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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자존심, 자존감 그리고 하나님의 의
by 노승수2020-06-06

“자존심을 지켰다”라는 우리말 용례에서 보듯이 자존심이란 자기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인정과 시선에 기대어 있다. 즉 ‘자존심’이란 타인이 나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에 대한, 혹은 평가할 것 같은 것에 대한 나 자신의 감정이다. 이 “타인이 평가할 것 같은 자기”는 실제 타인의 평가보다 더 이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짜내게 되지만 사실 자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속에 비참함과 패배감이 휘몰아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센 척하게 되고 아닌 척하게 되고 경직되고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 신경질적이 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자기 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기 정당성’ 혹은 ‘자기 정체성’을 ‘타인의 시선’에 두게 됨으로 자신은 여기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자기방어는 적절한 선을 알지 못하게 한다. 예컨대, 불안 때문에 자기 통제 행동이 어느 선이 적절한지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 그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서 강박적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을 상황에도 불구하고 불안 때문에 특정 행동이나 사고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가령, 감기약을 먹더라도 보통은 몸이 회복되면 약 먹는 것을 잊어서 약이 남게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인간 행동의 자연스런 패턴이다. 이에 반해 건강에 대한 염려나 불안은 이렇게 몸이 보내는 일련의 신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하고 강박적으로 약을 복용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환경 적응에서의 적정선을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자존심’은 적정선을 알지 못하는 자기 방어의 한 종류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지만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자기를 확장함으로써 가족이 가깝고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더 함부로 대하는 패턴이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자존심과 같은 ‘자기 의’는 과장되어 있고 일종의 속박 시스템처럼 작동해서 감시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스스로 감시하는 체계처럼 작동한다.


심리학은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통해 자존심과 다른 자기 가치에 대한 긍정적 신호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신뢰 관계를 맺고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형성하는 사회적 인간의 근간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신뢰 대 불신”의 시기 동안에 애착 경험이 안정 애착 상태인 아이들은 사람과 세상에 대해 안전하다는 믿음과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 심상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존심’이든지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자존감’이든지 그 발생적 기원은 본질적으로 같다. ‘자존심’은 주로 불신을 기초로 해서 생기는 감정이고, ‘자존감’은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이신칭의”를 대신할 수 없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좀 더 잘 기능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고,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내면적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역기능적인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불화의 관계 속에 있는 죄 문제에 대해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자가 갖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은 루터의 표현을 빌자면 "의롭게 된 죄인"이라는 두 국면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각성을 이룬 사람은 자신의 심상 이미지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부패를 깊이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인인 나를 깊이 사랑하시고 용납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경험을 내포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 무장된 사람과 자존심 또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가지는 결정적 차이는 자기를 용납하는 방식과 타인을 용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의 깊은 부분까지 이해한 채로 용서받은 사람은 그런 형편에 처한 사람을 더 잘 용서할 수 있다. 세상을 더 긍휼히 여길 수 있으며, 자기를 무조건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자신을 용납할 수가 있다.


자존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와 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정서적 이미지들로 인해 인간이 지닌 현실 곧 고통과 비참에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반대로 자존심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내면의 높은 기준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기 힘들고 계속된 자기 정죄로 인해 율법주의로 기운다는 데 있다.


자신의 죄와 그에 따른 비참함을 심대하게 깨닫지 못하면 결코 나를 사랑하는 타자 곧 삼위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도 깊이 깨달을 수가 없다. 사랑이란 상승을 위한 동경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더러움을 깨달아가는 하강의 힘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가 ‘상승의 힘’이라면 성경의 아가페는 ‘하강의 힘’이다.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의가 획득되고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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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