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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보다는 ‘성도’란 호칭이 더 좋다!
by 정요석2020-09-26

우리나라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 대신에 직책을 부르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직책이 크게 인플레이션 되어있다. 길을 가다가 “김 사장님!”하고 부르면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쳐다본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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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카투사가 회자되고 있다. 카투사(KATUSA)는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주한 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이란 의미이다. 1950년 7월에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협의로 창설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군 1명의 유지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미군 사단의 부족한 군인 숫자를 한국군으로 보충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나는 1987년 1월에 카투사로 입대하여 1989년 4월에 제대하였다. 넓은 캠프에서 미군들의 행정과 교육과 편의 시설과 문화를 우리나라와 자연히 비교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 때 입었던 군복을 지금도 갖고 있다. 그것은 야전 상의인데, 요사이 군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특히 계급장의 크기와 색깔이 많이 다르다. 1996년에 동해안에 북한의 잠수정이 좌초되었다. 잠수함에 타고 있었던 북한 무장병 26명은 잠수정을 빠져나와 내륙으로 도망을 쳤다. 한국군은 49일에 걸친 추격전을 통해 24명을 사살하였고, 1명을 생포하였고, 1명은 도주하였다. 국군도 추격전 중 피해를 입었는데 13명이 전사하였고, 27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군에게 왜 이렇게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는지를 분석하여 보니 멀리서도 눈에 띠는 계급장의 색깔이 큰 원인이었다. 이것이 큰 이슈가 되어, 그때부터 군인 계급장의 색깔이 바뀌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군들의 계급장은 위장 색인지라 계급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팀 스피릿(Team Spirit)과 같은 합동 군사훈련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를 보면 미군은 계급을 알 수가 없지만, 미군 옆에서 같이 훈련에 참여한 한국군의 계급장은 단 번에 알 수 있다.


이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화려한 계급장 색깔은 우리나라의 완장 문화와 갑질이 얼마나 심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제대한지 몇 년 후에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찾아갔다. 그때 내 나이로 형성된 인맥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보좌관 수준이었다. 나는 보좌관에게 군복의 계급장 색깔 교체가 사회, 문화,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역설하였다. 나는 보좌관이 감동을 받으며 적극적으로 임하리라 생각하였지만 시큰둥하였다. 이런 일로 찾아오기까지 했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보좌관이 나의 말을 경청하여 자신이 섬기는 국회의원을 통해 입법화하거나 국방부에 건의하였다면 1996년에 전사자는 대폭 줄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 대신에 직책을 부르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직책이 크게 인플레이션 되어있다. 길을 가다가 “김 사장님!”하고 부르면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쳐다본다고 하지 않는가! 일인 운영의 작은 가게 주인도 사장이라고 불린다. 중년 여성은 “여사”라고 불린다. 조그마한 가게가 둘이면 “회장”이라고도 불린다. 대여섯의 작은 회사에는 사장, 전무, 상무, 부장 등만 존재한다. 어떤 배드민턴 동호회는 전 회원이 임원인 경우도 봤다.


이런 문화가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인지 우리나라 교회는 직분자들이 너무 많다. 처음 방문한 교회에 가서도 40대 정도로 보이면 그냥 ‘집사님’이라고 부르면 통하고, 50대 이상으로 보이면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라고 부르면 될 정도다. 교단 헌법에는 교인 5인당 한 사람의 비율로 서리집사를 임명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떤 교회들은 성도들 대부분이 장로나 권사나 집사인 경우도 있다.


내가 담임목사로 섬기는 세움교회는 교인들을 부르는 공식 호칭이 “성도”이다. 직분자가 너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교인들은 직분에 상관없이 동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1999년 교회 설립 때부터 교인들의 공식 호칭을 “성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도라는 공식 호칭에 때때로 어색함과 불편함이 발생하곤 한다. 특히 중고생이나 청년이 어른에게 “OOO 성도님!”이라고 부르면 어색하다. 이런 어색함과 불편함을 해소해보려고 호칭을 형제와 자매 등으로 시도해보았지만 그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성도(聖徒)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사람이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는가? 성도, 신자라는 호칭은 기독교인에게 매우 영광스럽고 복된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아내를 공식으로 호칭할 때도 “OOO 성도”라고 부른다. 사모라는 직분이 교회 헌법에 없기 때문이고, 사모도 다른 성도들처럼 겸손히 교인의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고, 성도라는 호칭이 영광스러운 호칭임을 교인들이 알기를 바라면서 교회 설립 때부터 의도적으로 “OOO 성도”라고 불러왔다. 나는 2년 전에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권사 호칭 대신에 “OOO 성도”라고 하였다. 나도 목사이기 전에 성도임을 늘 명심하려고 한다.


나는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마지막 학기를 맞이하는 3학년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내가 입었던 카투사 병장 군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묻곤 한다. 좋은 완장을 차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섬기기 위해서인지 물으며, 동시에 나에게도 묻는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목사와 교수와 노회장과 이사와 같은 높은 완장을 차게 된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뻣뻣해질 수 있고, 완장질을 할 수 있기에 나에게도 묻는다.


여러분은 어떤 완장을 차고 있는가? 그 완장으로 남들을 위압하며 여러분을 드러내려 하는가? 아니면 차고 있는 완장을 없는 듯이 여기며 다른 이들을 섬기고 있는가? 자신을 낮추고 숨기는 일은 참 힘들다. 하지만 성경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다(빌 2:3). 예수님은 구제함과 기도와 금식과 비판을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들 앞에서 하는 자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고, 은밀하게 하는 자는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고 말씀하신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는 것이다(눅 14:11).


그리스도인은 이런 성경의 원리로 삶을 살아냄으로써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문화와 가치관을 갖느냐에 따라 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군사 등이 크게 바뀐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나라의 부국강병과 직결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광장에서 무리를 이루어 큰 목소리로 성경의 가치가 무엇인지 드러내기보다 느린 듯하고 약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삶에서 성경의 원리와 가치를 구현할 때 진정 사회의 존중과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이란 광장의 외침으로 설득되지 않고, 진정한 가치의 구현을 확인할 때에야 서서히 변화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신자들은 은밀하게 구제하고 기도하고 비판하고, 무엇이든 단정하게 하는 것 자체를 주 안에서 크게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자! 이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걸음이다.

그리스도인은 광장에서 무리를 이루어 큰 목소리로 성경의 가치가 무엇인지 드러내기보다 느린 듯하고 약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삶에서 성경의 원리와 가치를 구현할 때 진정 사회의 존중과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이란 광장의 외침으로 설득되지 않고, 진정한 가치의 구현을 확인할 때에야 서서히 변화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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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요석

정요석 목사는 서강대와 영국 애버딘대학교(토지경제학 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안양대학교(Th.M.)와 백석대학교(PhD)를 거쳐 1999년 개척한 세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기도인가 주문인가’,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하이델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