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서양에서 12월 25일에 기념하게 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정해지게 된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과 예수님의 잉태와의 연관성 때문이라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추론을 위해서는 필요한 세 종류의 날짜가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해 보자. 서기 200년경,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은 예수님이 니산월 14일에 돌아가셨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로마 태양력으로는 3월 25일에 해당한다. 동방에서는 지역 그리스력에 의해 봄의 첫 달 14일을 기준으로 계산을 하였다. 로마력으로 환산하면 4월 6일이 된다.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3월 25일이나 4월 6일에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수님은 그가 잉태되었던 날 죽었다는 동일한 추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4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나온 익명의 기독교 논설에 따르면 “3월 25일은 주님의 수난과 잉태의 날이다. 그날, 그는 고난을 겪었던 바로 그 날 잉태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에서도 비슷한 계산 방법을 이용했다. 4세기경 키프로스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 주교는 4월 6일,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거두어 가셨고, 같은 날 “동정녀의 흠 없는 자궁에 잉태되셨다”라고 주장했다. 이 호기심을 일으키는 전통이 세계의 다른 두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추측 이상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적어도, 맥고완이 관찰한 바와 같이 초기 기독교인들은 창조와 구원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일 년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하는 고대 유대의 전승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나, 그가 잉태된 (동일한) 날까지,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날짜를 어떻게 추측할 수 있겠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예수님이 3월 25일에 잉태되었다면, 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날짜는 9개월 후인 12월 25일 (또는 동양에서는 1월 6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12월 25일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또한 날짜의 역사성에 대해 독단적으로 주장할 수도 없지만), 크리스마스의 날짜가 ‘사뚜르날리아’나 ‘솔 인빅투스’와 같은 이교도적인 기념일과 연관되어 있다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잉태와 관련되어 있다는 훨씬 더 확실한 증거들이 있다.




원제: Is Christmas a Pagan Rip-off?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장명근


초기 기독교인들은 창조와 구원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일 년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하는 고대 유대의 전승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These early Christians were borrowing from an ancient Jewish tradition that said that the most important events of creation and redemption occurred at the same time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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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evin DeYoung

케빈 드영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마태에 위치한 Christ Covenant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University of Leicester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현재 샬롯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Just Do Something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