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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여전히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은 뭐가 다를까?
by Jon Nielson2020-12-09

여전히 교회를 떠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는 이십 대 청년들을 교회에서 만난다. 그런 청년들은 뭐가 다른 걸까?

We can all look at the 20-somethings in our churches who are engaged and involved in ministry. What is it that sets apart the kids who stay in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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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내 사무실에 와서 앉은 일단의 부모들은 눈물부터 닦았다. 중고등부 목사인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은 열여섯 살 아이가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가정과 교회에서 올바르게 자란 “선한 기독교인”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그랬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더니 신앙에서 멀어졌다. 그 아이들은 교회의 청소년 프로그램을 다 마쳤고 또 단기 선교 여행까지 갔으며 십대 시절 내내 다양한 사역에서 봉사하던 신실한 아이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신앙 활동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교회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고 내게 찾아온 부모들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교회가 “신앙교육 패키지”를 보내서 그들이 여전히 교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보기에 결코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었다.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계속 발표되는 감당하기 힘든 통계를 볼 때마다 공황과 같은 공포를 느낄 지경이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청소년 사역이 잘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다양한 보고서를 분류하고 그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신앙을 “잃은” 아이들을 교회로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쉬운 해결책도 없다.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그들의 삶에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교회를 떠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는 이십 대 청년들을 교회에서 만난다. 그런 청년들은 뭐가 다른 걸까? 다음 내용은 내가 그런 신실한 청년들을 관찰한 결과이다. 나의 관찰이 청소년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그들은 회심했다


흥미롭게도 사도 바울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이나 “아주 착한 아이”와 같은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은 결코 “그래,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는 심성이 아주 착해”라는 식의 호의적인 표현으로 신앙 고백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 특히 성경 속 회심과 관련한 증거를 보면 거기에는 흔들림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 중고등부 목회자들은 구원이 진짜 무엇인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구원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기적이다. 우리는 이제 “착한 아이들”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그만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충실한 예배 출석과 재미있는 수련회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의 강권하심으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오로지 회심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지 않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설교하고 있을까? 중고등부 목사님들이여, 우리는 설교하고, 가르치고, 증거해야 한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에 기적적인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회심의 역사가 일어날 때 – 그래서 “옛 것이 가고”, “새 것이 오면”, 불확실함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명목상 기독교인” 그룹을 다루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증거하는 데에 굶주린, 미래의 교회 지도자인 “새로운 창조물”을 가르치고, 제자화하고, 준비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는, 회심한 청소년들이다.


2. 그들은 온전히 되기 위해서 교회에 오지, 재미있게 놀려고 오지 않는다


최근 우리는 청소년 그룹의 몇몇 학생들과 “남자들의 날”을 보냈다. 우리는 지역 공원에서 한 시간 동안 농구를 했고, “시카고 스타일”의 16인치 격렬한 소프트볼 경기도 했다. 그리고는 바비큐와 피자, 그리고 2리터 탄산음료를 먹으며 오후를 보냈다. 나는 청소년 사역을 재미있게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히 청소년 목회자라면 에베소서 4장 11-12절의 말씀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또는 교회에게 교사를 주신 이유는 결코 오락, 격려, 모범, 또는 우정을 위한 게 아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성도를 “온전하게 만들어(equip)” 복음 사역을 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사역하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젊은 신자를 제자화하고, 또 성경 공부를 하도록 준비시키지 않는다면, 설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나는 사역자로서 소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회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심을 한 이후로는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혀 봉사하고, 인도하고, 가르치고, 성장함으로 신앙을 불태우도록 돕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무이다. 아이들이 성경 읽기 습관, 성경 공부 기술, 제자 훈련과 기도의 강력한 본보기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그들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양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재미있도록 해줬을 뿐이니까. 이제 그런 현실을 앞에 놓고 우리는 정말로 공포를 느껴야 한다.


잠시 청소년 프로그램을 마음에서 지워버리자. 우리가 하는 사역이 대학에 들어가 전혀 다른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에서도 여전히 복음 사역에 열중하는 신실한 학생을 양육하고 파송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정말로 그들을 제대로 준비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돕고 있을 뿐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회 중고등부 모임에 중독된 학생이 아니다. 우리는 가르치고, 인도하고, 섬길 준비를 갖춘 성장하는 당당한 남자 성도와 여자 성도를 양육해야 한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모든 청소년 사역 전략을 다 내려놓고 열여섯 살 학생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 아이와 앞으로 어떻게 사 년을 보내야 이 애가 십 년 후에 최고의 교회 집사, 그리고 훌륭한 6학년 주일 학교 교사가 될 수 있을까?”


3.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중고등부 목사로서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말하는 모든 양육 과제는 나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물론 목회자의 능력으로 회심을 시킬 수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가정에서 내 사역을 열 배로 돕지 않는다면 사역자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힘 있는 기독교인 성인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사역 지향적 사고를 가진 이십 대를 하나로 묶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의 가정에서 복음이 결코 변두리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를 가진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 사역을 섬기고 이끌고 있는 이십 대의 경우 하나 같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에 가도록 하는 주체는 부모이다. 그들이 반항할 때 부모는 그 아이들을 징계했고 또 분명하게 책임을 물었다. 또한 그들의 부모는 매일 저녁 식탁에서 성경을 읽는다. 그들의 부모는 엄격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과의 평화와 서로에 대한 용서의 기초로 삼는 깊은 은혜의 틀 안에서 아이들을 양육한다.


물론 이게 공식은 아니다! 복음 중심의 멋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교회를 떠난다. 엉망진창이 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도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찾고 아름다운 결혼 생활과 가정을 꾸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정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성장기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가정을 복음으로 온전히 이끄는 부모들로부터 신앙으로 인도받은 아이들은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성장한다. 잠언 22장 6절 말씀이 항상 옳기만 한 공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에서 나오는 좋은 원리를 제공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중고등부 사역자여, 진정한 회심을 위해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라.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학생들을 온전히 양육하라.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부모들이여, 복음을 선포하고 삶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도록 하라. 우리 사역자의 성공 여부가 당신들에게 달려있다.




원제: Why Youth Stay in Church When They Grow Up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일반적으로 성장기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가정을 복음으로 온전히 이끄는 부모들로부터 신앙으로 인도받은 아이들은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성장한다.

In general, children who are led in their faith during their growing-up years by parents who love Jesus vibrantly, serve their church actively, and saturate their home with the gospel completely, grow up to love Jesus and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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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 Nielson

존 닐슨은 미국, 일리노이 주 Spring Valley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이다. 다섯 권의 책을 썼는데, 가장 최근에 낸 책은 ‘Bible Reading with Your Kid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