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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과 편리 대신 평안과 기쁨을!
by 정요석2020-10-28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오히려 가족들의 소통을 해치고 있다. 과학은 편리만이 아니라 부작용도 대부분 동반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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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감염 사망자가 460명이다. 미국이 23만 명에 가까우니 한국이 코로나19를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확진자는 26,043명인데 비하여 미국은 857만 명에 이른다.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란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 등 4개의 상을 탔다. 봉준호의 아카데미 수상과 견줄 만하다는 ‘빌보드 200’ 1위를 BTS는 쉽게 기록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은 12위로 스페인과 호주를 앞선다. 미국 민간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가 발표한 ‘2019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은 7위로 영국·독일·이탈리아 등 G7 국가를 앞선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손홍민은 현재 득점 1위를 달리고,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 김광현, 최지만 등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경제와 군사와 문화와 방역과 스포츠 등에서 세계의 상위에 해당하는 국가가 되었다. 우리는 이 면에서 큰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2019년 자살자 수가 13,799명으로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다. 최근 3년 하루 평균 36.5명이 죽었다. OECD 전체 37개국 평균의 약 2배이다. 10대와 30대의 사망 원인들 중 자살이 1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온 나라가 노력하여 457명 사망자라는 탁월한 결과를 거두었지만, 매일 36.5명이 자살로 죽는 어이없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요사이 택배 기사들이 과로로 인하여 죽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자살과 과로사의 원인들이 무엇인지 분석하면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에서 일류를 이루었지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5~19세 청소년들의 약 54%가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 ‘성적·진학 문제’를 들었다. 수능고사 후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한 수험생들의 자살이 벌어지곤 한다. 그들의 성적은 하위에 속하지 않고 상위에 속함에도 sky라는 불리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심지어는 2등임에도 1등이 되지 못하기에 자살한다.


노인 자살률도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1위인데 평균 3배로 높다.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은 81.8명으로 미국 14.5명, 일본 17.9명이니 4-5배 이상으로 높다. 심각한 것은 최근 이십 년 사이에 자살 인구가 2배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더 좋은 집과 차와 위생 환경이 지난 이십 년 사이에 크게 향상되며 편안하고 깨끗하여졌지만, 오히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증가하고, 평안과 화목은 사라지고 있다.


일부 연예인과 정치인과 운동인은 언론과 유튜브와 댓글의 지나친 비판과 악성 루머로 자살하였다. 언론과 팬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긍정적 비평은 필요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악랄한 비난은 살인에 가깝다. 얼마나 악성 댓글이 심한지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는 연예 뉴스 댓글 폐지를 이미 작년 10월과 올해 3월부터 시행하였고, 올해 8월 7일부터 스포츠 뉴스 댓글도 폐지하였다. 국민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댓글이 지니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기능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댓글이 금지되었다.


과로사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10월 23일자로 14명에 이르렀다. 한진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11월부터 심야배송을 전면 중단하고, 전국 사업장과 대리점에 분류 작업을 위한 지원 인력 1천명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10월 26일에 발표하였다. 왜 택배 회사들은 심야배송을 통해 새벽에 택배물이 도착하게 할까? 이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짧은 유학 경험과 몇 번의 해외여행을 통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빠르고 편한 나라인지 경험하였다. 어떤 주문과 요구이든 빠르게 반응하는 한국의 회사와 공기관에 비하면 OECD에 속한 나라들은 한국에 비하여 상당히 느린 수준이다. 심야배송과 새벽도착이 이루어지려면 택배 노동자들이 야간작업까지 해야하니 노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과 식당들이 있으려면 누군가 그 시간에 일해야 한다. 한 사회가 24시간 누리는 편리함과 빠름이 있다면 누군가는 그 편리함과 빠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는가?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고 먹을 방법이 없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문장은 한국인의 성향을 어느 정도 잘 표현한다. 올림픽에서 2등이나 3등을 한 한국 선수가 기뻐하는 대신 슬픔에 빠져 침울하거나 우는 것을 드물지 않게 경험한다. 외국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여하는 자체로 기뻐하며 즐기고, 게다가 입상까지 하면 메달색에 상관없이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선수는 금메달이 아닌 한 실패로 여기곤 한다.


편함과 평안은 다르다. 한국의 아파트는 디자인과 건축 자재와 동선 등에서 매우 높게 향상되었다. 1인당 거주 면적도 이삼십 년 전보다 넓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건축학적으로 더 넓고 깨끗하고 편리한 집들에서 산다고 마음까지 더 넓어지지 않고, 더 평안과 행복과 기쁨이 깃드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률에 있어서 한국은 거의 세계 1위 수준이다. 하지만 소통은 어떤가? 그 빠른 인터넷 망으로 악랄한 비판과 악성 댓글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초등학생들까지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폰의 웹툰과 유튜브와 카톡에 빠져 가족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오히려 가족들의 소통을 해치고 있다. 과학은 편리만이 아니라 부작용도 대부분 동반하곤 한다.


필자는 대학생 3년부터 중1까지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우리 부부는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면 2G 핸드폰을 사주었다. 그런데 자녀들이 핸드폰이 생기면서부터 자신의 방에 들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곤 하였다. 그 전까지는 친구들이 연락할 일이 있으면 집으로 전화를 했다. 부모는 전화를 자녀에게 바꾸어주면서 누가 자녀의 친구인지 알 수 있었고, 통화를 들으며 내용도 대강 파악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이 생기자 바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자녀들의 친구와 고민도 알 수 없었다. 고학년이 될수록 학교 수업에 스마트폰이 사용되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면서, 우리 부부도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그러자 자녀들이 자신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많아졌고,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들었고, 그들 또래 문화의 영향을 더 받았다. 그만큼 성경을 접하고 묵상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가치관도 변해갔다.


우리나라는 경제와 군사와 문화와 방역이 발달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이고 기쁨이고 행복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에 대한 고찰과 대응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과로사는 계속하여 높아질 것이고, 중요한 가치와 덕목들이 사라지며 국가의 총경쟁력과 효율성도 퇴보하게 될 것이다. 특히 기독교가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사회에 좋은 문화를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한다. 과학의 발달과 상황의 변화는 삶의 형태를 다소 바꿀 뿐이지 본질적인 새 것을 주지 않는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는 잠언 1:4절의 말씀은 사람이 땅과 해와 바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이고,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10)는 말씀을 신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과학과 경제와 문화의 발전이 편리와 빠름과 세련됨을 줄지 모르지만 오래 전 세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주지 않고, 더 큰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과 경제와 의료에 대한 허황된 과신은 오히려 큰 부작용을 가져온다. 빠름과 편함과 효율성을 행복과 평안과 기쁨으로 여기는 것도 큰 착각이다. 우리나라가 이삼십 년 전보다 더 행복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빠른 택배 시스템이 진정 우리에게 무엇을 배달해 주는지 그리고 다소 느린 택배 시스템이 정말로 불편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기독교가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하여 일등주의와 효율성과 부자와 강함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빠르고 편하고 깔끔한 이 땅의 삶을 인하여 하늘나라를 소망하지 않게 만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편함과 높음이 아니라 이웃의 소외와 아픔과 뒤처짐을 챙기고 격려하도록 잘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종교들은 2등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기독교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의하여 느리게 살아가는 2등을 기억하고 격려해야 한다. 기독교는 민족주의도 국가주의도 아니고, 우로나 좌로도 치우치면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다(고후 13:8). 기독교는 사회에 효율과 편리와 빠름 대신에 진리에 대한 통찰을 선사해야 한다.

기독교는 민족주의도 국가주의도 아니고, 우로나 좌로도 치우치면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다(고후 13:8). 기독교는 사회에 효율과 편리와 빠름 대신에 진리에 대한 통찰을 선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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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요석

정요석 목사는 서강대와 영국 애버딘대학교(토지경제학 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안양대학교(Th.M.)와 백석대학교(PhD)를 거쳐 1999년 개척한 세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기도인가 주문인가’,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전적부패, 전적은혜’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