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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하나님 말씀을 겸손하게 해석하기
by Trevin Wax2020-12-0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겸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What we need is epistemic humility. We want to be humble interpreters of God’s unchanging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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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나는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신학자와 성경 주석가들로부터 통찰력을 얻고 싶어 하는, 점점 더 그 숫자가 늘어나는 복음주의자들이 가진 열정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이러한 변화(development)가 우리와 성경 본문 사이의 문화적 거리를 과장함으로 우리를 특정한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에 가두게 되고, 그 결과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한편으로, 우리는 텍스트를 접할 때 갖는 “선이해”를 최소화해서는 안된다. 해석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문화적 위치가 주는 영향을 과장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 본문을 주의깊게 연구할 때 발견하는 광범위한 합의를 기뻐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그렇다고 모든 해석을 다 상대화하거나 텍스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준 포스트모던적인(quasi-postmodern) 관점 이론을 채택하자는 게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문화와 배경이 전혀 다른 번역자와의 교류를 최소화하는 상식적 현실주의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겸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신학적 덕목으로서 바라볼 때, 우리는 가빈 오틀런드(Gavin Ortlund)처럼 다음과 같이 겸손을 정의할 수 있다.


“겸손 … 자신이나 또는 자신이 가진 신학에 대해서 낮은 의견을 가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수단을 통해 열렬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가지는 동시에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이다.”


이번 마지막 글에서 포스트모던이나 현대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1. 성경 독자(Bible readers)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점에 관해서 고민하라


우리는 유한하다. 인간인 이상 우리는 성경 독자로서의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한계 중 일부를 얼마든지 인식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문화적, 사회적 위치가 성경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성경 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적 힘(좋은 방식이든 나쁜 방식이든 관계없이)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그런 힘이 아예 없다고 가정하면서 무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와 개인적인 경험이 성경 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게 되면,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 쓰고 있는 렌즈를 “보게 되며”,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성경을 공부하면서 나름의 관점을 구축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례: 개인주의적 직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미국인들은 신약성경 속에 나오는 명령들을 주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의 오리지널 언어의 표현뿐만 아니라(교회로 지칭되는) 성경의 수신자가 복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이 ‘당신’이라고 할 때 그 단어가 복수를 가리키고 또 그렇기에 복수형 동사 형태가 쓰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읽어야 한다. 이처럼 성경이 복수로 지칭되는 공동체를 향해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오늘날 영어권 독자들에게 쉽게 간과된다. 성경의 명령은 개인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명령의 주된 초점은 교회라는 집단적 순종을 위한 것이다. D. A. 카슨(D. A. Cars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프리카 신자들이 교회의 집단적 특징(corporate character)을 놓고 쓴 바울의 은유를 더 빨리 발견하는 것에 비해, 서양의 많은 사람들은 개인주의의 유산 때문에 그런 측면을 알아채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해석학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당신의 책읽기가 개인주의적 배경(assumptions)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한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 결과 당신은 더 나은 성경 독자가 될 수 있다. 이 사실은 다음 사항으로 이어진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다른 이들이 주는 지혜에 의존하라

리처드 린츠(Richard Lints)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각기 다른 지체로부터 유익을 받을 때 누리는 풍요로움에 관해서 깊은 통찰을 준다.


“교회의 행복(well-being of the church)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 하나의 복음을 얼마나 잘 수용하는가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다양한 은사를 부어주신다. … 다양한 교회 지체는 성경 해석이라는 작업에서도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서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견(divides)을 뛰어넘는 이해를 위해 서로의 의견에 경청하는 힘든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이견을 뛰어넘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충분함에 대한 깊고도 변함없는 확신(commitment)이다. 단순히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일부 사람들은 서로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지나가는 유행 또는 비정상적인 의제 또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무릎을 꿇기보다 오히려 성경 위에 서게 만드는 포스트모던 철학을 장려하는 도구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D. A. 카슨은 이 과정에서 성령님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성경의 필수불가결함을 지적하는데, 그의 지적은 지극히 옳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진리를 행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만큼 우리는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재하는 성령님의 도움이 얼마든지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고는 해도, 사려깊은 기독교인의 목표는 결코 성경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선을 위해 성경에 순종하는 종(be mastered)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을 알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밝히고 바른 해석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겸손하게 기도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성경 해석의 전제 조건과 최종 목표는 계시의 말씀이 주는 경외심과 놀라움으로 성경말씀의 궁극적인 저자를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와 성경 주석은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


3. 모든 읽기가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와 동일하게 성경의 권위를 믿는 다른 문화권의 신자들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와 상충하는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포스트모던 시대의 유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가 다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성경을 읽기 마련이니까, 성경이 진짜로 의미하는 바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대신 우리는 모든 성경 읽기가 다 똑같지는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카슨은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어떤 개인이나 그 어떤 단일 공동체도 특정 성경 구절이나 주제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인식하는 것은 현실적일 뿐 아니라 겸손한 행위이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풍부한 해석을 얻을 수 있으며, 때로는 기존 해석에 직접적인 수정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모든 진실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와 여러 시대에 걸친 기독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광범위한 동의가 바로 공통적 신앙의 증거이다. 사이몬 챈(Simon Chan)은 ‘Grassroots Asian Theology’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것은 지역 문화이다. 그러나 지역 신학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더 큰 기독교 전통과 실질적인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카슨은 또 이렇게 말한다.


“신약 성경에는 거짓 교리, 거짓 그리스도, 거짓 복음에 관한 많은 경고가 있다. 모든 해석이 다 동등한 건 결코 아니며 또한 이런 저런 해석이 특정 공동체에 의해 지지되고 옹호된다고 해서, 그 해석이 반드시 성경에 충실한 해석이라는 것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또 성경을 다시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속에서 다른 이의 해석이 더 본문에 충실하다면 얼마든지 나의 해석을 고치겠다는 열망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마치 우리가 최종 판사인 것처럼 성경 위에 서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성경 말씀만이 우리의 판사가 되어서 우리 위에 서도록 해야 한다.”


4.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문화에 도전할 것을 기대하라


다른 문화권에 사는 기독교인의 해석을 포함해야만 성경 해석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시안적 착각이다. 기억해야 할 진실은 모든 문화가 어떤 식으로든 다 부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기독교인들의 책읽기 방식이 우리가 가진 문화적 우상을 어느 정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사는 기독교인들 역시 우리의 해석이 그들의 우상들에게 던지는 도전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모든 해석을 판단해야 하는 기준으로 “살아있는 경험”에 호소할 때 생기는 주요 문제 중 하나이다. 인간의 경험이란 것은 빛을 비추기는 커녕 아예 더 모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데이비드 클락(David Clark)은 성경 읽기까지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철학적 원칙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는 해방 신학을 예로 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헌신으로 시작하는 신학의 경우, 만약 그런 헌신이 비 성경적 관점의 사고 형태를 통해 표현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이제 그런 신학은 신학 자체에 해를 끼치는 신학적 통제를 행사하게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절차는 성경적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성경을 훼손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생각이 비 성경적 관점까지 형성하는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클락이 ‘다 방향 리더십’을 구현하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포스트모던 이론 뿐 아니라 순진하고 개인주의적인 해석 모두에게서도 우리는 위험을 발견해야 한다.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은 때때로 문화적 가정(assumptions)을 간과한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관한 문화적 순진함을, 마치 모든 경험은 다 중립적이기에 경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대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경험 속에는 언제나 이론적 기본(commitments)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에스더 아콜라체(Esther Acolatse)와 같은 학자들이 성공한 영역이다. 권력과 권세에 관한 작업을 통해서 그녀는 단순히 어느 한 곳의 문화적 해석을 다른 것과 비교해서 수정하는 것으로 그치는 대신, 모든 문화가 예외 없이 타 문화권의 신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반복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성경적 도전이 문화에 관계없이 세계 모든 곳에서 항상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한 사람의 민족적·문화적 배경이 신학적으로 모두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시아 신학자라면 아마도 아시아 신자들의 경험이나 교리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관해서 사이몬 챈은 우려를 표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일부 아시아 신학자들이 채택한 것은 “문화에 대한 수용과 문화적 경멸자들에게 기독교를 칭찬하는“자유주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문화가 신학자들이 고민할 의제를 정해줄 때가 있다. 이건 문화가 신학이 마땅히 다뤄야 할 규범(norms)을 정해주는 데 있어서 필요한 단지 작은 단계일 뿐이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시아 신학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이런 식의 매우 선택적인 이해는 마땅히 도전받아야 하는데, 그건 계몽주의 인식론의 무비판적 동화와 그에 따른 신학적 분별력의 결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기독교 운동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식, 즉 복음주의와 아시아 대부분의 오순절 운동, 특히 인도, 일본 및 중국의 토착 기독교 운동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 풀뿌리, 민중으로부터 시작한 신학을 무시함으로써 이른바 아시아 에큐메니칼 신학자들이 제시하는 것이 단지 오래된 사상을 재창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챈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된다고 말한다.


“엘리트 신학자라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신학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런 신학의 실패는 ‘해방 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했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이 선택한 건 오순절주의다’라고 언급한 한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에 의해 정확하게 집약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신학에 “흑인 신학”이라는 라벨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흑인 교회에서 제자화된 대다수의 흑인 기독교인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특정한 민족적 또는 문화적 배경(label)을 가진 어떤 신학이 또는 신학자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충분함을 믿고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모든 기독교인을 제대로 대표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결론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겸손한 성경 읽기를 안내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는 데이비드 클락을 다시 한 번 인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복음주의자라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1) 우리는 모든 신학적 해석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2) 우리는 모든 문화에 대해 의도적으로 자기 비판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3)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 관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신학의 필요성을 주장해야 한다.
(4)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문화적 가정을 뛰어넘는 성경의 우선 순위에 순종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두 가지 실수가 가능하다. 하나는 문화적 또는 철학적 선이해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거에 너무도 많은 복음주의 신학이 실패를 저질렀다. 다른 실수는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가정에 너무 깊게 함몰됨으로 그 가정이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신학의 전체 의제를 다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주류와 자유주의 신학을 망라해서 맥락화의 오류에 빠진 신학이 계속해서 헛발질을 하는 지점이다. 사실상 현대 사회가 던지는 의제에 항복하는 경우 주변 문화와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이 더 이상 문화와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신앙에서는 더 이상 생명(vitality)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함정을 피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인식론적 겸손을 목표로 하자. 우리의 왕 되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또 꿇도록 하자. 이 세상 모든 문화에 유익을 끼치는,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통해 그분의 권위가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훤히 드러나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




원제: Becoming Humble Interpreters of God’s Unchanging Wor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신앙이 더 이상 문화와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신앙에서는 더 이상 생명(vitality)을 찾을 수 없게 된다

If faith is indistinct from culture, it loses its vi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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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