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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

카이퍼 통신 7: 영역 주권의 역사적 배경
by 김은득2020-09-13

교회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바로 자유 교회(free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자체의 권리를 희생함으로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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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최근 코로나로 인해 교회와 국가의 관계(the rel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 신학적 고민에 대한 반가움은 잠시였고, 그런 이슈와 연관해 영역 주권을 강조했던 저나 바빙크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사실에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마르틴 루터,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등처럼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여, 그들을 질투하거나 여러분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교가 완전히 분리된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굳이 크리스텐덤 세계를 살았던 신학자들의 저작을 전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 생길 뿐입니다. 그런 세계의 사람들은 정부가 참된 종교의 예배를 증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정부가 특별히 선호하는 종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가톨릭 국가들은 가톨릭을 참된 종교로, 개신교 국가들은 개신교를 참된 종교로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개신교 내에서 독일은 루터란을, 네덜란드는 개혁파를, 잉글랜드는 성공회를 거의 국가 종교(National Church)로 우대하였습니다. 이렇게 정교가 일치된 사회에서 정부의 구성원(magistrates)들은 사실상 국가 종교의 일원들이었기에, 교회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 즉 참된 종교의 예배를 증진시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전역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네덜란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나폴레옹의 대리 정부였던 화란의 바타비안 공화국(Batavian Republic, 1795-1815)은 도르트 총회(The Synod of Dort)에 의거해 화란 개혁 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 NHK)가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폐지하였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새로운 유럽 질서를 구축한 비엔나 회의(The Congress of Vienna)를 통해 오라녀 왕가(The House of Orange)의 빌렘 1세(King William I)가 네덜란드 왕국의 군주로 복귀하면서, 국가 교회로서 화란 개혁 교회(NHK)의 지위가 회복됩니다.


문제는 빌렘 1세가 민족국가(the nation-state)를 신속히 구축하는 과정에서 바타비안 공화국의 중앙집권정책을 계승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바로 1816년 화란 개혁 교회(NHK)를 정부 기관의 감독 아래 두는 일반 조례(Algemeen Reglement)를 제정한 것이었는데, 그 조례에 의하면 교회의 궁극적 존재 목적은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군주에 대한 존경과 애국심을 고양하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 당시의 유럽 전체가 민족주의 의식이 서서히 고양되고 있던 터라, 이런 교회의 국가 종속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흐로닝언(Groningen) 대학교의 신학자들은 외래적 요소를 제거하고 참다운 화란식 기독교 사회(a genuinely Dutch Christian Society)를 추구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민족주의적 가치 판단에 따라, 흐로닝언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칼빈주의 신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14세기의 공동생활 형제단(the Brethren of Common Life)이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에라스무스(Erasmus), 메노나이트 교단(the Mennonites), 코케이우스(Johannes Coccejus)등과 같이 화란 출신들을 칭송하였습니다. 이런 흐로닝언 신학은 군주에 대한 존경와 애국심을 고양시키려는 빌렘 1세의 종교적 이상과 맞아 떨어지면서 화란 개혁 교회(NHK)를 대표하는 공적인 신학이 되었습니다.


1859년 흐로닝언 학파에서 존 칼빈과 얀 라스키(Jan Laski)의 교회론을 비교하는 에세이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바로 그 에세이 대회에서 제가 우승하면서 신학자로서 제 첫걸음을 띄었고, 이 에세이를 확장하여 쓴 글이 제 박사 논문(칼빈과 라스키의 교회론)이 된 것입니다. 그 대회를 개최한 흐로닝언 학파는 라스키가 칼빈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라스키가 화란 출신인 에라스무스와 친밀했고, 엠덴(Emden)과 런던(London)의 화란 교회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로닝언 학파의 문제는 바로 기독교 진리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더 우선시하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진리가 진리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민족주의 가치에 따라 받아들여지기도 혹은 버려지기도 합니다. 또한 엄밀히 말해, 이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야 말로 화란 자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빌렘 1세의 종교적 조례로 인해 화란 개혁 교회를 감독하는 장관(Ministry of Public Worship)이 임명되었고, 이로 인해 생겨난 권력과의 밀착 현상을 흐로닝언 신학이 더욱더 강화시켰다는 점입니다.

1834년 국가 권력에 종속된 화란 개혁 교회(NHK)의 부패와 위선을 고발하면서 분리(Afscheiding)로 알려진 저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헨드릭 드 콕(Hendrik de Cock)이라는 흐로닝언 지역의 한 목회자가 참된 교회로의 회복을 위해 칼빈과 도르트 총회가 고백했던 신조와 예전, 교회 정치로 복귀해야함을 주창했고, 그 지역의 가난한 농부들, 자영업자들, 저학력 민중들이 가세하면서 일종의 계급 투쟁 양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드 콕의 참된 교회에 대한 강조는 빌렘 1세의 화란 개혁 교회(NHK)가 몇몇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된 거짓 교회(valsche kerk)임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저항 운동은 화란 개혁 교회(NHK)와 정부 모두에게서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분리 운동에 참여한 모든 교회들의 모임은 금지되었고 그런 교회에 속한 목회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리 운동에 참여한 자들은 스스로를 십자가를 지는 교회(churches of the cross)로 지칭하면서 종교의 자유(freedom of religion)를 위해 기꺼이 그런 희생들을 감내하였습니다.


이 분리운동이 주축이 되어 탄생한 교단이 바로 바빙크의 모교단인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CGK)입니다. 바빙크는 이 분리운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분리 운동의 영예와 영광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바로 자유 교회(a free church)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와 교회 내 엘리트들 간의 결탁을 생각해 볼 때, 예배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모든 권리들(특히 자녀들이 정규 학교를 다닐 수 없었음)을 희생하는 태도야말로 분리운동이 강조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실제적으로 이 분리 운동은 당시 화란의 공적 세계에서 별 볼일 없는 대중들(kleine luyden)을 위한 운동입니다.


그들에게 칼빈주의는 외세에서 도입된 그런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삶에 목적과 의미를 제공하는 생동감있는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다소 종교적 엘리트들이 생각한 민족의식과 달리, 분리 운동에 참여한 일반 대중들에게 칼빈주의는 스페인의 가톨릭 왕조에서 네덜란드를 해방시킨 그런 사상적 원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빙크는 “칼빈주의는 네덜란드라는 하나의 국민을, 하나의 민족성을, 하나의 공화국을 형성해 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리 운동은 그들의 관점에서 거짓 교회와의 분열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번 시작된 분열의 마인드 셋은 계속해서 분리 운동의 내부 분열들을 부추겼고, 거짓 교회와 결탁한 타락한 국가와의 결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네덜란드가 하나님을 등지고,… 만일 타락한 정부가 신실한 성도들을 박해한다면, 거룩한 나라가 아니라면, 적어도 종교의 관용이 있는 나라로 떠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바빙크는 그 자신이 분리 운동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건주의적, 분리주의적, 분파주의적 경향성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예배의 자유를 이상적 모토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국을 떠나 미국을 향해 나아가는 이민의 물결에 대해서 “그런 경향성 역시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기독교의 전체 진리를 대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국가와 사회, 예술과 학문 모든 네덜란드의 공적 영역을 타락의 상태로 내버려두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개혁하는 어떤 노력도 행하지 않고 이민을 떠나는 것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등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운동은 반혁명당(anti-revolutionary party)의 사상적 모체가 된 화란의 문예적-영적 부흥 운동(Reveil)입니다. 시인 빌럼 빌더데이크(Willem Bilderdijk)는 프랑스 혁명으로 대변되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를 외세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문학, 특히 시적 상상력을 통해 화란의 민족의식(Dutch national soul)을 일깨웠습니다. 또한 그에게 화란의 민족의식은 네덜란드를 이스라엘처럼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빌더다이크의 시적 상상력은 네덜란드의 역사에 근거하는데, 구체적으로 80년 전쟁(the Eighty Years’ War) 동안 가톨릭 스페인 정부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화란 칼빈주의자들의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해방 투쟁과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흥(Reveil)운동에 속한 자들은 칼빈주의 민족 국가(a Calvinist national state)와 칼빈주의 국가 교회(a Calvinist national church)를 실현하는 것을 그들의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부흥(Reveil)운동은 칼빈주의를 네덜란드의 민족적 정체성과 연결하는 면에서 분리(Afscheiding) 운동과 일치하지만, 분리 운동의 분열주의(schism)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부흥(Reveil)운동은 국가 교회(volkskerk)의 신정주의(theocratic)적 이상향을 고수한다는 면에서 정교분리의 현대 사회에 걸맞는 비전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부흥(Reveil)운동을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프로그램으로 변환시킨 것이 판 프린스테러(van Prinsterer)와 저의 반혁명당입니다.


지난 카이퍼 통신: 도대체 칼빈주의가 뭐길래에서 언급했듯이, 국가와 교회와 관련된 칼빈주의 교리는 저와 바빙크를 통해 정교분리의 현대 사회에 걸맞게 변화됩니다. 바로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의 교리를 통해 교회와 국가 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영역 주권 교리는 진공 상태에서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회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인데, 다소 판 프린스테러가 어렴풋이 구상한 것을 제가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흐로닝언, 분리 운동, 부흥 운동은 제가 영역 주권 교리를 완성하는데 있어서 역사적,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저는 위에 언급된 학파와 운동들처럼, 모국에 대한 애정 가운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르트 신조나 부흥 운동이 소망하는 정부와 교회가 연계되는 신정주의적 이상향을 부정합니다. 더욱이 정부와 교회가 결탁하여 타락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저 역시 국가 교회와 결별하여 새로운 교단(Doleantie)을 설립하였습니다.


교회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바로 자유 교회(free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자체의 권리를 희생함으로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국가와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칼빈신학교의 존 볼트(John Bolt) 교수가 쓴 책의 타이틀 ‘자유로운 교회, 거룩한 나라: 아브라함 카이퍼의 미국적 공공신학’(A Free Church, A Holy Nation: Abraham Kuyper’s American Public Theology)이 잘 보여주듯이, 교회는 자유 교회로, 국가는 거룩한 나라로 개혁하는 것이 제가 평생토록 추구한 비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교회가 국가를 거룩하게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국가와 관계할지 다루는 것이 바로 영역 주권의 원리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교회가 국가를 거룩하게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국가와 관계할지 다루는 것이 바로 영역 주권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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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은득

김은득 목사(PhD., Calvin Theological Seminary)는 신칼빈주의, 특히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공공신학을 한국적 문맥에 맞게 상황화하길 원하는 신학자로서 현재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드림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