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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코로나 시대 신앙 교육을 위한 예기치 않은 선물
by 김형익2020-06-27

코로나 사태는 교회에 적어도 두 가지 강제적 변화를 직면하게 했다. 첫째는 예배당이라는 ‘거룩한’ 장소로부터 벗어나라는 요구였고, 둘째는 ‘전문 목회자’에게 의존하는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였다. 우리가 보통 교회라고 부르는 예배당을 벗어난 예배, 신앙 교육, 그리고 교제를 별로 생각해본 일이 없는 우리는 정말 당황했고 지금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또 목사로부터 독립된 신앙 교육을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변화는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받고 싶지 않았던’ 예기치 못한 선물들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 1920-1983)는 아프리카 소년들의 성인식을 관찰하면서 경계성(liminality)과 공동체성(communitas)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 개념들은 현재 우리 교회가 겪고 있는 변화를 잘 설명해주며, 심지어 긍정적인 면들을 전망하게 한다. 경계성은 이전의 안락함이 깨지고 위험을 무릅쓰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위기의 상황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런 경계성 상황에 이르게 될 때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 정신 혹은 공동체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최근에 도서출판 아르카에서 번역 출간한 앨런 허쉬의 ‘잊혀진 교회의 길’ 7장은 이 개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통해, 지금 이런 경계성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소위 초유(初有)의 경험들이다. 주일 공예배를 각자의 집에서 영상으로 드리는 경험, 주일에 다수의 교인들이 예배당에 가지 않는 경험, 영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경험들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리더들의 마음에 발생하는 것은 염려다. 교회의 예산에는 문제가 없을까? 교인들이 이탈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존재할 수 있을까? 등등 수많은 염려거리가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사실 우리는 이런 과정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진짜 신학 작업을 하게 된다. 위의 질문들은 본질적으로 신학적 질문들이고, 이런 신학적 질문들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왔으며, 이 상황은 우리 스스로 책상 위의 신학이 아닌 살아있는 신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이런 진지한 고민과 질문과 신학함은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든다.


신약 교회가 세워졌던 처음 300 여년의 시대로 돌아가보자. 그들에게 우리가 말하는 소위 건물로서의 교회가 존재했는가? 그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메가처치들이 존재했었던가? 그들은 개인의 집에서 수용 가능한 소수의 가정들이 모이는 형식으로 소위 공예배를 드렸다. 또 하나 생각해보자. 그 시대에 과연 오늘날과 같이 소위 신학교를 나와 석사 학위는 기본이고 박사 학위를 소지한 전문 목회자들이 넘쳐났는가? 그렇지 않았다. 소수의 사도들로부터 시작한 신앙 교육은 사도들에 의해 길러진 디모데나 디도 혹은 마가나 누가와 같은 제자들, 그리고 다시 그들로부터 충성된 사람들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계승될 수 있었다(딤후 2:2). 그들 다수는 사실 무면허 설교자들이었다!


초기 300년의 신약 교회를 생각해보니, 이것이 코로나 사태로 당황하고 있는 지금 교회에 뭔가 새로운 빛을 던져주는 것 같지 않은가? 혹시 우리는 교회의 본질로 더 가까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은 아닐까? 지금의 코로나 위기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참된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계성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희망적인 전망을 가지려는 우리를 막아서는 게 하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하고 나아가던 방향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방향 수정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의 신앙은 지나칠 정도로 예배당이라는 건물에 예속되어 있었고 전문 목회자들에게 의존적이었다. 많은 지역 교회에는 경건한 어른들이 거의 없고 몇몇 전문 목회자들이 쉴 새 없이 돌봐야 하는 영적 유아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많은 지역 교회가 육아(babysitting) 목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 많은 유아들을 수용할 수 있는 최신식 건물들은 끊임없이 쌓아올려야 했다.


나는 목사 직분의 사역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신약 성경은 분명하게 목사의 직분을 말씀하고 있고 그 직분이 감당해야 하는 말씀 사역의 중심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 그 말씀 사역의 능력이 필요하고 요구되는 시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가끔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와 가정에게 있습니다. 교회가 자녀들의 신앙 교육의 일차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점에서 우리 교회는 상대적으로 불친절한(?) 교회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원리다(신 6:1-9; 엡 6:4).


교회는 주일에 예배당에 모일 때, 자녀들에게 교리 문답을 가르치며 설명해주고 자녀들은 일주일 동안 그 내용을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대로 매일 복습하고 예습해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 그 신앙 교육은 삶 속에서 배우는 말씀이 되고 삶 속에서 형성되는 신앙이 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들에게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가르치는 부모들의 영적 실력이다(딤전 1:5).


지금까지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많은 교인들을 모으려는 지역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자녀들을 위한 신앙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주일에 교회의 교육 부서에 맡기기만 하면 자녀들의 신앙 교육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던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이 모든 것들을 멈춰 세우고 말았다. 이것은 가정이 교회로부터, 부모가 전문 목회자로부터 자녀들의 신앙 교육의 책임을 되찾아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를 따라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부모들의 모범을 따라 신앙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우리가 ‘경건한 어른’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때고, ‘경건한 어른’이 되어야 할 소명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나는 지난 아티클 [그라운드 안의 사람, 그라운드 밖의 사람]에서 내가 말하는 ‘경건한 어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막상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려다 보니 너무나 준비되지 않은, 너무나 함량미달(含量未達)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성경과 교리의 지식도 지식이려니와, 거짓이 없는 신앙의 모범이야말로 갑자기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낙심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절감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이미 멋진 시작을 한 셈이니까 말이다. 이제 당신은 물러서거나 되돌아갈 수 없는 ‘경건한 어른’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 셈이다. 당신은 전과는 다른 태도로, 주의 말씀에 천착하고 이전에 배웠던 교리들을 묵상하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라. 우리가 기억하고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은, 믿는 당신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기가 막힌 진리의 교사고 주의 말씀을 통해 영혼을 낳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전능자라는 사실이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봉사를 하지만 집에서는 신앙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부모를 통해서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주일에 교회에서 들었던 단편적 이야기들이 전부인 자녀들이 대학에 가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는 현상은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의 가르침과 신앙적 모범을 보면서 형성되는 자녀들의 신앙은 위선적이거나 율법주의적인 신앙으로 변질되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노출되고 숨길 수 없는 가정에서 신앙이 가르쳐지고 형성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모데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우고 신앙이 형성됨으로써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을 사도 바울이 본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딤후 1:5).


가정의 가장들이 영적 가장 역할을 회복하고, 부모들이 영적 교사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의 자녀들이 진짜 최고의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우리 앞에 열려있다.


여전히 통제할 수 없이 퍼져가는 코로나 팬데믹 현상 속에서 당황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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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