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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목회자여, 복음을 머금고 성도를 대하자!
by 김형익2020-12-01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목회자와 교인의 성경적 관계를 아는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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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가르치는가? 일단 이 대답은 뒤로 하자. 내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나는 신학교에서 이 주제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배운 적이 없다. 교육전도사로 2년을 사역하는 동안에도 나는 담임목사님이나 선배 목회자들을 통해서 이 주제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주제는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터득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를 목회의 현장에서 잘못 배우게 될 때, 경험적으로 잘못 배운 지식은 그 목회자의 목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목회자의 설교 방식에서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나타나는 나쁜 양상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목자이고 너희는 양이니 내 말을 들어라” 하는 식의 태도, 또는 연장자 교인들을 향하여 정확하게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설교에서 교인들을 무시하는 태도와 같은 것들이다.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목회자와 교인의 성경적 관계를 아는데서 시작한다. 그 관계의 원형은 주님께서 당신의 양들과 가지시는 목자와 양의 관계일 것이고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주제를 깊이 다루신 바 있다. 주님은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시다(요 10:11,15). 같은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은 사도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말씀하심으로써(요 21:15-17), 목자와 양의 관계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확장 될 수 있음을 암시하셨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목회자인 장로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자신을 아버지에 비유했고(고전 4:15; 살전 2:11)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대하여는 어머니(자기 자녀를 기르는 유모)에 비유했는데(살전 2:7) 이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일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곤 한다.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목회자는 단순히 스승(로마 귀족의 자제가 성장하기까지 훈육을 담당하는 선생, 갈 3:25에서는 ‘초등교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전 4:15).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를 쓰면서 내내 ‘자녀들아’라는 호칭으로 성도들을 불렀다는 사실은 사도 요한이 자신을 목양의 정황에서 회중의 영적 아버지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들의 이런 표현들을 우리의 목양에 적용해본다면, 목회자는 단순히 지식이나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역할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목회자에게 성도란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내어줄 수 있는 영적 자녀들이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목양의 관계에서 성도들을 어느 정도 수준의 자녀들로 보았을까?


사도 바울이 자신을 아버지에 비유했을 때, 그는 자신이 복음으로 고린도 교인을 낳았다고 말했으니 필시 이들을 막 낳은 자녀들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고전 4:15), 자기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에 비유했을 때에도 그는 사실상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아직 젖을 먹여야 하는 어린아이들로 보았던 것 같다(살전 2:7). 또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자녀들(τεκνίον)’이라고 불렀을 때, 그 단어는 부모가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말이므로, 그도 성도들을 어린 자녀들로 여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시간이 많이 흘러 벌써 선생이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먹이 유아에 머물고 있다고 탄식하는데, 이 탄식도 성도들이 영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을 암시한다(히 5:12).


그렇다면 사도들은 성도를 젖먹이 유아로만 보았던 것일까? 요한일서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아비와 청년과 아이로 구분해서 부른 것을 볼 수 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14).”


내용을 보면, 사도는 연령에 따라 아비와 청년과 아이를 구분했다기 보다 회중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회 안에는 영적 성숙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도들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이해했을지라도, 반드시 젖먹이나 걸음마 수준의 아이들로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제 바울 사도가 영적 아들이요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주는 실제적 권면을 들어보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디모데전서 5:1–3).”


바울 사도는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방식을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말했었다! 연로한 남성은 아버지처럼, 젊은 남성은 형제처럼, 연로한 여성은 어머니처럼, 젊은 여성은 사심없이 참 자매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참 과부인 과부는 존대하라고 말씀했는데, ‘존대한다(τιμάω)’는 말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할 때(마 15:8; 막 7:6; 요 5:23)와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명령에서(마 15:4; 19:19; 막 7:10; 10:19; 눅 18:20; 엡 6:2) 사용된 단어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이 권면은, 영적으로는 어린 신자일지라도 그가 나이가 든 성인이라면 목회자인 디모데는 부모나 연장자처럼 그를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심지어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서 말이다. 목회자만 성도의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성도들도 목회자의 부모일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원리를 덧붙이고 싶다. 성경은 성도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한다(벧전 2: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보시는 관점을 보여주는 말이다. 목회자가 설교와 모든 권면을 통해서 이 관점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확신하게 하는 일은 복음 사역의 핵심에 속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성도를 보는 목회자 자신의 관점이 정확하게 이 복음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관점은 그가 전하는 설교의 내용과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관점이 복음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복음의 내용을 아무리 정확하게 전달하는 설교일지라도 힘을 잃을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를 바라보시는 관점을 강력하고 명확하게 제공한다. 그래서 복음에 견고히 서있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영광스럽게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일마다 공예배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말씀과 함께, 성도를 실제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대하는 목회자의 태도이다.


목회자가 성도를 대하는 방식이 복음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성도들을 존경하는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의 동료 목회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일마다 공예배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말씀과 함께, 성도를 실제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대하는 목회자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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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